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역사를 돌아봤을 때 지금과 가장 비슷한 상황은 1990~91년 걸프 전쟁이다. 미국 경제가 잠시 마이너스 성장을 하면서 인플레이션이 생겼다. 투자자에게 올해는 참 힘든 해일 것이다. 전쟁이 터진 그해는 어쩔 수 없다. 지금은 불확실하고 불안하지만 걸프전의 충격은 그렇게 길지 않았고, 전쟁이 끝난 뒤 2~3년 동안 시장이 오르지 않은 적은 없다.”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미국의 가파른 금리 인상 예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짓눌렸던 금융시장에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에 대한 경고음 또한 커지고 있다. 악재가 겹겹이 쌓여 있지만 국내 최고의 이코노미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홍춘욱(53) 리치고 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위기 속의 기회를 말했다.
KB국민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국민연금 투자운용팀장,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 등을 지낸 그는 ‘돈의 역사’ 시리즈로 잘 알려진 베스트셀러 작가로 경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친숙한 이름이다. 홍 대표에게 자산 거품이 터질 것이라는 우려가 가시지 않은 현 상황에 대한 진단과 인플레이션 시대에 대처하는 생존 전략을 들었다.
-최근 어떤 문제에 주목하고 있나.
“경제 전체에 가장 큰 문제가 레버리지 청산, 그러니까 빚내서 투자했던 분들이 청산 당하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부동산에 투자했던 분들이 집을 뺏기고 길거리로 내몰렸지 않나. 부동산 시장에는 아직 그런 징후가 보이지 않지만 주식 시장에는 ‘빚투’한 분들이 강제로 보유 주식을 청산 당하는 반대매매가 많아졌다. 주가가 빠지기 시작하면 돈을 빌려준 증권사가 해당 주식을 팔아서 대출을 회수하는 것이다. 빚투의 청산 혹은 그분들이 청산 당할까 두려워서 하는 매매가 늘어나면 시장이 흔들리고, 상황이 심화되면 부동산 시장과 은행까지 영향을 받지 않겠느냐는 걱정의 목소리가 나온다.”
-개미들이 뼈아픈 수업료를 치르는 셈이다.
“서학개미가 가장 많이 산 ‘프로셰어즈 울트라프로 QQQ(TQQQ)’가 연초보다 60% 정도 빠졌다. 3배 레버리지 ETF(상장지수펀드)로 나스닥100 지수가 오르면 수익률이 3배가 되고 지수가 하락하면 3배 빠진다. 그 과정에 비용이 녹아 들어가 3배 이익은 나지 않고 빠질 때는 3배보다 더 빠지는 게 반복된다. 간곡하게 말하지만 금리 인상 시기에는 주가 급락의 리스크와 청산의 리스크가 커진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지난달 미국이 41년 만에 물가 상승률 최고치를 기록했고 한국 소비자물가도 13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지난 주말을 앞두고는 인플레이션이 둔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글로벌 주가가 반등했다.
“인플레이션은 정점을 통과했고 천천히 내려올 것으로 본다. 8% 넘게 오른 미국 소비자물가가 하반기에는 4~5%까지 내려가지 않을까 싶다. 전쟁이 끝나지 않으면 고유가 흐름이 계속되고 인플레도 하반기까지 좀 더 이어질 것이다. 일단 경기가 나빠지고 있다. ‘원자재 먹는 하마’ 중국의 수입 수요가 둔화되면서 세계 경제의 성장 탄력을 둔화시킬 것이다.”
-인플레가 진정되리라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의 인플레에는 기름값과 집세, 중고차 가격의 급등이 큰 영향을 미쳤다. 유가가 100달러를 넘는 상황이지만 미국 3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5%를 뚫으면서 빚내서 집 사기가 어려워졌다. 집값이 오르기 힘들어지면 임대료가 진정될 여지가 있다. 차량용 반도체 부품 부족 때문에 한국의 일부 수입 자동차도 1년 반 가까이 기다려야 차를 받는다. 당장 탈 수 있는 중고차가 신차보다 비싸졌다. 미국은 중고차값이 작년 대비 40% 정도 올랐는데 이제 피크를 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인플레이션이 유가 반등으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했는데, 오일쇼크로 스태그플레이션이 지배했던 1970~80년대와는 어떻게 다른가.
