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극제는 예술 감독 체제로 전환되면서 1대 최용훈, 2대 남명렬에 이어 3대 김승철(59) 연출이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이끌어 오면서 작품성이 한 단계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승철 연출은 “전임 예술 감독들의 서울연극제 방향과 기조(基調)를 유지하고 정착시키려고 노력했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정량·정성 평가에서도 우수한 성적표를 보이면서 올해 축제 예산이 늘어났고 관객 참여율도 높아졌다. 연출과 작가로 더 알려진 김승철 예술 감독은 배우 출신으로 공동창작 아르케를 창단해(2008)<아름다운! 보이첵>으로 데뷔하면서 본격적으로 연출을 하고 글을 써오고 있다. 90년도에 서울연극앙상블에서 10여 년 동안 배우로 무대에 서 왔고 20여 작품에서는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 냈다. 그의 작품을 본 것은 <남자는 남자다>(1992, 연출 임형택,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였고 출연한 작품인 줄 인터뷰를 하면서 알게 됐다. 작품의 팸플릿 표지 색을 말하자 그는 기억을 못 했다. 책장에 보관되어 있던 책자를 보내고 나서야 그는 “아, 생각납니다.”하며 이모티콘으로 웃어 보였다. 안경을 쓰고 약속 장소로 들어선 그는 동안(童顔)이었고 전날 소주를 좀 했다고 웃어 보였다. 테이블 7~8개가 붙어있는 2층 커피숍은 창문으로 햇살이 자연광을 만들어 주었고 소음(騷音)이 밀려왔다. 녹음 마이크를 바꿨고 앞으로 밀었다. 그는 한마디를 던지면 주제에 대해 다양한 관점과 시선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갔다.
| 서울연극제, 주제와 규제를 없애니 작품이 다양화되고 관객 만족도는 높아졌다.
29일, 서울연극제 폐막식에서 칼비노 소설 <반쪼가리 자작>(창작조직 성찬파, 각색연출 박성찬)이 대상 작품으로 선정되었고 우수상은 <심청전을 짓다>(극단 모시는 사람들, 작, 김정숙, 연출 권호성), <7분>(극단 파수꾼, 이은준 연출, 황승경 번역)으로 돌아갔다. <타자기 치는 남자>에서 공안 경찰 최경구로 분한 배우 최무인과 <7분>의 전국향 배우가 연기상을 받았다. <반쪼가리 자작>은 세계사적인 전쟁을 통해 투영되는 죽음과 삶, 선과 악의 양가적인 인간의 욕망을 우화적인 놀이성과 동화적인 판타지로 그려냈고 배우들은 칼비노의 텍스트를 신체로 구현하며 동화적 상상으로 무대를 생산적으로 전경화시켰다. 최무인 연기는 <타자기 치는 남자>의 80년대 시대적 인물을 배우의 언어로, 캐릭터로 구현(具顯)해 내면서 완숙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올해 43회 서울연극제는 8개 작품이 공식 선정 작품으로 공연되었고 그 중심에는 김승철 서울연극제 예술 감독이 있었다.
― 연극제는 수상 작품에 관대한 평가를 하지 않는다. 심사위원들의 공정성에 시비가 붙을 수 있는데 다행히도 서울연극제는 이런 잡음이 들리지 않았다. 대상과 작품상 선정 작품들은 동시대 연극의 현상을 분석하는데 기준이 되어왔다. 물었다. “올해 어떤 방식의 선정 기준과 과정을 거쳐 작품들을 선정하나?”
“작품 선정을 위한 최종 선정 과정에는 심사위원 외 들어 올 수 없지요. 서울연극제 집행부도 참여 못합니다. 작품 선정은 치열한 토론을 거치게 되는데 공정하게 판단하려고 합니다. 작품 외적인 요소가 심사 기준이 된다면 심사 공정성은 깨지게 되고 서울연극제의 위상도 떨어지게 되는 거지요. 녹취와 기록은 기본입니다. 출품 작품들이 동시대 무대로 전달되었는지 작품성과 연출력, 배우들의 연기의 앙상블 등이 선정 기준에 포함됩니다. 이러한 방향성과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을 해왔고요. 작년 서울연극제 합평회 하면서 발제를 맡으신 한 평론가는 서울연극제 중 작품의 질적인 완성도가 높아졌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작년에는 ‘생활풍경’(김수정 연출)이 대상을 받고 ‘붉은 낙엽’(이준우 연출)은 우수상을 비롯해 4개 부문을 받은 작품이었어요. 붉은 낙엽은 올해 동아연극상에서 작품상과 연출상을 받았지요.”
