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이면 성추행 피해로 공군 이예람 중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1년이 된다. 그간 가해자들에 대한 군사 법원 판결도 속속 내려졌다. 피고인들은 일정 부분 유죄가 인정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보복협박 혐의가 무죄로 판결되는 등 항소심에서 다툴 쟁점들이 여전히 남아있는 상황이다. 이 중사 유족은 이들의 사법처리에 애초부터 한계가 있었으며, 특검의 조사가 다시 이뤄지길 바라고 있다.
17일 국민일보가 확보한 이 사건 주범 장모 중사 판결문에 따르면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재판장 정유림 대령)은 지난해 12월 장 중사의 군인등강제추행치상 혐의에는 징역 9년을 선고하면서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협박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군 검찰과 장 중사의 쌍방 항소로 현재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유족 측 변호인은 보복협박 부분은 항소심에서 재판단을 받아야 한다는 판단 하에 2심 재판부에 수차례 의견서를 제출했다.
장 중사는 지난해 3월 2일 이 중사를 차량 안에서 20여분간 성추행한 인물이다. 이 중사가 부대에 도착하자마자 선임 부사관에게 피해 사실을 신고하자 2㎞ 떨어진 여군 숙소까지 쫓아와 “없었던 일로 해달라”, “너 신고할거지? 신고해봐” 등의 발언을 내뱉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 같은 발언들에 대해 “그 자체만으로 피해자에게 어떤 해악을 가하겠다는 것인지 내용이 포함되지 않아 구체적인 해악의 고지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피고인이 사과를 하면서 피해자를 계속 뒤따라가는 행위만으로는 신고할 경우 피해자에게 어떤 신체적 위해를 가하겠다는 공포감을 줬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유족 측 법률대리인인 김정환 변호사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어떤 발언을 했든지 간에 피해자가 당시 놓였던 상황,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군 조직의 특수성, 피해자가 느꼈던 감정이나 이후 반응을 봤을 때 해악의 고지라고 느낄 여지가 충분해 이 내용들을 의견서에 담아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했다”며 “항소심에서 다퉈볼 만한 내용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중사 사건을 처음 맡았던 국선변호인 공군 이모 중위는 형식적이고 무책임한 업무수행으로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지만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재판장 이성은 대령)은 직무유기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군 검찰 공소 사실에는 이 중위가 피해자가 3개월 이상의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서를 제출하는 등 정신적 상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도 수사기관에 군인등강제추행치상죄로 죄명 변경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점, 이 중사 부친을 통해 장 중사의 추가 범행을 인지하고도 수사를 촉구하지 않은 점 등이 기재됐다.
재판부는 이 중위 판결문에서 “직무유기죄 성립을 위해서는 피고인이 유기한 직무가 구체적인 직무일 것을 요하나 공소사실에 기재된 내용과 같은 직무상 의무는 인정되지 않고, 인정할 만한 증거도 없다”고 밝혔다. 이 같은 의무를 규정한 성문화된 법령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법리적 입증이 어려운 사안”이라면서도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이 중위의 경우 피해자 신상을 주변에 유포한 2차 가해 혐의도 크기 때문에 그 부분을 특검이 밝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이 중위는 지난해 6월 1일 군 법무관 동기 3명이 함께 있는 단체 카톡방에서 이 중사 신상정보를 공유했다. 이 카톡방에서는 “남친은 하루만에 돌싱됐네”, “(혼인신고)해서 엿 먹인 게 아닐까, 이해가 안 되네” 등의 메시지가 오간 것으로 조사됐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