“중동 전쟁이 1967년에 시작돼 이란-이라크 전쟁까지 15년 정도 이어졌다. 이후 고유가 시대와 불황을 배경으로 석유를 적게 쓰는 사회로의 전환이 이뤄졌다. 70년대에 100만 달러의 GDP(국내총생산)를 만들어내고 경제를 성장시키는데 필요한 원유의 양이 900배럴이었지만 이제 200배럴이 안 된다. 엄청난 기술의 혁신이 있었고 소비자들은 연비와 전력 사용량을 감안하게 됐다.
고유가가 다시 시작됐지만 40~50년간 진행된 에너지 소비 절약의 경제 흐름은 끝나지 않았다. 전쟁이라는 외부 충격이 없었다면 작년 말이나 올해 초가 인플레의 정점이었을 것이다. 오일쇼크 때처럼 15년씩 구조화된 스태그플레이션보다 1~2년짜리 인플레이션의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세계은행이 50년 만에 세계 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도 인플레이션을 넘어 스태그플레이션을 말한다.
“스태그플레이션의 위험이 높아진 건 사실이지만 아직 오지 않았다. 마이너스 성장 속에 높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걸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하는데, 미국의 물가 상승률이 높지만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생각하는 올해 미국 경제 성장률이 2%대다. 지난 30년간 연평균 성장률인 1.8%보다 높다. 지금은 스태그플레이션이 아니라 안정 성장 속의 인플레다.”
-지금의 상황을 역대 경제 위기 중 걸프전에 비교했는데.
“90년대 걸프 전쟁과 70년대 오일쇼크를 비교하면 걸프전은 전쟁이 끝나자마자 국제유가가 계속 빠져서 98년에 7달러까지 떨어졌다. 이번에도 충격이 길지 않을 것으로 보지만 그때처럼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석 달이 지났는데 끝날 징후가 안 보인다. 세계 3위 산유국인 러시아의 원유를 계속 못 쓰게 되면 걸프전보다 여파가 길어질 가능성도 있다.”
-불확실성 속에서 어떻게 투자해야 하나,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올인하지 않는 것. 달러를 사뒀으면 주식은 빠졌어도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작년 이맘때보다 200원 올랐으니 대응을 할 수 있다. 걸프전 때도, 2003년 이라크 전쟁 때도,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침공했을 때도, 전쟁 때는 항상 달러 가치가 오른다.
두 번째는 분할 매수 분할 매도다. 환율이 1300원 근처까지 갔을 때 한 번에 달러를 파는 게 아니라 최소 석 달에 걸쳐 뉴스를 보면서 3분의 1씩 파는 거다. 크게 못 벌지 몰라도 잃지 않으면 결국 이기게 된다. 기다리는 게 싫어서 올인을 하고 레버리지를 하다가 손실을 입는 일이 벌어진다.”
-안전자산이라는 금값도 두 달 동안 10% 가까이 하락했다.
“전쟁의 공포가 극에 달할 때 금값이 오르지만 전쟁에 대한 우려가 만성화될 때는 그 전처럼 오르지 않을 수 있다. 금리가 오를 때 금값이 오른 적도 드물다. 80년대 미국 연준이 금리를 20%까지 올렸을 때 금값은 고점에서 85% 정도 빠졌다. 미국 금리가 연말에 2~3%까지 간다면 은행 예금을 해도 3%가 나오는데 굳이 이자도 없는 금에 투자하겠나.”
-주식 시장이 흔들리면서 주식을 팔고 예금으로 갈아타라거나 현금 보유 비중을 늘려라, 쉬는 것도 투자다, 라는 이야기가 많다.
