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 ‘브로커’를 만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2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국내 언론과 만나 영화를 만들게 된 과정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영화는 아이를 베이비박스에 버린 엄마와 그 아이를 팔려는 브로커들이 만나 동행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고레에다 감독은 “2년 전 서울에서 취재 작업을 시작했다. 베이비박스와 관련된 사람들, 보육원 출신 사람들, 미혼모 쉘터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보육시설에서 아이를 입양한 사람들, 입양법 개정에 관여한 사람들, 브로커를 수사한 경찰들을 취재했다”며 “각기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을 두루 만났지만 가장 크게 다가온 건 보육시설에서 자란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 책임은 엄마 한 사람이 아니라 사회에 있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영화 ‘브로커’의 주연을 맡은 배우 송강호는 이번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고레에다 감독은 “한국분들도 기다렸던 순간 아니겠냐”며 “송강호가 아직 그 상을 받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의아했고, 박찬욱 봉준호 이창동 감독 작품에서 충분히 상을 받을만 했는데 내 작품을 통해 상을 받게 돼 한국 감독들에게 송구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헤어질 결심’으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의 인연도 이야기했다. 그는 “2004년에 나는 ‘아무도 모른다’라는 작품으로, 박 감독은 ‘올드보이’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았다. 내 작품의 야기라 유야 배우가 남우주연상을 받고 박 감독이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는데 이번에도 이런 형태로 만나게 됐다”며 “박 감독은 나와 같은 세대고, 같은 아시아인 감독으로서 정말 존경한다. 그의 수상소감을 들었을 때 감동받았다”고 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송강호, 배두나, 강동원 등 배우들과 과거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에게서 받은 인상을 토대로 이 영화를 구상했다. 시나리오가 완성된 단계에선 주연 배우들에게 직접 손편지를 썼다.
그는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그 시점에서 알 수 있는 것들을 편지에 담아 배우들에게 전달했다. 줄거리와 각각의 캐릭터 배경, 브로커들이 경찰에 체포된 뒤의 진술서나 경찰인 수진이 진술했을 시말서 등 영화에 나오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도 편지에 적었다”며 “답장은 편지가 아닌 연기로 받는 것이라 생각했다. 촬영이 끝나고 이지은 이주영 배두나는 짧은 손편지로 현장에 함께 했던 소감을 전해줬다”고 말했다.
이어 “배우들에게 편지를 통해 전한 내용 중에는 ‘표면적으로 이 이야기는 브로커와 아이를 버린 어머니가 함께 아이를 팔러 가는 여정을 담았지만 그 바탕에 또 하나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어머니가 되길 선택하지 않았던 여성 들의 이야기이고, 이 여정을 통해 그들이 어머니가 돼 가는 이야기’라는 것도 있었다”는 뒷이야기도 전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번 영화뿐만 아니라 ‘어느 가족’ ‘바닷마을 다이어리’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 가족과 공동체에 대한 작품을 만들어왔다.
그는 “가족 이야기를 주로 다루는 작가로 나 자신을 생각한 적은 없지만, 가족 안에는 여러 사람이 다양한 역할을 맡는데 인간의 다면적인 모습을 제한적인 공간 안에서 그릴 수 있다”며 “세월에 따라 역할이 바뀔 수 있고, 누군가 부재했을 때 그 부분을 다른 사람이 메워가는 점에도 재미 요소가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고레에다 감독 영화에선 혈연관계가 아닌 사람들이 가족이 돼 가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는 “혈연이 아니더라도 한 사람을 지탱하는 사회적 공동체가 있다”며 “내 경우 혈연인 가족들도 있지만 감독들이 모인 창작 그룹 등의 공동체에도 속해있다. 개인을 물 속에 가라앉지 않도록 도와주는 튜브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공동체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