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MET 오페라 ‘라보엠’ 공연 사진이 왜 베세토 오페라단 포스터에?

입력 2022-05-10 07:00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2014년 테너 비토리오 그리골로와 소프라노 아니타 하티그를 주역으로 선보인 오페라 '라보엠'의 한 장면(왼쪽). 오른쪽은 오는 20~22일 베세토 오페라단 '라보엠'의 포스터. (c)Marty Sohl-Metropolitan Opera

공연계에서 포스터 표절 논란이 또 다시 불거졌다. 이번에 논란이 된 것은 2022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에 참가한 베세토 오페라단(단장 강화자)의 ‘라보엠’이다.

오는 20~22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를 예정인 베세토 오페라단의 ‘라보엠’ 포스터는 오페라 애호가 사이에선 너무나 유명한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MET)의 프랑코 제피렐리 연출 ‘라보엠’ 공연 사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제피렐리 연출로 1981년 초연된 MET의 ‘라보엠’은 19세기 중반 프랑스 파리를 섬세하고 아름답게 표현한 무대가 일품으로 평가받는 프로덕션이다. 캐스팅은 공연마다 바뀌지만, 이 프로덕션은 지금도 MET에서 손꼽히는 인기 레퍼토리로 자주 공연된다. MET는 이 프로덕션의 영상화 작업을 통해 2008년 DVD로 내놓기도 했다.

베세토 오페라단은 MET가 2014년 테너 비토리오 그리골로와 소프라노 아니타 하티그가 주역으로 나온 프로덕션 사진을 포스터에 고스란히 썼다. 이 사진은 MET가 당시 보도자료로 촬영한 것으로 베세토 오페라단은 사진 저작권, 성악가들의 초상권, 연출가의 공연저작권을 침해한 것에 해당한다. 저작권 침해 문제를 지적하자 강순규 베세토 오페라단 부단장은 “‘라보엠’ 포스터를 만들다가 해당 사진이 좋아서 사용했다”면서 “무단 사용을 인정한다. 다만 MET에 사진 사용을 위해 연락했는데, 답변이 없다. 이제라도 다시 저작권 내는 방법을 알아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강 부단장의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베세토 오페라단의 ‘라보엠’이 MET와 라이선스 계약을 한 프로덕션이 아닌 데다 성악가들의 초상권 문제로 해당 사진을 사용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강 부단장은 “초상권은 생각 못 했다. 포스터를 내리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오페라계 관계자는 “저작권이 없는 무료 이미지 사이트도 있는데, 굳이 MET의 유명 프로덕션 사진을 그대로 포스터에 사용한 것이 이해가 안 된다. 아마도 이번에 언론에 보도되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것”이라면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해당 공연만이 아니라 국내 오페라계 전체에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볼쇼이 발레단 '주얼스'의 영국 내 영화 상영 포스터(왼쪽부터), 표절 논란이 일었던 국립발레단의 '주얼스' 포스터, 국립발레단이 표절 논란 이후 새로 만든 '주얼스' 포스터. 더쿠-국립발레단

사실 공연계에서 포스터 표절 논란은 심심치 않게 발생했다. 지난해엔 국립발레단의 신작 ‘주얼스’의 포스터가 2020년 볼쇼이 발레단 ‘주얼스’의 영국 내 영화 상영 포스터와 유사한 것이 논란이 됐다. 이에 국립발레단은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문의가 있었던 포스터 이미지와 관련해 볼쇼이 시네마 포스터와는 ‘보석’에서 대중적으로 연상할 수 있는 이미지 및 변형이라는 점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고 판단해 공식 포스터를 변경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했다”고 사과했다.

2017년 국립발레단의 ‘댄스 인투 더 뮤직’ 포스터(가운데)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포스터(왼쪽) 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오른쪽은 표절 논란 이후 국립발레단이 교체한 포스터. 더쿠-국립발레단

하지만 당시 ‘주얼스’ 포스터 표절 문제를 처음 제기한 발레 팬은 인터넷 커뮤니티 더쿠에 ‘국립발레단이 올해 공연 포스터를 일주일 만에 수정한 이유’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국립발레단이 여러 차례 포스터를 표절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실제로 2016년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레드닷 어워드 수상작 포스터와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았고, 2017년 ‘댄스 인투 더 뮤직’(Dance into the Music) 포스터는 베를린 필하모니의 포스터 표절 의혹에 조용히 교체됐었다. 이와 관련해 발레 팬들은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 댓글 등을 통해 “저작권 문제에 민감해야 할 국립 단체인 국립발레단이 표절 논란에 자주 휘말리는 것이 실망스럽다”는 취지의 반응을 내놓았다.

지난 2014년 뮤지컬 ‘로빈훗’의 포스터(오른쪽)가 영화 ‘프랑켄슈타인: 불멸의 영웅’ 포스터(왼쪽)를 표절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영화 ‘프랑켄슈타인: 불멸의 영웅’-엠뮤지컬아트-

이외에도 2016년 뮤지컬 ‘더 언더독’과 ‘베어 더 뮤지컬’의 포스터가 각각 영화 ‘크림슨 피크’와 ‘글로리데이’ 포스터와 매우 유사해 거센 비난을 받았다. 두 제작사는 결국 포스터 표절 의혹을 사과해야 했다. 그리고 2014년엔 뮤지컬 ‘로빈훗’의 포스터가 영화 ‘프랑켄슈타인: 불멸의 영웅’ 포스터를 표절했다는 지적을 받는 등 공연계에서는 그동안 많은 포스터 표절 논란이 발생했다.

공연계 포스터는 대체로 공연 제작사가 디자인 회사에 포스터를 의뢰하면서 콘셉트를 위한 사진 등 관련 자료를 제공하면 디자인 회사가 이들을 포함해 다양한 자료를 리서치한 뒤 포스터를 만들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디자이너의 무지나 양심 불량으로 표절이 발생하곤 한다.

영남대 이봉섭 교수가 1979년 한국인삼비누의 광고 포스터로 제작했던 여인(위 왼쪽)과 2012년 저작권 침해 판결을 받은 정동극장의 '미소' 포스터(위 오른쪽). 아래는 이 교수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포스터의 표절 부분을 비교하기 위해 제출한 것. 서울지방법원-정동극장

그동안 국내 공연계에서는 표절 논란이 일면 대부분 사과와 함께 포스터를 삭제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지만 법정 소송까지 이어진 사례도 있다. 지난 2010년 정동극장이 공모를 통해 뽑은 전통 뮤지컬 ‘미소’ 포스터에 대해 영남대학교 이봉섭 교수가 1979년 한국인삼비누의 광고 포스터로 제작했던 여인의 모습과 유사하다며 2012년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 교수는 해당 디자인으로 대한민국 산업디자인전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장상을 받기도 했다. 결국, 소송 끝에 2014년 정동극장과 포스터 제작사는 이 교수에게 저작권 및 저작인격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액으로 각각 3000만 원과 5000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당시 이 교수가 정동극장과 포스터 제작사 관련자들을 상대로 형사고소한 것은 무혐의로 결론났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