― 올해 서울연극제가 43회째인데, 예술 감독으로 연극제 방향성은.
“연극제 방향성은 분명하고 일관됩니다. 1대 최용훈 예술 감독부터 서울연극제 기조(基調)를 잡아 놓은 게 있어요. 창작 초연, 번역극, 재공연작품을 비롯해 특정 주제에 한정하지 않는 작품 선정의 범위를 없앴습니다. 남명렬 예술 감독 이후 3대 예술 감독을 맡아오고 있는데 이 방향을 지키려고 했어요. 무대에서 공연되었을 때 작품의 미학적인 완성도와 공연 퀼리티가 좋겠다고 예상되는 작품을 심사위원이 공정하고 엄격하게 선정합니다. 이러한 분위기로 전환된 뒤 서울연극제가 ‘정량’, ‘정성’ 평가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를 받고 있고 ‘서울연극제가 의미 있는 방향으로 가고 있구나’라고 판단되어서 예술 감독을 맡으면서도 전임 감독님들이 구축한 체계와 방향을 견고하게 하려고 했어요. 올해 연극제도 무대 미학과 동시대적인 의미를 담아낼 수 있는 공식 참가작들을 엄격하게 선정했다고 생각해요.”
― 그래도 서울연극제의 특성을 살려낼 수 있는 주제와 컨셉을 정해 놓는 게...
“주제에 부합되는 작품만 선정하면 완성도 있는 작품도 주제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에 탈락하는 현상이 생기게 될 수 있어요. 주제 때문에 공연의 질적인 수준을 담보할 수 없고 완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공연으로 부딪치는 한계 때문에 과거 서울연극제 출품 작품들 유료 관객 점유율이 정량 수치로 평가가 안 좋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연극인들과 대중의 관심이 멀어지게 되고 위상도 떨어지면서 연극인과 평론가들 평가도 좋은 점수를 못 받았어요. 그래서 주제로 한정하지 말고 다양한 관점에서 작품성 위주로 평가하고 선정하는 방향성을 유지하고 있는 겁니다.”
― 김승철 예술 감독 체제에서 서울연극제 공식참가 작품의 변화는 다양성으로 이해하면 되겠군요.
“변화는 정량적인 통계로 나타납니다. 긍정적인 변화의 신호입니다. 지원 작품도 늘어나고 있어요. 평균 50~60여 작품인 데 비해 작년, 올해는 80 작품 이상 지원을 했습니다. 장벽을 낮추고 작품성을 올리니까 연극인들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관객점유율에서도 변화로 나타나게 돼요. 작품 만족도가 올라 유료 관객 비율도 높아졌어요. 중요한 것은 ‘관객의 변화’에요. 대학로에서 서울연극제 연극을 보는 관객 비율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연극인들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고요. 작품 지원이 다양해지면서 선택 폭도 넓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선순환이 된다고 생각해요.”
―서울연극제의 참가작품 지원 금액도 예년과 비교해 늘어났죠.
“서울연극제가 몇 년 동안 서울시 축제에서 높은 등급을 받고 있어요. 작품성과 관객점유율이 올라가니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대한민국 축제 지원 사업 예산도 예년에 비해 증가하였습니다. 참가작품의 지원금도 변화가 생겼고요. 올해 대극장 공연은 4천만 원, 소극장 3천만 제작지원금을 작년부터 주고 있어요. 축제 평가가 좋으니까 예산 증가를 요구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기는 겁니다. 수상단체, 개인상금도 늘면서 서울연극제 참가작품들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지요. 그만큼 공식참가 작품들은 정말 치열하게 작품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 서울연극제에서 예술 감독의 역할은.
