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 좇다 쪽박… ‘우리은행’ ‘오스템’ 횡령범들 최후

입력 2022-05-09 17:03
회삿돈 614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우리은행 직원 A씨가 지난달 30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은행에서 614억원을 횡령한 직원이 횡령 금액 절반을 선물·옵션 상품에 투자했다가 잃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과거 직장 동료로 인연을 맺은 주식 관련 전업투자자로부터 자문을 받아 선물 투자를 진행했으나 큰 손실을 봤다.

우리銀 횡령범, 선물·옵션 투자했다 절반 날려

서울경찰청은 9일 “우리은행 직원 전모씨가 선물옵션 상품에 투자해 318억원 손실 본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횡령금 중 일부가 해외로 송금된 내역도 적발했다. 또 금액이 전씨 혹은 그의 가족 명의 부동산에 들어간 정황도 포착해 조사 중이다.

경찰은 현재 범죄수익추적팀 5명을 투입해 수사 중이다. 전씨의 진술이 번복되는 데다 횡령 시기가 오래돼 확인 작업에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는 2012년∼2018년 3차례에 걸쳐 회사 자금 약 614억원을 횡령한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횡령)로 지난달 28일 경찰에 긴급체포됐다. 그는 우리은행에서 10년 넘게 재직한 차장급 직원이다. 횡령 당시 구조개선이 필요한 기업을 관리하는 기업개선부에 있었고 최근까지도 이 부서에서 업무를 본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지난 6일 전씨와 그의 친동생을 같은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구속 송치했다. 경찰은 전씨 계좌를 통해 자금 흐름을 파악하던 중 횡령금 일부가 그의 동생 사업 자금으로 흘러간 증거를 확보해 지난 5일 동생을 체포했다.

전씨는 2012년 10월 12일, 2015년 9월 25일, 2018년 6월 11일 등 세 차례에 걸쳐 614억5214만6000원(잠정)을 빼돌렸다. 이중 전씨가 500억원가량, 동생이 100억원가량을 나눠 쓴 것으로 추정된다. 전씨 동생은 뉴질랜드 골프장 리조트 개발사업을 추진하다 80여억원 손실을 본 것으로 전해졌다. 횡령액 614억원 중 전씨는 318억원을 선물옵션으로, 동생은 80억원 정도를 사업 실패로 각각 잃은 것이다. 합계 손실액은 400억원에 달한다.

경찰은 전날 전씨가 횡령금을 투자하는 데 도움을 준 공범 A씨도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A씨는 “투자금이 횡령한 돈인지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경찰은 A씨가 투자금이 횡령금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전씨로부터 매달 400~700만원을 수고비 명목으로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관계자는 “일부 금원이 A씨 통장으로 흘러 들어간 정황도 있고, A씨가 일정 금액을 받아온 점 등을 보면 (횡령금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정황이 적다”며 “정확한 부분은 휴대전화 디지털포렌식 분석을 해 종합해야 하지만 현재까지 조사된 정황만으로도 구속영장 신청이 가능해 구속했다”고 설명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2003∼2009년 우리금융그룹 자회사에서 전산업무를 담당하면서 전씨와 알게 됐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그는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본점에 파견 근무했다고 말했다.

오스템임플란트 회삿돈 2215억원을 빼돌린 이모씨가 지난 1월 14일 오전 서울 강서경찰서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오스템임플란트 사건과 유사점 보니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우리은행 사건이 앞서 코스닥상장사 오스템임플란트에서 불거진 횡령 사건과 유사점이 많다고 보고 있다. 자금 관련 부서의 간부급 직원이 직접 저지른 횡령이라는 점, 주식투자를 목적으로 단기간에 수익을 노리고 범행을 결심한 점, 고위험·고수익 투자를 진행했다는 점, 파생상품 거래를 했다가 대규모 손실을 봤다는 점 등이 비슷하다.

오스템임플란트에서 2214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 1월 구속기소된 이모씨는 지난해 3월부터 12월까지 총 42개 종목을 1조2800억원 규모로 대량 매수했다.

이씨는 차액결제거래(CFD·Contract for Difference)를 활용해 횡령액보다 더 많은 돈을 운용했다. CFD는 실제로는 투자 상품을 보유하지 않으면서 차후 가격 변동에 따른 차익만 정산하는 장외파생상품이다. 증권사에서 자금을 빌려 주식을 매매하는 신용융자와는 달리 CFD를 이용하면 주식을 직접 매매하지 않고도 차익을 얻을 수 있다.

이씨 매도 금액은 총 1조1800억원으로 조사됐는데, 횡령금으로 주식을 사고파는 과정이 반복되며 매매 규모가 불어난 것이다. 이씨가 회삿돈을 주식에 넣었다가 손해를 본 금액은 761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우리은행 횡령범 전씨가 투자한 선물·옵션은 가장 대표적인 파생상품이다. 고수익을 노리는 만큼 어느 파생상품보다 위험이 큰 것으로 평가된다. 전씨가 정확히 어떤 상품에 투자했는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미국 연방준비위원회(연준)의 금리 인상 기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 등 대내외적인 이슈가 많았던 만큼 변동성이 컸을 것으로 추측된다.

선물·옵션과 CFD 모두 상대적으로 고비용 고위험 상품이라서 전문 투자자들이 주로 사용한다. 전씨와 이씨 모두 단기수익을 극대화해 횡령한 돈을 메우고 차익을 챙길 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검은돈을 바탕으로 ‘대범한 투자’를 진행했던 이들은 한 초라한 투자 성적표를 받아든 채 법의 심판대에 오르게 됐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