“그런 걸 봐도 시장의 쏠림이 극에 달할 때, 또 공포가 극에 달할 때가 기회라는 걸 알 수 있다. 저는 찬스가 멀지 않았다고 보는 쪽이다. 작년에 많이 팔았던 국민연금이 올해 사기 시작했고, 한국 기업들은 환율이 유리하니 이익이 더 날 가능성이 꽤 있다. 올해 주식 시장이 오른다는 말이 아니라, 올해 사는 게 낫다고 본다. 주식의 내재 가치가 훼손 안 된 상황에서 주가만 빠진 것이니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워런 버핏이 ‘시장이 공포에 떨 때 탐욕을 가지라’고 한 그때가 지금인 건가.
“지금이 싸다는 것이다. 올해 미국 나스닥 시장이 고점에서 30% 넘게 폭락하고 우리 부동산 급등세가 진정되니까 이제 투자는 끝났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항상 자산 시장은 많이 빠지면 매력이 생긴다. 저는 많이 오른 달러를 팔아서 국내 주식과 해외 채권을 저가 매수하고 있다. 1월부터 꾸준히 사고 있다.”
-한국 주식과 미국 국채에 반반씩 투자하는 자산 배분 전략을 강조하는데.
“지방 골프장에서 캐디로 일하는 20대 중반의 젊은이에게 편지를 받았다. 숙식을 골프장에서 해결하면서 월 400만원을 저축한다고 했다. 어떻게 투자해야 할지 알려달라는 질문에 ‘당신은 멘탈 금수저’라고 답을 보내면서 한국 주식과 미국 국채에 절반씩 넣는 것을 추천했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우상향하는 자산을 짝으로 같이 들고 있어야 하는데 한국 주식과 미국 국채가 그렇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나.
“한국 주식에 200만원, 미국 국채에 200만원을 투자하고 다음 달에 주가가 빠지면 주식을 더 많이 사고, 주가가 오르면 채권을 더 많이 사서 5대 5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매달 현금으로 이렇게 리밸런싱 해나가면 계속 저가 매수를 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자산 배분을 해보니 경험적으로 연평균 수익률이 8% 정도 나온다. 시장은 결국 저가 매수 앞에 보상을 해준다.”
-대표님의 포트폴리오 상당 부분이 ETF이고 자산의 1% 정도만 개별 종목에 투자한다고 들었다.
“개별 종목은 재미 삼아 1%만 한다. 에어비앤비와 노보노디스크(비만치료제 삭센다 제조사)라는 회사를 좋아하고 삼성전자와 현대차를 들고 있다. 주식 시장이 어려운 건 내가 주식을 샀는데 반대편에서 워런 버핏이 팔고 있을 수 있다는 거다. 여기는 체급 제한이 없는 사각의 링이고 정글이다. 인플레이션 시기에 주식 시장은 당연히 약세고, BBIG(배터리 바이오 인터넷 게임)에서 인플레에 강한 건자재 철강 조선 화학으로 갈아타는 유연한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쉽지 않다. 특히 우리보다 종목이 훨씬 많은 미국에 투자해서 승부를 보겠다는 건 운에 기대는 일이다. 통화 분산의 차원에서 인덱스를 사는 것을 권한다. 직구도 못 치면서 자꾸 변화구를 치려고 하면 안 된다.”
-채권은 어떤가.
“미국의 모기지채권에 투자하는 ‘아이셰어즈 MBS(MBB)’는 달러 쿠폰 이자가 5%를 넘는다. 한국 국고채 10년물 같은 ETF도 10년 동안 3% 이자를 준다니 얼마나 좋은가. 물론 채권 가격은 흔들리지만, 올해는 채권이다.”
-3~5%면 개미들이 기대하는 수익률에는 못 미치는데.
“워런 버핏이 지난 60년간 연평균 수익률 18.9%로 세계에서 세 번째 부자가 됐다. 그런데 한국의 개미가 20~30%, 아니면 100%의 수익을 노리고 투자한다는 건가. 국민연금의 연평균 수익률이 1999년부터 작년까지 6.8%인데, 그게 제 목표다. 93년부터 직장생활을 하면서 외환위기 카드위기 이라크전쟁 글로벌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 코로나 팬데믹까지 굵직굵직한 것만 여섯 번 두들겨 맞다 보니 소박해졌다.”