“공식 참가작에 대해서 예술 감독이 관여하게 되어 있지요. 서울연극축제는 집행부에서 운영하고 예술 감독은 공식 참가 작품 심사위원장을 겸하고 있습니다. 예술 감독 체제로 변화되면서 공식 참가 작품의 방향과 공정한 심사 권한을 가지고 있고 그 책임을 지는 자리에요. 심사의 공정성이 담보되어 있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고 연극제 권위도 떨어집니다. 심사위원 선정도 중요하고 연극적인 가치관도 선정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심사위원들 분야 별로 연극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예술성, 연극의 방향과 순수성을 제시하고 그것을 증명해 오셨는지도 판단 기준이 되고 있어요. 이러한 원칙으로 선임을 했고요. 평가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판단을 맡깁니다. 예술 감독을 포함해서 5명인데 심사위원 한 명으로 작품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겁니다.”
― 작년과 올해 예술 감독을 맡으면서 사회 분위기는 ‘코로나19’로 연극계도 침체가 되었는데, 서울연극제도 피해 갈 수 없었을 것 같다.
“예술 감독을 맡으면서 하고 싶은 것이 있었어요. 연극은 연출과 배우로만 무대를 만들어 갈 수 없잖아요. 전문 스태프들과 공동작업입니다. 묵묵히 무대를 지키는 무대 뒤 분들을 위해 예우를 할 수 있도록 부대행사를 만들고 싶었어요. 무대디자이너의 전시회나 분야 별 세미나를 개최해서 연극제에서 소외되지 않고 연극인으로 긍지를 느끼실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싶었는데 코로나19로 못하게 되었지요. 공식참가작 위주로 방향을 잡고 임기를 끝내야 하니까 아쉽습니다.”
| 다시 돌아온, 아련한 70∼80년대의 기억 <툇마루가 있는 집>
툇마루가 있는 집은 김승철 연출의 대표 작품이다. 창작산실 대본공모(2016) 선정 작품으로 이듬해 대학로예술극장에서 초연하면서 제39회 서울연극제 우수작품상과 연기상(강애심, 이경성)을 받았다. 그해 <툇마루가 있는 집>을 비추는 한옥의 전경(全景)은 삶의 살점이 녹아내린 듯 빛바랜 추억을 담은 흑백사진으로 들어가 있었다. 연극 연출가로 분한 극중 인물 남자역(이대연 분)으로 소환되는 70∼80년대의 애잔한 삶과 가족사는 애잔했다. 남편 술주정과 폭력을 견디며 눈물로 가슴을 쓸어내리고 두 자식을 품고 키워낸 어머니(이경성 분)는 전쟁 통에 이북에서 월남해 모진 풍파를 막아서며 ‘툇마루 집’을 지켜온 할머니(강애심 분)가 노환으로 치매에 걸렸어도 맏손주 이름만큼은 당차고 또렷한 소리로 불러대고 며느리를 “나쁜 년, 저년”하며 웅얼거리며 얄궂게 혼내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들 가족 삶을 마주할수록 옛집을 밀치고, 덜어내며 삶과 시대의 향기를 무대로 진하게 피어나게 한다.
툇마루 집에서 살아갔던 인물들은 가족과 뒹굴며 애환으로 살결을 맞대고 70∼80년대 삶을 같이한 인물들이다. 상경해 버스 안내양을 하며 억척스럽게 살아가는(박시내 분)도 있고, 툇마루 집 한옥 한 켠에서 살아가는 정양(구선화 분)은 술집을 다니며 고향 부모와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억척스럽게 살아가면서도 죽음으로 돌아오면 눈물이 흐른다. 툇마루 집 맏아들 성구(김현중 분)는 시대에 대학생으로 유신과 군부독재에 저항하며 한국 사회 민주주의를 외치던 청년으로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온다.
형 죽음으로 툇마루 집 맏아들이 된 진구도 삶의 애잔한 역사를 그림자처럼 마주 시키며 때로는 그 시절 상처를 끄집어내면서 화해와 용서로 애잔한 가족사를 재현한다. 보는 내내 질기고 아픈 망각(忘却)의 역사를 또렷한 기억으로 내려앉게 하는 <툇마루가 있는 집>은 쓰리고 아프고 애잔하면서도 멍해진다. 그 사이로 가족의 온기와 웃음으로 슬픔을 밀쳐내는 강애심 배우의 능청스럽고 분신 같은 연기는 깊게 잠들어 있는 우리네 할머니를 소환해 흑백 앨범을 들추게 만든다.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기 힘들어 칼을 빼 들고 눈물을 흘리며, 과거 시간을 고통스럽게 따라가는 어린 시절 진구(김보라 분)는 그 시대 술주정에 폭력적인 아버지를 바라보며 써 내려간 일기장과 쪽지를 툇마루 밑에 숨기고 몰래 안방으로 들어가다 돌부리에 치어 울음을 참아내는 진구 연기는 내면의 통증과 살점을 잘라내게 했다. 이 작품이 대학로 예술극장으로 6월 24일부터 7월 10일까지 돌아온다.
