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공식 취임하면서 ‘용산 집무실 시대’가 열린다. 74년간 국가권력의 중심이자 ‘구중궁궐’로 불려온 청와대 대신 열린 공간에 터를 잡는 것이다. 청와대에 갇혀 민심과 동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던 역대 대통령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윤 당선인의 의지가 실현되는 순간이다.
윤 당선인은 이날 0시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지하의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합동참모본부로부터 안보 대비 태세에 대한 보고를 받는 것으로 20대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다. 역대 대통령들이 취임일 자정 합참의장으로부터 전화 보고를 받고 군 통수권을 이양받아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북한의 도발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집무실 이전에 따른 안보 공백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당선인은 오전 10시 국회에서 열리는 취임식에 참석한 뒤 오후부터 본격적으로 국방부 청사 5층 집무실에서 업무를 시작한다. 취임 첫날, 새 집무실에서 일정을 시작한다는 의미다. 일각에선 국가 중대사인 집무실 이전을 졸속 추진한다는 비판도 제기됐지만, “구중궁궐 같은 청와대에선 단 하루도 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관철시켰다.
2·5층 ‘집무실 이원화’…참모들과 지근거리서 소통
1만5000㎡ 규모 지상 10층으로 이뤄진 현 국방부 청사 건물에는 대통령 집무실과 참모진들의 사무실, 민간위원회, 기자실 등이 모두 입주한다.
윤 당선인 측은 경호와 보안을 감안해 청사 내 ‘더블 집무실’ 체제를 가동하기로 했다. 6월 중순에 리모델링이 완료되는 2층 본 집무실 대신 5층 집무실을 우선 사용한다.
5층 집무실은 2층 집무실 공사가 늦어지면서 당초 임시 공간으로만 사용하려고 했지만, 본 집무실 완공 이후에도 유지하기로 하면서 이원집무실 체제로 운영될 계획이다. 대통령의 근무지가 한곳으로 특정되지 않아야 경호와 보안에 유리하다는 점 등이 고려됐다. 기존 청와대도 본관과 여민관에 대통령 집무실을 두고 있다.
두 집무실 모두 크고 작은 회의실과 접견실이 마련될 전망이다. 2층에는 최대 200여명 정도를 수용하는 행사장이 마련돼 외빈을 위한 환영식 등을 여는 공간으로도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비서실장 사무실과 부속실, 경호처 관계자들 공간도 2층에 자리한다.
3층에는 대통령실의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들과 비서관들이 입주한다. 대통령 집무실을 오르내리며 소통할 수 있는 구조다. 대통령 전용 엘리베이터 역시 따로 두지 않았다. 대통령이 참모들과 마주치며 대화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당선인 측은 설명했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부터 “최고 지성들과 가까이서 머리를 맞대고 일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4층부터 10층까지는 대통령비서실, 대통령경호처, 민·관 합동위원회가 들어선다. 6층에는 비서실, 9층에는 경호처를 중심으로 업무 공간이 배치된다.
건물 지하 2층과 3층에는 국가위기관리센터가 설치된다. 이곳에서는 향후 국가재난이나 국가안보와 관련한 대응이 이뤄질 전망이다. 윤 당선인은 지난 6일 이곳에서 안보상황 점검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대통령 주 집무실 아래층인 1층은 기자실로 운영된다. 110여개의 출입기자석과 자유석, 기자회견장이 마련된다. 지금의 청와대는 각 언론사 기자들이 상주하는 춘추관이 대통령·참모 업무 공관과 완전히 분리돼 있었다.
청사 밖 공간도 달라진다.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높은 담벼락은 안이 들여다보이는 2.4m 높이의 울타리로 대체된다. 미군기지 부지였던 주변 공터를 시민 공원으로 탈바꿈시켜 누구나 다가설 수 있는 집무실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윤 당선인은 “대통령이 일하고 있는 모습과 공간을 국민이 공원에 산책을 나와 언제든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정신적 교감’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달라진 출·퇴근길…시민 교통 불편에 ‘공관 신축’ 검토
새 대통령 관저로는 서울 한남동에 있는 외교부 장관 공관이 낙점됐다. 당선인 측은 당초 한남동의 육군참모총장 공관을 관저로 검토했으나 너무 낡아 리모델링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 등을 고려해 외교장관 공관으로 유턴했다. 당선인 측은 공관 이전 비용, 경호, 교통 등의 다양한 요소를 고려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윤 당선인은 관저로 사용할 용산 한남동 외교부 공관 리모델링이 마무리될 때까지 한 달여 간 서초구 서초동 자택에서 출·퇴근한다. 한남대교, 동작대교, 반포대교, 한강대교 등 강남과 강북을 잇는 경로 중 교통 상황에 따라 선택해 출·퇴근할 것으로 알려졌다. 약 7㎞ 거리의 이동 경로에선 교통 통제가 불가피하다.
경호처와 경찰 측은 국방부 청사 인근 주변 경계 태세를 강화하고 비상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대통령 차량의 주 출입구가 될 가능성이 큰 용산 미군기지 13번 게이트 주변에선 도로 정비 및 점검이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었다. 출입로 주변의 손상된 아스팔트가 복구됐고 흐릿해진 차선, 횡단보도선이 새로 그어졌다.
당선인 측은 관저로 이용될 외교부 공관에서 집무실까지의 거리도 3.2㎞에 이르는 만큼 대통령 출·퇴근에 따른 교통 통제로 시민 불편요소를 없애기 위해 관저를 신축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