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북한이 최대 비상방역체계로 전환함에 따라 핵실험 등 도발을 자제하고 국제사회에 백신이나 치료제를 요청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조선중앙통신은 12일 “2020년 2월부터 오늘에 이르는 2년3개월에 걸쳐 굳건히 지켜온 우리의 비상방역전선에 파공이 생기는 국가 최중대 비상사건이 발생하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난 8일 평양의 한 단체에서 발열자들이 발생해 검사를 실시한 결과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와 일치했다고 전했다. 발열자들이라고 보도한 점에 비춰 복수의 확진자가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이날 김정은 국무위원장 주재로 정치국회의를 열고 대응책을 논의했다. 김 위원장은 “전국의 모든 시, 군들은 철저히 봉쇄하고 사업단위 생산단위 생활단위별로 격폐한 상태에서 사업과 생산활동을 조직하여 악성 바이러스의 전파 공간을 빈틈없이 완벽하게 차단하라”고 지시했다.
북한이 정치국회의를 개최한 사실을 당일 공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만큼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 생일(4월 15일) 110주년 관련 행사와 조선인민혁명군 창설 90주년(4월 25일) 기념 열병식 등 대규모 인원이 집결하는 행사를 최근 잇따라 개최했다. 행사 참석자들이 모두 ‘노마스크’ 상태여서 대규모 확산으로 이어졌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김 위원장은 당시 열병식 참가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만약 이들 중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면 상황이 상당히 심각할 수 있다.
북한이 당장은 자체적으로 코로나19에 대응할 것으로 보이지만, 감염 사태가 크게 확산될 경우에는 국제사회에 백신이나 치료제 등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1주일 앞두고 북한이 급하게 확진자 발생 사실을 공개한 것은 북한 내부는 물론 외부에도 알려 국제사회에 손을 내미려는 측면이 있어 보인다”고 진단했다.
한국 정부도 대북 백신 지원에 긍정적이다. 통일부는 “북한 주민에 대한 지원과 남북 간 방역·보건의료 협력은 인도적 차원에서 언제라도 추진할 수 있다”며 “협력이 필요한 사항이 있다면 적극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중앙방역대책본부도 북한을 잔여 백신 공여 대상 국가로 검토할 가능성과 관련해 “필요시 관계부처와 협의해 공여 가능성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북한의 강경한 대남·대미 스탠스를 감안하면 북한이 백신을 지원받을 경우 한국이나 미국을 통하기보다 국제기구인 코백스(COVAX)에서 받으려 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도발 국면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으로선 내부 여론도 신경 써야 하므로 핵실험 등을 강행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당분간 코로나19 대응에 집중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홍 실장은 북한이 자신들의 무기개발 일정에 따라 미사일 시험발사는 제한된 수준에서 이어갈 수 있다고 봤다.
일각에선 코로나와 무관하게 핵실험을 진행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외교 소식통은 “코로나와 백신, 핵실험은 전혀 별개라는 것을 오히려 강조하기 위해 당초 정해놓은 핵실험 일정을 그대로 가져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영선 신용일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