― 연극<툇마루가 있는 집>이 돌아오는군요.
“제작비가 많이 든 작품입니다(웃음). 작년에 밀양공연예술축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공연 준비하고 있다가 마지막 주에 코로나19로 공연을 못 하게 되었지요. 여배우는 삭발까지 하면서 밀양공연 준비를 많이 했거든요. 배우들이 많이 아쉬워했고 울기도 했어요. 공연을 다시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고 올해 재공연은 하게 되는 거에요. 지원금도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1년 동안 임대료를 내면서 무대를 보관하고 있었고요. <툇마루가 있는 집>은 좀 특별합니다. ‘집’ 이라는 특정 공간이 배경이 되니까 연대감이 끈끈해지는 것 같고 공연을 하면 한 가족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여전히 70∼80년대 한국 사회의 상처들이 치유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 시대 분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 <툇마루가 있는 집> 작품을 보면서 뜨거운 감정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시대의 애환과 상처들이 살점으로 밝혀지면서도 강애심 배우의 노련한 웃음 코드가 눈물이 나면서도 애잔한 감동으로 70∼80년대를 소환해 낸 것 같다.
“70∼80년대 한국 사회는 뜨거웠던 시대였지요. 독재와 군부 권력은 한국사회 산업화를 외치면서도 민중과 서민들은 국가에 헌신하고 희생해야 되어야 하는 시절이었으니까요. 여전히 화해와 용서로 치유되지 않고 있잖아요. 상처가 여전히 베여 있고 그 상흔(傷痕)이 말끔하게 치유되었다고 말할 수 없죠. <툇마루가 있는 집>을 통해 그 시대 역사에 이름이 지워져 있는 분들한테 조금이나마 위안을 드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한국 사회가 발전적으로 경제성장을 이루게 된 것도 그분들의 시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연극을 통해서 위로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여전히 상처가 지워지지 않고 끝나지 않는 70∼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툇마루가 있는 집> 재공연을 하게 된 겁니다. 2년 동안 한국 사회가 코로나19로 힘든 시기를 보냈잖아요.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간호사, 의사, 의료관계자분들이 헌신하셨던 것처럼 그분들도 이 시대 코로나로 시대적인 상흔을 안고 살아오셨다고 생각해요. 이 작품으로 ‘당신들 덕분에 우리가 70∼80년대처럼 이겨냈다’고 말하고 싶었고 공연을 통해서 작은 위안을 드리고 싶어서 재공연을 추진하게 되었지요.”
― <툇마루가 있는 집>은 김승철 연출의 자전적 이야기죠?
“작품 배경이 되는 ‘툇마루가 있는 집’ 구조는 어릴 때 제가 살던 집을 그대로 재현했어요. 등장인물의 관계도와 집의 시대 배경과 작품으로 드러나는 삶의 상처 일부는 비슷한 것은 맞는데 반은 창작이고 실제 개인사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입니다. 대본을 쓰는 이유는 제가 연출할 작품을 쓰는 겁니다. 지금은 작가보다는 연출가로 관심이 많아요. 나이를 더 먹게 되고 연출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조용히 글만 쓰고 싶어요. 지금은 작가보다는 연출로 기억되는 작업을 하고 싶어질 뿐입니다.”
― 김승철 연출 작품 중에는 창작 초연 작품들도 있으면서도 재구성한 작품들도 많더군요.
