‘헤어질 결심’ 박찬욱 “미묘하고 섬세한, 이전과 다른 영화 만들고 싶었다”

입력 2022-06-02 17:03
제75회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과 배우 탕웨이, 박해일(왼쪽부터)이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JW메리어트동대문스퀘어서울에서 열린 영화 '헤어질 결심' 제작보고회에서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그리고 용의선상에 있는 사망자의 아내. 형사는 탐문과 신문, 잠복수사를 통해 그녀를 알아가면서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낀다. 영화는 수사극이자 멜로극, 관객은 쉽사리 결말을 예상하지 못한 채 수사에 합류하게 된다.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 영화 ‘헤어질 결심’의 제작보고회가 2일 서울 종로구 JW 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에서 열렸다.

박 감독은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해 “3~4년 전 스웨덴의 추리소설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오랜만에 읽으면서 소설 주인공처럼 속이 깊고 상대방을 배려해주고 신사적인 형사가 나오는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며 “그와 별개로 정훈희의 ‘안개’라는 노래를 좋아해서 그 노래가 나오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형사 이야기와 ‘안개’가 나오는 로맨스를 합쳐서 하나의 영화 만들어보자고 정서경 작가와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사가 나오는 로맨스 영화’라는 형태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배우 탕웨이(왼쪽)와 박해일이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JW메리어트동대문스퀘어서울에서 열린 영화 '헤어질 결심' 제작보고회 행사장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어 “정 작가가 여자 캐릭터는 중국인으로 하자고 제안하기에 이유를 물으니 ‘그래야 턍웨이를 쓸 수 있지 않냐’고 했다”고 덧붙였다.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신경 쓴 것은 수사와 멜로의 균형이다. 박 감독은 “영화는 100% 수사극이자 100% 멜로극”이라며 “조사하고 미행하는 모든 형사의 업무가 이 영화에서는 연애 과정이기에 분리할 수 없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칸에서 공개된 후 ‘헤어질 결심’은 박 감독의 이전 영화들과는 스타일이 많이 다르다는 평가가 잇달았다. 박 감독은 “예전 영화들에선 자극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폭력과 노출 등을 필요한만큼 구사했는데, 그런 영화들은 관객들의 눈앞에 뭔가 바짝 들이대는 류의 영화다. 이번엔 다르게 해보고 싶었다”며 “감정을 숨긴 사람들의 이야기인만큼 관객이 ‘저 사람 지금 무슨 생각하나’ 하고 스스로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다른 자극적인 요소는 낮춰야했다”고 밝혔다.

여주인공 서래 역을 맡은 배우 탕웨이는 “처음 박 감독이 제안하면서 한 시간 반 정도 영화 줄거리를 이야기했는데 계속 흥분한 상태에서 물을 많이 마시고 간식까지 먹으면서 들었다”며 “천천히 그리고 완전히 감독의 이야기 속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 때 감독과 작가의 눈빛이 따뜻했고 그 느낌 때문에 외국어로 연기해야 하지만 이미 안심이 되고 걱정이 없어진 상태였다”고 돌이켰다.

형사 해준 역을 맡은 박해일에 대해서는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 다시 캐릭터를 돌아봤을 때, 해준은 처음에 수사에 공정한 형사의 모습을 보였지만 서래는 점점 해준의 눈빛에 휘말렸다. (박해일은) 눈빛이 정제돼 있고 디테일하다”며 “‘살인의 추억’ 등 박해일의 영화를 몇 편 봤지만 가장 좋아하는 건 이 작품에서의 눈빛”이라고 말했다.


제75회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이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JW메리어트동대문스퀘어서울에서 열린 영화 '헤어질 결심' 제작보고회에 앞서 이어폰을 착용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해일은 이번 영화를 통해 박 감독과 주연 배우로 처음 만났다. 박해일은 영화에 출연할 결심을 한 계기에 대해 “저라는 배우가 감독님의 영화에 잘 맞을 수 있을까 생각해왔다. 수사극 안에서 멜로를 보여주신다고 해서 궁금해졌다”며 “시나리오를 보니 예전 작품과 결이 다른 변화된 부분이 느껴졌고 담백한 톤도 느껴졌다. 제가 좀 더 뛰어 들어갈 수 있는, 도전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호기심이 커졌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칸에서 수상했다는 것보다 한국에서 개봉했을 때 관객들이 어떻게 봐 주실지가 중요한 문제다. 언제 개봉할지 몰라 후반 작업이 길어지다보니 제 영화 중에 가장 완성도 높은 후반작업을 하게 됐다”며 “영화 산업이 붕괴 직전에 있는 상황인만큼 ‘헤어질 결심’뿐만 아니라 어떤 영화든 빨리 영화관에 가서 보시고 ‘영화 본다는 게 이런 거였지’하는, 잊고 있던 감각을 되살려보시기를 감히 권한다”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