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세계 시민’을 7차례 언급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다음에 “세계 시민 여러분”을 붙여 선언과 다짐의 대상을 국외로 확대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높아진 탈세계화 기류에서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국민의 화합과 국가 간 연대를 호소한 것으로 해석된다. 취임사에서 자유는 35차례 등장했다.
윤 대통령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지금 전 세계는 (코로나19) 팬데믹 위기, 교역 질서의 변화와 공급망 재편, 기후 변화, 식량과 에너지 위기, 분쟁의 평화적 해결의 후퇴 등 어느 한 나라가 독자적으로, 또는 몇몇 나라만 참여해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들에 직면해 있다. 다양한 위기가 복합적으로 인류 사회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가 초저성장과 대규모 실업, 양극화의 심화와 다양한 사회적 갈등으로 인해 공동체의 결속력이 흔들리고 와해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정치는 민주주의의 위기로 인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모든 위기의 원인을 ‘반지성주의’로 지목하면서 “이 순간 위기를 극복하는 책임을 부여받게 된 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국민과 함께 당당하게 헤쳐 나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 또 세계 시민과 힘을 합쳐 국내외적인 위기와 난제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자유다. 우리는 자유의 가치를 제대로, 그리고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자유의 가치를 재발견해야 한다”며 “어떤 사람의 자유가 유린되거나 자유 시민이 되는데 필요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모든 자유 시민은 연대해서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각국 지정학·경제 전문가들은 2020년대를 국방 외교 무역 금융을 포함한 여러 분야에서 탈세계화에 들어가는 시기로 보고 있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대표적인 사건이다. 지난 30여년간 공생해온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도 탈세계화의 과정으로 지목돼 있다. 윤 대통령은 세계적인 갈등 속에서 2027년 5월 9일까지 앞으로 5년간 국정을 이끌어야 한다. 윤 대통령이 이날 취임사를 통해 국정 운영의 핵심 기치로 ‘자유’를 앞세우면서 세계 시민을 7차례나 언급한 이유는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윤 대통령은 “개별 국가만이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기아와 빈곤, 공권력과 군사력에 의한 불법 행위로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고 자유 시민으로서의 존엄한 삶이 유지되지 않는다면 모든 세계 시민이 자유 시민으로서 연대해 도와야 한다”며 “모두가 자유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공정한 규칙을 지켜야 하고, 연대와 박애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어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으로써 과학 기술의 진보와 혁신을 이뤄낸 많은 나라와 협력하고 연대해야만 한다. 자유민주주의는 평화를 만들어내고, 평화는 자유를 지켜준다. 평화는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존중하는 국제 사회와의 연대에 의해 보장된다”며 “일시적으로 전쟁을 회피하는 취약한 평화가 아니라 자유와 번영을 꽃피우는 지속 가능한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