“번역극을 재구성한 작품도 한국 사회 연극 문화에서는 창작으로 분류하잖아요. 루이지 피란델로 작품 <여러분이 그렇다면 그런거죠>를 재구성한 <그류?그류!> 같은 경우 초연을 상명아트홀에서 했어요. 워크숍으로 올린 무대인데 공식적으로 외부로 발표한 첫 창작 대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구성한 작품을 창작극으로 보는 견해는 다를 수 있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공동창작 아르케의 창단공연이 <아름다운 살인자! 보이첵>이였는데 제가 공연한 작품들은 대본을 다 고치고 원작 그대로 한 작품이 없어요. 그런 면에서 완전히 재구성한 작품은 작가가 다시 쓴 작품인 겁니다.”
<그류?그류!>는 김승철 연출이 1972년도 충청도 시골마을(대추리)을 배경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원작은 이사 온 폰자씨 가족들의 삶의 방식을 두고 마을 사람과 희비극적 구조를 이루며 인간의 진실성을 풍자로 투영시키고 있는 작품인데 피란델로의 인간의 부조리한 날카로운 풍자성을 가상의 한국 사회 농촌 마을 풍경으로 공간 변화를 주고 있다. 원작의 살점을 들어내고 등장인물들은 각자 시선으로 가족사(史)의 진실을 파헤쳐 간다. 웃음의 타이밍을 촘촘하게 연결하면서도 인간과 본능, 진실, 차이, 관심, 보이지 않는 언어 폭력에 대한 인간의 본성(本性)을 성찰을 할 수 있는 작품으로 끝날 때까지 웃으면서도 메시지는 인간과 이웃을 돌아보게 한다. 김승철 연출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 2008년도에 연출로 데뷔하고 작품을 써오면서 어떠한 변화가 있나.
“<아름다운 살인자! 보이첵> 공연이 올해 15년이 되었어요. 돌아보면, 초기 작품들과 지금은 연출로 변화가 있습니다. ‘아르케’의 의미도 본질, 근원의 의미를 담고 있어요. 당시에는 인간 본능을 유발하는 동기가 인간 결핍에 있다고 바라봤고 행동을 유발한다고 생각했어요. 초기 작품에는 배우들 에너지도 컸던 것 같고, 작품성 향으로 나타났던 것 같아요. 배우들한테 요구한 것이 등장인물로 인간 본능의 근원으로 깊게 가길 바랬어요. 보이첵 연습하면서 배우들과 작품이 굉장히 뜨거웠습니다. ‘징글징글’하다고 느꼈을 겁니다. 인간 본능과 그 본질에 다가서려고 해보세요?(웃음) 배우는 연기 기술을 배제하고 인물을 표현하려면 자신의 본능적 에너지와 감각으로 채워야 하는데, 그때는 그것을 요구할 때였습니다.
그는 연출로 데뷔하면서 주목 받았다. 창단 공연 이후 <그류?그류!>(2009), <전야제>(2009), <안티고네>(2010), <소뿔자르고주인오기전에도망가선생>(2015), <툇마루가 있는 집>(2017), <전쟁터의 소풍>(2018),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2020), <화전>(2022)등 30여 작품을 연출해 왔고 작품을 써왔다. 서울연극인대상 연출상(어느 물리학자의 낮잠), 공연과 이론 작품상(소뿔자르고주인오기전에도망가선생), 서울연극제 우수작품상( 툇마루가 잇는 집), 서울연극인 대상 연출상(길), 2020창작산실 대본공모(셋톱박스), 월드 2인극 페스티벌 최우수 작품상(2019, 들꽃)을 수상했다.
― 그의 말대로 배우의 본능과 에너지로 무대를 그렸던 <아름다운! 보이첵> 데뷔 작품은 그해 ‘밀양공연예술축제’ 젊은연출가전 대상과 연출상을 받으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글을 쓰고 연출을 하게 된다. ‘30여 작품을 쓰고 연출을 해오면서도 2008년도 연출의 관점과 무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동일(同一)한가?’
