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인 지난 7일 서울 광진구 광장로 나섬공동체 3층 컴퓨터실. 평일에는 몽골 이주민 자녀들이 수업을 하는 곳인데, 이날에는 베트남 출신 어린이들이 자리를 웹툰과 공예 수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같은 시각, 1층 음악실에서는 어버이날을 하루 앞두고 카네이션 바구니를 만들고 있었다. 한 학생은 베트남인 어머니가 읽기 쉽도록 스마트폰을 보면서 편지글을 영어로 번역해 옮겨 적고 있었다.
몽골 이주민을 위한 학교에 베트남 어린이들이 드나드는 이유는 뭘까. 나섬공동체 대표 유해근(60) 목사로부터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유 목사는 27년 동안 국내 몽골 이주민 사역을 이어온 ‘몽골인 사역의 대부’다. 그는 지난 2월 다문화 사역에 헌신한 공로로 포스코청암재단으로부터 ‘2022 포스코청암상(교육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유 목사는 “우리나라에서 중국 다음으로 이주민이 많은 나라가 베트남”이라며 “저출산·인구절벽 시대에 이 아이들은 우리 사회의 큰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통계청(2020년)에 따르면 국내에 거주하는 베트남인은 21만여명으로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전체 외국인의 10.4%에 달한다. 인근에 건국대와 세종대 등 종합대 2곳을 둔 광진구에는 베트남 출신 유학생들과 함께 베트남인들의 유동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유 목사는 “우리 학교 학생들 대부분의 어머니가 베트남인”이라며 “이 아이들은 베트남 엄마를 숨기려고 한다. 일종의 상처이자 열등감인데, 이들 베트남 가정을 돌보는 것이 선교·사회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취지를 바탕으로 나섬공동체는 5년 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지난달 23일 ‘한국·베트남 국제학교’를 개교했다. 한·베 국제학교 재학생은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17명이다. 매주 수요일(줌수업)과 토요일(현장) 수업이 있다. 지난 수요일 오후 줌 수업에서 만난 학생들은 ‘젓 뷔 드억 갑’(만나서 반가워요) ‘반 땐 라 지’(당신 이름이 뭐예요?) 같은 모국어를 배우고 있었다.
학부모인 응웬 티 찐(42)씨는 2006년 한국인과 결혼하면서 베트남에서 건너온 세 아이 엄마다. 중3인 둘째와 초6인 셋째 아이를 이 학교에 입학시켰다. 그는 “(불교 신자인 나에게) 기독교에서 만든 학교가 처음엔 부담스러웠지만 학교에서 편안하게 대해준 덕분에 학교 활동에 참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베 국제학교를 총괄하는 장상윤 목사는 “사회적 선교 차원에서 종교와 상관없이 구성원을 받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몽골학교에 이어 베트남학교까지 개교한 유 목사는 꿈이 하나 더 있다. 장기적으로 고려인 학교를 개교하는 것이다. 유 목사는 “250만 이주민 시대에 교회가 나서 이주민들을 품는 것이 교회의 존재 이유”라며 “‘이민청’ 같은 이주민 정책기구가 필요한 때”라고 제안했다.
글.사진=서은정 인턴기자,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