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1758억원에 달하는 과징금 철퇴를 내리며 개시한 ‘닭고기와의 전쟁’이 디테일 싸움에 돌입했다. 한국육계협회 등은 담합이 아니라는 근거로 농림축산식품부가 지급하는 ‘자조금’을 꼽으며 반발하고 나섰다. 반면 공정위는 자조금은 담합 여부와 상관없다며 거리를 두고 있다. 양측 해석이 전혀 다르다보니 담합 판정 이후에도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시시비비는 결국 법정에서나 가릴 수 있어 보인다.
닭고기 업계 주장을 요약하자면 농식품부 지시로 닭고기 수급을 조절했기 때문에 담합이 아니라는 것이다. 농식품부 소속 닭고기 수급조절협의회에서 결정하는 물량에 따라 생산량을 조절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여기서 쟁점인 자조금이 등장한다. 농식품부가 물량 조절 댓가로 자조금을 보조한다는 점에서 생산량 조절은 결국 정부가 주도했다는 주장이다. 다만 이들 주장의 근거인 자조금은 2017년 이후 정상 지급되지 않고 있다.
반면 공정위는 사실관계가 다르다고 보고 있다. 육계협회가 먼저 물량 조절을 합의한 뒤 농식품부에 협의회 소집을 요청한 것으로 파악했다는 설명이다. 협의회 이전에 담합 행위가 있었다는 것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24일 “협의회 요청은 농식품부의 행정지도가 있었던 것처럼 외관을 갖추려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농식품부가 협회의 담합을 사실상 인정했다고도 보고 있다. 농식품부에 ‘자조금이 협회나 계열 사업자의 물량 담합을 허용하는 제도냐’고 묻자 자조금 제도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원론적 답변만 돌아왔다는 게 공정위 설명이다. 아울러 선처를 부탁하는 내용도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행위가 담합이라는 의견에 동의하니 봐달라는 정도로밖에 해석할 수 없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는 육계·삼계 등에 이어 토종닭까지 담합으로 인정하는 원동력이 됐다.
닭고기 업계에서 시작된 전쟁은 오리 업계로도 번지게 됐다. 공정위는 지난 18일 9개 오리 신선육 판매사업자의 담합을 소회 안건으로 상정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법적으로 허용된 담합은 축산계열화사업에 관한 법률에 따른 담합뿐이다”며 “오리고기 사업체 매출이 확정되는 다음 달 초 과징금 규모를 결정해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로서는 공정위가 유리하다. 법원에서 이번 담합 적발과 비슷한 사례인 원종계(종계의 부모닭) 담합의 위법성을 인정한 판례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해 6월 10일 원종계 업계 4개사가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고 판결한 바 있다. 당시 “원고 등 4개사가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위 행정지도에 편승해 자발적으로 이 사건 공동행위(담합)를 했다고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4개사는 이후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기각됐다.
다만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을 다 걷을 가능성은 적다. 영세한 협회 단위에서는 과징금 집행이 어려울 전망이다. 육계협회 관계자는 “공정위에서는 과징금을 협회 회원인 농가들에 십시일반 해서 내라는 식으로 얘기하는데 농가들이 그냥 회원 탈퇴하겠다고 한다. 과징금을 낼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세종=권민지 기자, 신준섭 기자 10000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