“(웃음) 이제 그런 생각이 없죠. 변화되었다면 그 지점들 같아요. 이제는 본능 보다는 객관적으로 발현(發現)되는 세상과 사회 현상들을 포착해 무대에서 구현하려고 해요. 무대에 대한 시선에 변화가 오니까 배우들한테도 본질에 다가서라는 요구는 안 하게 됩니다. 그 본질과 객관적인 지점들을 발견해서 극 중 인물화 시켜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고요. 작품도 배우의 연기도 그 지점에서 고민하는데 어렵습니다. 이러한 변화로 나타난 작품이 <툇마루가 있는 집>이에요. 삶과 현실의 현상들을 무대로 투영하면서도 작품은 편안하고 묵직하게 다가서는 작품이 된 것 같아요. 배우들 연기도 편안하면서도 감정으로 들리지 않고 감동으로 느끼게 되는 작품이 된 것 같아요.”
| 배우에서 연출, 극작가로 ‘창작공동체 아르케’를 이끌어가는 김승철
<창작공동체 아르케>를 이끌면서 2008년도 이후부터 작가와 연출하는 있는 김승철 예술 감독 꿈은 배우였다. 동국대학교 연극학과를 졸업하고 90년도부터 ‘서울연극앙상블’에서 배우로 활동했다. 그는 대학 시절 은사였던 故) 안민수 교수한테 최민식, 한석규처럼 대한민국 대표적인 배우가 될 수 있는 연기의 재능을 보였고 은사는 그를 아꼈다. 졸업하고 극단 생활을 하면서 <오이디푸스 왕>(1990), <페드라>(1990), <코뿔소>(1993),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1995), <햄릿- 죽음을 명상하다>(2011)등 15여 작품에 배우로 무대에 섰고 연극, 영화, 드라마에서 다양한 활동을 했다. 그의 대학 후배는 “김승철 연출은 대학 다닐 때부터 천부적인 배우의 재능을 보였다고 학교에서는 전설처럼 들리는 말이 있었어요. 그만큼 연기를 잘하셨고 안민수 선생님도 그런 선배를 아끼셨다고 들었어요.”
―프로필에는 연극 <방문>이 배우로 마지막 작품이더군요.
“90년도부터 ‘서울연극앙상블’에서 배우로 시작해서 10년 정도를 무대에 서 왔어요. 공연을 끝내고 안민수 선생님이 격려 하려고 하셨는지 ‘선생님, 배우로서 무대에서 해야 하는 게 보이는데 배우로 그 위에 있는 게 안 됩니다. 그게 한계인 것 같아요’ 하니까 “그걸 못 보는 배우들도 많잖아” 하시면서 위로해주시더군요. 배우에 대해 부족함과 깨달음이 지워지지 않는 시절이었어요. 배우가 몸이나 소리를 통해서 인물을 표현해야 하는데 그 지점에서 만족할 수 없었고 한계를 느끼게 되었죠. 배우로 저는 좋은 악기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연습하는 과정에서 배우와 연출이 해석이 다를 수 있는데, 해결이 안 되면 연출 의견을 따라갈 수밖에 없잖아요? 작품을 지휘하는 사람은 연출이니까요. 제가 바라보는 해석으로 작품을 공연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기 시작했고 배우의 한계를 느끼면서 ‘자가 격리’라고 할까요.(웃음) 그 이후로는 배우로 작업을 안 했습니다.”
― 배우의 한계를 느끼게 되면서 <창작공동체 아르케> 창단까지 7~8년을 ‘자기 수양’을 하면서 보냈군요.
“수양(修養)은 거창한 표현 같고 도망간 겁니다. 혼자 고독한 삶을 살았고 연극을 그만둘까도, 다른 삶을 살아볼까도 고민하던 시기였어요. 무대에서 살아가야 하는 삶의 본질을 만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도서관에 처박혀 머릿속으로 복잡한 시기를 보냈지요. 그러다가 연출 작업을 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고 극단을 창단한 겁니다. 창단 공연 이후 극단을 지금까지 운영하면서 글 쓰고, 연출을 할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 했어요. 한 작품을 하고 끝내더라도 영혼을 바쳐서 공연한다는 생각으로 버텨 왔는데 지금까지 이어져 가고 있습니다. 다행히 <아름다운 살인자! 보이첵> 평가가 당시에 좋았고 ‘밀양공연예술축제’에서 상을 받게 되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겁니다. 이상한 운명이죠.”
― 창단 이전은 희곡을 쓰고 연출 한 적이 없었군요.
