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험도 없는 코미디언 출신 대통령이 실존적 위기에 처한 우크라이나를 이끌어갈 능력이 있는지 세계는 의심했다. 하지만 2020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그는 세계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44세, 대통령 취임 후 3년이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쟁을 맞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는 미국이 제공하는 헬리콥터를 타고 도망가는 대신 수도 키이우에서 시민들과 함께 죽기를 선택했다. “우리가 싸울 곳은 여기다. 나는 도망칠 차량이 아니라 탄약이 필요하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부패하거나 유약하지 않은 지도자, 국내외에서 대규모 지지를 받는 지도자를 처음으로 상대하게 됐다. 우크라이나 한 언론인은 “젤렌스키는 사자처럼 싸우고 있고, 온 우크라이나가 그의 편에 섰다”고 말했다. 단기전을 장담했던 러시아는 당황하고 있다.
12일 출간된 ‘젤렌스키’(알파미디어)는 젤렌스키의 생애와 가족관계, 정치 입문 과정 등에 대한 소개와 함께 개전 이후 행보를 상세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호주의 두 언론인, 앤드루 L 어번과 크리스 맥레오드가 쓴 이 책은 젤렌스키에 대한 본격적인 평전에는 못 미친다. 하지만 젤렌스키의 주요 발언과 연설, 인터뷰 등을 충실하게 전하며 그의 리더십을 분석한다.
책이 특히 주목하는 것은 젤렌스키의 말이다. 젤린스키의 연설은 서구의 지도자들과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그는 특히 소셜미디어에 능하다. 그의 소셜미디어 선전과 게시물은 자국민들에게 전황을 알리고 항전을 독려하는 한편 러시아를 규탄하는 전 세계 시위를 이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 정보기관 출신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선전전을 무력화했다. 뉴욕타임스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SNS 전술이 우크라이나군의 단결과 전 세계인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앞으로 전쟁은 어디로 갈 것인가. 젤렌스키는 러시아를 향해 대화를 촉구하면서도 항전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핵 사용 가능성에 대해서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핵전쟁의 위협은 엄포라고 생각한다”며 “핵무기의 사용은 핵무기를 사용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두의 종말을 의미한다. 푸틴의 위협은 오히려 그가 약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