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업계 ‘메기’로 꼽히는 롯데카드가 매물로 나온 것으로 알려진 지 한 달여가 지났지만 시장은 잠잠하다. 고평가된 몸값을 두고 이해관계자들이 치열한 물밑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는 관측이다. 인플레이션에 경기 침체 우려가 더해지면서 기업들이 과도한 현금 지출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카드업계에서는 대주주 MBK파트너스가 롯데카드 매각 대금을 과대 책정했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MBK가 2019년 롯데카드를 인수할 당시 기업가치(지분율 100% 기준)는 1조8000억원이었는데, 현재 매각 희망가는 3조원으로 알려졌다.
MBK가 3년 새 몸값을 70% 가까이 올려잡은 배경에는 최근 크게 개선된 실적이 있다. 롯데카드 순이익은 MBK 인수 당시인 2019년에는 571억원에 불과했으나 지난해는 2414억원을 기록했다. 만 3년도 되지 않아 이익이 4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다만 개선된 실적의 배경에 팬데믹 특수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0년과 지난해 경제 상황 악화에 따른 제2금융권 대출판매량 증가 등 실적 뻥튀기 요인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수자 입장에선 이 같은 성장세가 팬데믹 덕분에 이룬 일시적 성과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지속 가능 여부도 불확실하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10년째 가맹점 결제수수료 인하를 압박해 수익 여력이 축소되고 있고 P2P대출·간편결제·핀테크 등 경쟁 서비스도 우후죽순 나타나 현재 파이를 유지하기도 버거운 상황”이라며 “확실한 미래 먹거리 없이 성장 동력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인수 후보들이 ‘전략적 침묵’을 택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현재 롯데카드 인수 후보군은 우리금융그룹, NH농협은행, KT로 좁혀졌다. 이 기업들은 표면적으로 롯데카드 인수에 선을 긋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인수전에 확실히 참여할 것이라는 그림이 그려지면 협상 주도권을 잃게 된다”며 “공식적인 인수 후보가 없으면 애가 타는 것은 매도자 쪽이다. 협상 진전이 없는 게 아니라 참여자들이 의도적으로 말을 아끼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인수 후보들은 인수전 참여를 대외적으로 선언하는 대신 물밑에서 협상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금융그룹과 KT는 이미 MBK와 접촉해 인수 검토에 필요한 자료를 열람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업들이 불안정한 시장 상황에 대비해 대규모 현금 사용을 꺼리는 것도 매각 협상이 신속하게 진행되지 않는 이유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분석에 따르면 100대 기업의 순차입금은 지난해 말 기준 164조8000억원으로 최근 5년 간 가장 많았다. 롯데카드의 경우 컨소시엄을 구성해 인수에 나선다고 최소 1조원 이상의 ‘실탄’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어떤 기업이든 선뜻 인수에 나서기에 부담스러울 수 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