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 ‘인력 미스매치’ 심각… 빈익빈 부익부 가속화

입력 2022-06-06 06:12
SK바이오사이언스 연구원이 백신 개발을 위해 R&D를 진행하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 제공

바이오 업계 스타트업 A사는 올해 초에 연구직 전문인력 상시 채용공고를 냈다. 하지만 아직까지 마음에 드는 인재를 찾지 못했다. 일단 지원자가 턱없이 적다. A사는 자세한 언급을 피했지만, 지원자는 10명 남짓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마저도 A사가 요구하는 업무 역량을 충족하지 못했다.

제약·바이오 업계에서의 인력 수급 미스매치가 심각하다. 특히 최근 사업을 확장한 대기업들이 연구·개발(R&D) 인력을 대대적으로 빨아들이면서 중소 바이오 업체는 수준급 인력을 구하기 점점 어려워진다. 현장에서는 기업 규모에 따른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고 토로한다.

중소 바이오 기업 B사 임원인 C씨는 6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연한 얘기이겠지만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인지도 부족과 처우 문제로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최근 인재 영입 소식을 보면 기업 간 수평이동이 많다. 한정된 인재 풀에서 서로 경쟁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대기업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 이들의 사업 확장은 고스란히 중소 바이오 업체의 인력난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한국바이오협회가 지난해 협회 회원사 약 100여명의 최고경영자(CEO) 또는 임원을 대상으로 애로사항을 공유한 결과, 가장 비중 있게 다뤄진 공통 문제는 인력난이었다. 역량 있는 인력을 채용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핵심인력 이직으로 이중고를 겪는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제약·바이오 업계의 인력부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정부는 2020년 초에 바이오 산업을 차세대 주력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5대 분야 ,10대 핵심과제 중 하나로 바이오 분야 전문인력 중점 육성 전략과 바이오 산업 우수핵심인재 양성을 제시했었다. 나름 효과는 봤다. 가장 최근 통계인 2020년을 기준으로 하면 제약·바이오 산업의 전체 종사자 수는 5만3546명으로 2019년(4만8683명) 보다 약 5000명 늘었다.

2016년~2020년 바이오산업 인력 변화 추이. (자료: 한국바이오협회)

그러나, 인력난은 여전하다. 전문가들은 인력 수급이 산업의 확장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고 분석한다. 바이오 관련 학과 D교수는 “제약·바이오에도 여러 전문 분야가 존재한다. 기업이 인력난을 호소하는 분야가 따로 있다”고 했다. 정 대표는 “R&D 분야에서 전문인력 부족이 나타난다. 정부에서 특성화대학원, 규제과학 전문가 양성교육 등을 시행하지만, R&D 인력 배출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화학·바이오산업인적자원개발위원회’가 지난 3월 발표한 보고서도 같은 시각이다. 제약·바이오 분야에서 품질 보증, 인허가, 연구·기획 등의 직무에 인력이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R&D 직종에서 경력직 부족이 두드러졌다.

보고서는 부족인원 발생의 주요 원인으로 ‘직무역량 부족에 따른 미채용’ ‘지원자 부족’ ‘고용형태 불일치에 따른 미채용’ 등을 꼽았다. 이 중에서도 직무역량 부족에 따른 미채용에 주목했다. 최근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전문인력 영입을 추진하는 흐름도 무관치 않다.

제약·바이오 분야 직무별 추정 현원 및 부족인원. (자료: 화학·바이오산업인적자원개발위원회)

신흥순 화학·바이오산업인적자원개발위원회 사무총장은 “직무 역량 부족에 따른 미채용은 지원자 중에 기업이 실제 채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력이 부족함을 의미한다. 바이오 업계의 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지면서 R&D에 특화된 인력 찾기는 더 어려워졌다”며 “기업들이 국내에서 검증된 전문가나 해외에서 전문가를 데려 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고 말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