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하 중심 블랙홀 첫 관측… “아인슈타인이 옳았다”

입력 2022-05-13 06:06
한국천문연구원이 참여한 사건지평선망원경'(EHT) 협력단이 사상 최초로 우리은하 중심에 위치한 초대질량 블랙홀 궁수자리(Sgr A)를 포착해 12일 공개했다. 사진은 관측된 궁수자리 A 블랙홀 이미지. 중심의 검은 부분은 블랙홀과 블랙홀을 포함하는 그림자이고, 고리의 빛나는 부분은 블랙홀의 중력에 의해 휘어진 빛이다. 한국천문연구원·EHT 제공

우리 은하 중심에 자리잡은 초대질량 블랙홀의 실제 이미지가 처음 포착됐다. 2019년 먼 거리 우주의 블랙홀(M87)을 관측한데 이어 두 번째 국제공동연구의 성과다. 이번 연구에는 우리나라 한국천문연구원도 참여했다.

12일 한국천문연구원에 따르면 전 세계 80개 기관, 300여명 천문학자로 이뤄진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vent Horizon Telescope·EHT)’ 공동연구진은 우리은하 중심에 위치한 초대질량 블랙홀 궁수자리(Sgr A) 영상을 포착해 이날 공개했다.

2019년 지구에서 약 5500만 광년 떨어진 처녀자리은하단 M87의 중심부에 있는 블랙홀 그림자를 관측한 데 이어 3년 만에 나온 성과다.

우리은하 중심에 위치한 궁수자리 A 블랙홀은 지구로부터 약 2만7000광년 떨어진 궁수자리에 자리 잡고 있다. 질량이 태양보다 약 400만 배 크다. 한국천문연구원 손봉원 박사는 “궁수자리 A 블랙홀은 집단지성으로 인류가 직접 관측한 블랙홀 중에 가장 가까운 블랙홀”이라고 소개했다.

태양계가 속해 있는 우리 은하의 중심부에 자리 잡은 초대질량 블랙홀의 실제 이미지가 마침내 포착돼 공개됐다. 세계 주요 전파망원경을 연결해 블랙홀을 관측해온 '사건지평선망원경'(EHT) 프로젝트 과학자들은 12일 밤 10시(이하 한국시간) 워싱턴을 비롯한 6곳에서 동시에 기자회견을 갖고 우리 은하 중앙에서 포착한 블랙홀 이미지를 공개했다. 사진은 M87 은하와 우리은하 중심부에 자리잡은 초대질량블랙홀 실제 이미지. EHT 제공

태양계로부터의 거리가 M87 블랙홀과 비교해 2000분의 1 정도로 가까워 블랙홀 연구의 유력한 대상이다. 그러나 M87에 비해 1500배 이상 질량이 작아, 블랙홀 주변의 가스 흐름이 급격히 변하고, 영상이 심한 산란 효과를 겪어 M87에 비해 관측이 어려웠다.

“파리 카페에서 뉴욕 신문 글자 읽는 성능”
이번 블랙홀 포착에 활용된 EHT는 6개 대륙 8개 전파망원경이 하나로 연결한 것이다. 하나의 커다란 망원경 같은 효과를 내도록 한 ‘가상의 슈퍼 울트라 망원경’이다. 8개 망원경이 확보한 블랙홀 전파 신호 데이터를 분석한 뒤 역추적하는 방식으로 블랙홀 영상을 확보했다.

한국천문연구원 관계자는 망원경 성능에 대해 “파리의 한 카페에서 뉴욕에 있는 신문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대규모 블랙홀 관측자료를 처리하기 위해 슈퍼컴퓨터를 활용해 데이터를 분석하는 동시에 블랙홀에 대한 다량의 영상을 재현해 이를 비교하는 모의실험을 5년간 끊임없이 진행했다. 관측자료 보정과 영상화 작업 끝에 연구진은 고리 형태의 구조와 중심부의 어두운 지역인 블랙홀의 그림자를 발견했다.

“아인슈타인이 옳았다” 재확인
블랙홀은 강한 중력에 의해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어서 검게 보이는 천체를 뜻한다. 각 은하 중심에는 적어도 1개 이상의 초대질량 블랙홀이 존재하고 있다. 우리 은하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은하 중심부에는 태양 질량의 수백만 배에서 수십억 배에 이르는 초대질량 블랙홀이 있다.

EHT 과학이사회의 공동 위원장인 세라 마르코프는 “이번에 공개된 블랙홀 모습은 M87 블랙홀과 매우 유사한 모양을 보이는데 이는 (중력에 의해 시공간이 휜다는)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이론이 옳았음을 재입증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성과는 블랙홀의 실제 모습을 확인한 데 미지에 있는 블랙홀 연구에 진전을 줄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과학자들은 초대질량 블랙홀이 은하의 형성, 즉 초기 우주 형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보고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실제 후속 연구로 EHT 연구진은 초대질량 블랙홀 주변의 부착 흐름을 분석하는 이론을 세우기 시작했다. 천문연은 이번 관측을 통해 은하의 형성과 진화 과정을 밝힐 수 있을 것이며,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일반상대성이론의 정밀한 검증 등 새로운 결과들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전망했다.

기존 M87과 이번 궁수자리 A 블랙홀 연구에 참여한 김재영 경북대 교수는 “이전 M87 블랙홀과 비교해 궁수자리 A 블랙홀은 제트와 같은 강력한 물질 분출 현상이 없는 블랙홀로, 이 두 블랙홀의 EHT 영상을 함께 연구함으로써 현대 천체물리학의 가장 큰 난제들 중 하나인 블랙홀 제트의 물리적인 기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궁수자리 A 블랙홀의 영상화 과정에 참여한 조일제 박사(스페인 안달루시아 천체물리연구소)는 “이번 영상은 빠르게 변화하는 블랙홀의 그림자를 포착해 천체가 정적이라고 가정하고 촬영하는 기존 전파간섭계 영상화 과정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며 “이를 바탕으로 머지않아 블랙홀로 물질이 빨려 들어가는 과정도 직접 관측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