“전혀 없었어요. 도서관에서 소설을 읽고 깨달은 사유(思惟)들을 글로 정리 한 게 다였어요. 논리적으로 정리가 안 되면 글로 표현을 못 해요. 문장으로 표현이 안 된다면, 망상이죠. 그때는 논리적으로 정리를 하고 싶어서 글을 쓰게 되었고, 소설 습작도 많이 했었는데 시, 희곡은 안 썼습니다. 극단을 창단하면서 희곡을 쓰기 시작했지요. 소설의 텍스트만으로는 무대화를 할 수 없으니까 그때부터 희곡으로 옮기면서 쓰게 된 것 같아요. 제가 작가로 포착해 내고 싶은 것은 세상과 삶의 부조리한 현상인데, 논리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문제에 대해 질문을 하고 싶어서 대본을 쓰기 시작한 겁니다. 재구성 작품들도 그런 관점에서 원작이 말하는 것에 제가 포착한 한국 사회의 현상들을 담아내려고 하는 편이에요. 본질적인 질문을 무대에서 던지기 위해 희곡으로 말하고 표현하고 싶은 겁니다.”
| “배우의 개성만이 무대에서 존재할 뿐, 연기 기술로 돋보이는 것보다 진정성으로 인물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 배우들한테 극중 인물로 되어가는 과정에서 어떤 것들을 요구하나.
“배우를 하면서 느낀 거지만 완벽한 배우는 없다고 생각해요. 배우의 개성만이 무대에서 존재할 뿐입니다. 배우마다 주어진 역할에서 개성과 연기로 표현되는 이미지적인 개성은 있을 수 있는데 완벽한 연기의 악기는 없는 것 같아요. 극중 인물로 그것을 도달 할 수 있다면 ‘신’ 인 거죠. 배우마다 매력이 다르고 차이가 무대에서 모여서 작품으로 표현되는 겁니다. 배우마다 잘 할 수 있는 연기 스타일들이 존재하는 거죠. 저는 배우들한테 기술적으로 완벽하길 바라지 않습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대에서 주어진 인물로 진정성이 있기를 바랄 뿐이에요. 배우가 그 인물로 진정성이 있었으면 작품은 살아나고 배우도 보입니다.”
― 연극배우가 동일한 인물로 감정을 몰입하고 공연마다 인물의 진정성을 유지하려면 그 연기의 진정성을 유지하는 체온도 연기의 기술로 생산되고 표현되어 진다고 생각하는데.
“맞아요. 배우가 진정성에 다가가는 것도 배우로서는 기술이에요. 그 기술이 부족하더라도 인물을 대하는 마음과 의지로 진정성 있게 극중 인물이 표현되어 진다면 관객은 작품과 인물에게 공감할 거라고 생각해요. 대학교 1학년 때 안민수 선생님이 녹음기를 들고 들어오셨어요. 외국 배우가 ‘햄릿’의 한 장면을 연기하는 것을 오디오로 들려주시면서 ‘이 대사를 들어봐라. 배우의 대사가 음악적으로 얼마나 아름답게 느껴지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대사 리듬이 음악이다’ 하시면서 다른 장르를 연기하는 배우의 연기 소리를 반복해서 들려주셨는데 충격이었어요. 정반대의 캐릭터를 표현한 배우가 한 사람 이였는데 ‘로렌스 올리비에’ 였는데 처음으로 느낀 충격적이었죠."
― 스승의 기억을 선명하게 하는군요.
“연극적으로, 인간적으로 많은 제자가 존경하던 분이시죠. 한 명, 한 명을 인간적으로 보듬어 주셨어요. 인간적인 매력을 넘어서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연극에 대한 명확한 가치관이 있으셨어요. 누구든 설득 할 수 있는 연극적인 논리 체계가 있으셨고요. ‘연극은 과학’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선생님이셨어요. 연극을 과학적 논리로 해석하고 그것을 설명해주시면서 연극예술을 이해시켜 주셨는데 해석하는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선생님은 연극을 해석하시면서도 아인슈타인 상대성이론, 우주 운동의 원리 등을 접목하셔서 작품을 해석하세요. 연출과 배우들이 작품에서 동선을 어떻게 찾아가는지 대해서도 ‘이쪽, 저쪽’이 아니라 배우나 연출이 동선을 만들어 갈 수밖에 없도록 원리로 이해시켜 주시죠. 인물과 인물, 인물과 관계, 그 사이에서 오는 원리와 움직임들을 기분과 감정으로 움직이고 동작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해석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요. 기억에 남는 말씀이 있는데 ‘배우가 기분대로 움직이거나 감정만을 의존해 동작하게 된다면 무대는 작품과 해석이 안 드러난다’ 라는 것을 말씀해 주셨지요.”
