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숨진 시간, 구더기는 안다…국내 최초 ‘법곤충감정실’ 문 열어

입력 2022-05-17 10:31 수정 2022-05-17 10:35
경찰청 제공

국내 최초로 ‘법곤충감정실’이 문을 열었다. 법곤충감정은 시신 속 곤충을 통해 사망시간을 추정하는 수사 기법의 하나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17일 충남 아산에 있는 경찰수사연구원에 ‘법곤충감정실’을 열었다고 밝혔다.

법곤충감정은 시신이 오래됐거나 부패한 경우 시신에서 발견된 곤충의 종류와 성장 데이터 등을 분석해 사망 시간을 추정하는 기법이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 해외 국가에서는 이미 보편적인 수사 기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2014년 세월호 사건 이후 전남 순천에서 발견된 세월호 실소유주 유병언씨의 변사 사건에 법곤충감정이 처음 적용됐다. 당시 수사팀은 시신에서 검출된 구더기의 부화 시각을 추적해 사망시각을 과학적으로 밝혀냈다.

경찰청 제공

2019년 6월 경기도 오산의 야산에서 백골 시신 발견됐을 때도 법곤충감정 기법이 활용됐다. 유골 주위의 곤충 번데기들의 종류를 분석해 시신이 암매장된 시각을 추정하는 데 도움이 됐다. 당시 수사팀은 법곤충감정의 결과로 2018년 10월 이전에 암매장됐을 것으로 추정했는데, 실제 범인 검거 이후 사건이 2018년 9월에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법곤충감정은 변사사건 외에 노약자에 대한 학대나 방임, 동물 학대 등 다양한 분야에도 활용될 수 있다.

지난해 7월 부산에서 80대 노모가 숨진 채 발견됐는데, 노모의 시신에서 발견된 구더기를 분석한 결과 노모가 살아있는 동안 구더기가 산란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를 토대로 경찰은 노모가 방임됐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했고, 실제 수사 결과 아들은 병든 노모를 제대로 간호하지 않은 채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가 인정돼 존속유기치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이날 개소식에 참석한 남구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법곤충감정 기법을 통해 변사사건의 수사 역량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국가의 마지막 사회적 책무인 만큼 모든 변사 사건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