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 한 발 행복을 향해…‘추앙 신드롬’ 남긴 ‘나의 해방일지’

입력 2022-05-30 17:42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엄마의 장례를 치르고 바닷가로 떠난 아버지와 삼 남매. JTBC 제공

모든 관계는 노동이고, 끼리끼리는 과학이다. 나의 문제점을 보고 싶지 않아서 상대방을 욕하고 형편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사는 게 딱히 즐겁지 않고, 누군가에 대한 미움이 삶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주인공들은 한 발 한 발, 어렵게 어렵게 앞으로 나아간다. 각자의 해방을 향해.

JTBC 토일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가 숱한 명대사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리며 29일 막을 내렸다. 최종회 시청률은 수도권 7.6%, 전국 6.7%(닐슨코리아, 유료가구 기준)로 높지 않았지만 박해영 작가는 전작 ‘나의 아저씨’와 마찬가지로 마니아를 양산해냈다.

드라마는 기정(이엘)과 창희(이민기), 미정(김지원) 등 염씨 삼 남매의 일상을 현실적으로 그렸다. 가족을 주인공으로 풀어가며 다양한 상황에 처한 여러 세대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주연을 맡은 이민기, 김지원, 손석구, 이엘은 이번 드라마로 ‘인생캐릭터’를 만들어내며 열연을 펼쳤다.

초반에 정적인 전개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던 ‘나의 해방일지’는 ‘추앙 신드롬’을 만들어냈다. 내 삶의 주인공이 내가 아닌 것 같고, 늘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고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미정은 구씨에게 “나를 추앙하라”는 말을 던진다.

시간이 흐른 후 재회해 함께 눈을 맞는 미정(김지원)과 구씨(손석구. JTBC 제공

왜 추앙일까. 관계를 통해 얻을 이익을 계산하지 않고 온전히 상대방의 행복을 바라는 관계를 박 작가는 추앙하는 것이라 했다. 현실 속 대부분의 관계가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드라마는 꼬집는다. 구씨가 미정을 향해 “나 이제 추앙 잘 하지 않느냐”고 묻는 건, 그래서 뜨끔하다.

윤석진 드라마평론가는 “상투적인 방식이 아닌, 환상에서 벗어전 사실주의적인 묘사가 돋보였다”며 “‘추앙하라’는 말은 미정이 자신의 존재감을 찾겠다는 인식의 전환을 의미한다. 구씨가 미정을 통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되며 두 사람이 조화를 이룬다”고 분석했다.

해방은 나를 온전히 나로 인정하는 일이다. 남들의 시선과 평가를 통해서 자신을 바라보고 두려움이나 증오, 불안으로 자신을 옥죄며 살아간다. 저마다의 인생에서 해방을 꿈꿨던 삼 남매는 추운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이한다.

할아버지 할머니에 이어 엄마까지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지막을 마치 제 자리인 양 지키던 창희는 운명처럼 장례지도사의 길을 걷는다. 공허한 마음으로 살던 미정은 구씨로 인해 내면을 사랑으로 채우게 된다. 행복하면 더 큰 불행이 올 것처럼 두려워하던 구씨는 아침마다 자신의 마음 속을 찾아오던 증오의 대상을 환대하기로 한다.

서울로 떠나 살던 삼 남매가 아버지의 생신을 맞아 집에 돌아오는 장면. JTBC 제공

계속해서 해방을 향해 나아갈 뿐 이상적이지도, 비관적이지도 않은 열린 결말은 드라마의 주제와 같은 결을 유지한다. 아내의 갑작스런 죽음을 통해 삶을 되돌아본 아버지 제호(천호진)가 자식들에게 “혼자 살 수 있으면 혼자 살아라. 너희들은 나보다 나으니까”라고 말하는 장면은 스스로 자유로워지라는, 진정한 해방에 대한 메시지로 읽힌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롭지 못했던, 풀지 못했던 것에 대해 도전할 용기를 줬다. 제목이 주려고 하는 메시지를 끝까지 잘 유지했다”며 “어떤 선택을 하든지 자기 자신을 중심에 세우고,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가의 힘이 드러났다”고 분석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