―‘로렌스 올리비에’ 연기가 대학 시절 충격을 주었다면 연출로 바라보는 배우는.
“고통스러운 질문입니다만, 이대연 배우, 이해성 대표 등도 정말 좋은 배우의 감각을 지니고 있는 분들이에요. <툇마루가 있는 집> 강애심 배우는 연기를 표현하는 스킬도 훌륭한데 삶 자체가 아름답고 무대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연기 기술까지 탁월하니까 배우로 모범적인 사례가 될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해요. 이경성 배우는 배우로 특별한 게 없어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배우죠. 그런데도 무대에서 굉장히 성실한 배우예요. 나이가 들수록 연기가 깊어지고 연기의 내면으로 숙성되어 전달되는 울림을 주는 배우 같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연기가 무거워지는 배우라고 할까요. 이 배우가 어느 지점까지 연기로 갈 수 있을까 생각되고 현재에도 진행 중이에요”.
―10월에는 손턴 와일더의 <우리 읍내>를 준비하고 있다고요.
“돌아가신 김일우 선생님이 연출하신 <우리 읍내> 작품을 문화센터에서 본 적이 있어요. 돌아보면 한 40년 된 기억이고 작품인데, 그때 선생께서 대본을 주셨어요. 그 대본을 여전히 소장하고 있는데 올해 <우리 읍내>를 준비하면서 그 대본을 보니까 번역이 오래되었어도 분명한 작품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았어요. 극단 배우 한 명이 뉴욕 공연 전문 서점에서 구입해서 보내온 원문 작품을 비교하면서 각색하고 있습니다. 두 작품을 비교하면서 우리나라 실정에 안 맞는 부분과 원작 의미를 수용할 수 없을 것 같은 내용들은 걷어내고 작품을 공연대본으로 빠르게 재구성했습니다. 이야기 구조를 따라가되, 한국 사회에 맞도록 윤색(潤色)한 거죠. 아마, 그동안 공연된 작품과는 다른 ‘창작공동체 아르케’의 <우리읍내>가 될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연출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잊혀져도 관계없습니다. 다만 제가 연극을 하기 위해 작품을 쓰고 연출하는 동안은 피란델로, 아라발처럼 이 사회의 부조리한 현상을 들어내 무대에서 계속 질문을 던지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2008년도에 창단해 지금까지 견디어 오고 있는 ‘창작공동체 아르케’는 커다란 목표보다는 한 작품, 한 작품을 진정성 있게 무대에 올려 온 것처럼 앞으로도 그 시간이 좋은 것 같습니다.”
김승철 연출의 체구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는 명확했고, 작품의 방향도 정확했다. 그는 예술 감독 역할을 마치면 극단으로, 연출로 바쁘게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고 그를 무대에서 작가로 연출로 각인시켜 내는 힘은 진정성 있게 무대를 대하고 작품으로 말하고 있는 분명한 시선과 작품을 대하는 태도에 있는 것 같아 보였다. 그의 말처럼, 배우로서 악기의 한계를 느끼고 자신의 소리를 내기 위해 연출을 하면서도 공연 작품들은 관객이 몰리고 작품성을 평가 받고 있는 것은 화려한 무대의 기술보다는 진심으로 무대를 만들어 내는 담백한 무대 향기로 채워져 있는 것 같았다. 필요한 살점들만 걷어내면서 시대와 역사를 소환해 내는 연출적 감각과 희곡으로 시대에 질문을 던지려는 그의 시선은 2008년 창단 공연 이후 여전히 진행 중인 것 같았다. 관객들은 그의 작품을 대하면서 감동과 웃음으로, 연극 예술을 무대에서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말한다. 인터뷰를 끝내고 그는 연극<7분>하고 <심청전을 짓다> 두 작품을 봐야 한다며 김승철 연출은 인터뷰를 마치고 ‘짬뽕’으로 해장하고 대학로 골목으로 걸어갔고 신호등 앞에는 서울연극제 현수막이 보였고 골목 사이로 <툇마루가 있는 집> 공연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