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 먼저 간 아들 자리 비우고 ‘찰칵’…사연 담은 교회 사진관

입력 2022-05-09 17:33 수정 2022-05-09 17:49
수원제일교회 이정호(왼쪽 세 번째) 안수집사가 지난 8일 경기도 수원 팔달구 교회에서 청년부의 도움으로 딸 부부와 손주 등 3대 가족과 함께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심순옥(62) 권사 부부는 가족 사진을 찍을때 오른편 의자에 아들 자리를 비워놨다. 하나 뿐인 아들은 지난해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요식업을 운영하다 1년 만에 터진 코로나19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자식이었다. 심 권사는 “(아들이) 살아 있을 때 가족 사진 한장 찍지 못한 게 마음의 한이 됐다”며 “교회에서 가족 사진을 찍어 준다는 소식에 신청했다”고 말했다. 남편인 전병순(64) 안수집사는 “(빈 자리에) 아들 사진을 합성해 액자로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그래야 어버이날에 하늘에 있는 아들이 덜 불편해할 것 같아서다.

어버이날이었던 지난 8일 경기도 수원 팔달구 수원제일교회(김근영 목사) 청년부는 특별한 사진관을 열었다. 교회 성도들의 가족 사진을 찍어주는 ‘제일사진관’이다. 가정의 달을 맞아 어떤 봉사를 할까 고민하다가 성도들 가정에 의미 있는 추억을 선물해주자는 데 뜻이 모아졌다. 카메라 메이크업 조명 사진보정 등 청년들은 저마다 역할을 나눴다. 기자는 촬영 보조요원으로 동참했다.

수원제일교회 성도(왼쪽)가 사진 촬영을 마친 뒤 교회 청년부원의 사진 보정 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촬영장인 교회 1층 비전홀에는 아침부터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았다. “오늘 다투고 오신 거 아니죠? 방긋 웃어 보세요.” ‘오늘의 사진사’ 나두현(35) 청년이 유도하는 웃음에 성도들의 굳은 표정이 풀리기 시작했다.

지난 1일에 이어 이날 두 번째 문을 연 사진관은 사람들과 함께 저마다 크고 작은 사연이 모이는 곳이기도 했다. 30년째 택시를 모는 이정호(68) 안수집사도 가족들과 함께 사진관을 찾았다. 현재 피택자 교육을 준비하고 있는 그는 “어버이날에 딸 부부와 손주들에게 축하도 받고 함께 사진도 찍게 돼 감사하다”면서 “기쁜 마음으로 교회를 섬기겠다”고 말했다.

안혜정(47) 권사는 이달 말 큰 아들 군 입대를 앞두고 사진관을 찾았다. 안 권사는 “6년 만에 찍는 가족사진이라 그런지 감회가 남다르다. 잠시 떨어져 있을 큰 아들과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고 고마워했다.

촬영 봉사에 나선 청년부 회원들이나 사진 신청자들 모두 즐겁고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사진 보정을 맡은 박우현(30)씨는 “성도들을 섬길 수 있다는 자체가 기쁜 경험이었다”며 “봉사를 하면 할수록 왜 기쁨이 두 배가 되는지 오늘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은주(46) 성도는 “코로나 거리두기 해제 후에 이렇게 좋은 기회를 제공한 교회에 감동 받았다”고 고마워했다.

수원제일교회 청년부원들이 사진촬영을 앞둔 성도의 머리를 손질해주고 있다.

성도들을 위한 사진 촬영은 다른 교회들도 재능 기부로 감동적인 이벤트를 선사하도록 벤치마킹하는데 손색이 없어보였다. 수원제일교회 청년부에 따르면 반사판이나 조명 등 일부 장비는 인근 사진관에서 빌릴 수 있고, 카메라와 사진 보정을 위한 노트북은 개인 장비를 활용하면 된다.

당일 촬영 요원은 안내, 메이크업, 사진촬영, 촬영 도우미, 사진 보정 담당 등 7~8명이면 충분하다.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선 팀원들이 사진 촬영을 원하는 가족의 신청서와 함께 기도 제목과 에피소드 등을 받아서 준비하면 된다.

박선명(30) 청년부 회장은 “촬영한 사진은 작은 액자로 만들어 각 가정에 전달할 예정”이라며 “앞으로 영정 사진이나 프로필 사진 촬영 같은 관련 행사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수원=글.사진 유경진 인턴기자,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