-증권사들이 하반기에 코스피 3000을 탈환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하반기에 한 번쯤 반등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그게 추세 전환인지 ‘데드캣 바운스(큰 폭으로 떨어지던 주가의 일시적 반등)’인지 알 수는 없다. 아주 강한 반등보다 하락 약세장 속에 반등 정도 아니겠나 본다.”
-증권사 애널리스트 출신 부동산 전문가 그룹인 ‘여의도학파’의 수장으로 불리셨는데, 그동안 부동산 매수 입장을 고수하다가 최근 입장을 바꾼 게 화제가 됐다.
“작년 10월에 올해 시장을 전망하면서 강세론을 꺾었다. 잔치는 끝났고 이제 좀 진정될 것이라고 했다. 2017년에 ‘인구와 투자의 미래’라는 책을 내면서 인구 감소와 부동산은 상관없다고, 제발 부동산을 사라고 썼을 정도였는데 부동산이 매력을 잃었다. 우선 많이 올랐다. 지난해 전국 아파트 가격이 20.2% 상승했다. 지난 20년간 카드 버블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오른 것이었다.”
-부동산이 역대 가장 비싼 수준이라고 했다.
“소득은 그렇게 오르지 않았으니 소득 대비 제일 비싸다. 또 금리가 오르고 있어서 실질 구매자 입장에서는 부담스럽다. 다주택자들 매물이 나오고 지방선거에서 개발 호재가 나오기 때문에 빠질 것 같지는 않지만 지금 사서 세금과 각종 거래 비용을 감안하면 수익이 나겠는가. 작년 이맘때 2.8%였던 주택금융공사 30년 만기 모기지 금리가 4.4%까지 올랐다.”
-부동산이 최대 40% 폭락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저도 버블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전망의 근거는 잘 모르겠다. 세종시를 예로 들면 20년 한 해에 44% 올랐다가 작년과 올해 연간 기준으로 5% 빠졌다. 이건 급락이 아니라 오히려 그 시세가 인정된 것으로 봐야 한다.”
-새 정부에 부동산 정책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
“지난해 집값이 오른 가장 큰 이유는 갭투자였다. 전세를 끼고 갭투자를 한 것뿐만 아니라 자기가 살고 있는 전세도 대출을 받은 고위험 투자자가 굉장히 많이 늘었다. 전세자금 대출뿐 아니라 보증을 해준 게 좋지 않은 정책이었다. 장기적으로는 주택 공급을 늘려야 한다. 재건축 재개발 규제를 완화하는 순간 집값이 오를 수 있지만 금리 인상과 대출 규제로 맞불을 놓으면 가격 상승을 억제할 수 있다. 만에 하나 버블이 생긴 상태에서 섣불리 정책을 취하다가 버블이 더 심해질 수 있으니 잘 감안해 시뮬레이션할 필요가 있다.”
-한국산 코인(암호화폐) 테라와 루나의 대폭락 사태가 있었는데, 코인은 어떻게 보나.
“금과 마찬가지로 금리가 오를 때 코인도 힘들다. 작년에 책을 준비하면서 코인에 대해 쓰려고 투자를 했다가 고점을 잡아 반토막이 됐다. 시대의 흐름에서 무시할 수 없는 자산이지만 적어도 올해 여름 정도까지는 굉장히 불확실할 것이다. 금리가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공격적으로 코인을 할 필요는 없지만 환경이 바뀌면 매력을 되찾지 않겠는가.”
-마지막으로, 여우 같은 투자자가 되라고 했는데.
“하나만 한 방에 하겠다면 여우가 아니다. 살살 살피면서 이쪽 굴도 파보고 저쪽 굴도 파보는 거다. 그리고 아까 말한 캐디처럼 열심히 저축하는 사람이 이긴다.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너무 베팅하지 않으면 좋겠다.”
권혜숙 인터뷰 전문기자 hskw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