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삶’을 살겠다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결국 양산 사저에 ‘임시 가림막’을 쳤다. 문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보려는 외부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데다 언론이 사저 내부를 망원렌즈로 계속 촬영하자 내놓은 조치로 보인다.
아울러 보수단체가 연일 ‘국민교육헌장’을 낭독하는 방송 등을 확성기로 틀면서 문 전 대통령 내외는 물론 인근 주민들도 소음에 시달리고 있다. 주민들은 진정서를 경찰에 냈지만, 경찰은 법이 정한 소음 기준을 넘지 않아 조치할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12일 오전 경남 양산 평산마을에 있는 문 전 대통령 사저에서 ‘임시 가림막’이 설치된 모습이 포착됐다. 이 가림막은 문 전 대통령이 오가는 사저 내부 대나무 울타리 뒤편에 설치됐다.
대나무가 아직 빽빽하지 않아 문 전 대통령이 마당으로 나오면 망원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로 모습을 포착할 수 있었다. 문 전 대통령이 고양이를 안고 있는 모습이나 측근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카메라에 여럿 잡혔다.
지난 9일 밤 자정을 끝으로 임기를 마무리한 문 전 대통령은 10일 오후 평산마을로 오면서 “제2의 삶, 새로운 출발이 정말 기대된다”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은 “저는 이제 완전히 해방됐습니다. 자유인입니다”라며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얽매이지 않는 소망을 피력했다.
하지만 당분간 문 전 대통령의 평온한 생활은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청와대에서 사저로 옮긴 이후로도 문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보려는 시민들의 방문은 이어지고 있다.
보수성향 단체의 ‘확성기 집회’도 계속되고 있다. 이 단체는 사저에서 직선거리로 약 100m 떨어진 도로에 차량 2대를 세우고 확성기를 밤낮 구분 없이 틀고 있다. 이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낭독하는 ‘국민교육헌장’을 밤낮 구분 없이 반복해서 틀고 노래를 송출했다. 문 전 대통령을 비난하는 인터넷 방송도 진행했다.
12일 낮부터는 마이크를 이용해 인터넷 방송을 진행했고, 확성기를 이용한 집회를 이어갔다. 이 단체는 내달 초까지 한 달간 집회신고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민들은 경찰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경찰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정한 심야 소음 기준인 55㏈보다 낮아 법적으로 제지할 방법이 없다는 입장만 밝혔다고 한다. 주민들은 “밤 시간대라도 집회를 멈춰달라”며 진정서와 탄원서를 경찰에 제출했다.
문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당분간 바쁜 일정을 이어간다. 오는 22일은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방문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회동이 예정돼 있다. 이튿날인 23일 열리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13주기 추도식에 참석할 가능성도 높다. 앞서 문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17년 5월 8주기 추도식에서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돼 임무를 다한 다음 다시 찾아뵙겠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은 12일 SNS에 퇴임 후 처음으로 근황을 전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 전 대통령은 “귀향 후 첫 외출. 아버지 어머니 산소에 인사드리고, 통도사에도 인사 다녀왔다”며 “법당에 참배 드리고, 성파 종정스님과 현문 주지스님을 뵙고 모처럼 좋은 차, 편한 대화로 호사를 누렸다”고 했다.
또 “통도사는 경관이 매우 아름답고, 오랜 세월 많은 기도가 쌓인 선한 기운이 느껴지는 절”이라며 “제 집이 통도사 울타리 바로 옆이기도 하고 친구 승효상이 설계하면서 통도사의 가람구조를 많이 참고했다고 해서 ‘통도사의 말사’가 되었다는 농담을 주고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집 정리가 끝나지 않았고, 개 다섯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의 반려동물들도 아직 안정되지 않았지만, 저는 잘 지내고 있다”고 전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