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디 플랫폼(platform)은 ‘평평하다’의 뜻을 지닌 고대 그리스어 ‘platus’와 ‘형태’라는 뜻의 라틴어 ‘fōrma’가 합쳐져 생겨났다고 한다. 중세시대에 기차 철로보다 단을 높게 해 승객들이 기차를 타고 내리도록 하는 평평한 공간을 일컫는 데에서 유래한 플랫폼은 현대에 와서도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의미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대중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둘 이상의 사용자 그룹이 재화나 서비스를 거래하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장(場)', 다시 말해 미국의 ‘GAFA(Google‧Amazon‧Facebook‧Apple)’, 우리나라의 ‘네카쿠배(네이버‧카카오‧쿠팡‧배달의민족)’ 등으로 대표되는 온라인 플랫폼일 것이다.
제4차 산업혁명,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일상의 비대면화가 확산하면서 전 산업에 불어온 디지털 전환 열풍은 플랫폼 시장을 유례없는 속도로 성장시켰다. 단순히 입점업체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넘어 경제 생태계를 새로이 창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거대 플랫폼의 영향력이 확대됨에 따라 그들의 시장지배력 내지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경쟁을 왜곡하는 각종 불공정거래행위 역시 증가했다. 심판과 선수를 겸하는 플랫폼의 이중적 지위를 이용해 자기 사업을 입점업체보다 우대하는 행위(self-preferencing), 입점업체가 경쟁 플랫폼과 거래하는 것을 막는 배타조건부거래, 플랫폼 내 입점업체에 대한 차별취급, 문어발식 인수합병(M&A)으로 인한 경제력 집중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시장의 확대에 따라 소상공인, 근로자층이 플랫폼 영역으로 편입되면서 그 종속성을 악용한 불공정거래행위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거대 플랫폼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커지는 것은 세계적 추세이다.
유럽연합에서는 올해 10월부터 거대 플랫폼의 불공정거래행위를 강력하게 규율하는 ‘디지털시장법(Digital Market Act)’이 시행될 예정이다. 미국 하원은 지난해 6월, ‘GAFA’를 정조준한 급진적이고 강도높은 사전적‧사후적 규제인 ‘플랫폼 반독점법 패키지’를 발의했다. GAFA의 종주국으로서 그간 플랫폼 규제에 미온적이던 미국이 입장을 전면적으로 바꾼 것이다. 이러한 입법의 움직임은 유럽과 미국의 경쟁법제에 상당 부분 기인한다. 그들의 경쟁법은 경쟁제한적 행위(담합이나 독점, 반경쟁적 기업결합 등 시장에서의 경쟁을 저해하는 행위)의 금지를 주축으로 하기 때문에 불공정거래행위, 특히 거래상지위 남용행위(사적 거래관계에서 협상력의 우위에 있는 일방이 상대방에게 불리한 거래조건을 강요하는 행위 등)를 효과적으로 규율하기 부족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와 달리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은 제45조 제1항 제6호에서 명문으로 거래상지위 남용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사실 거래상지위 남용행위 규제, 이른바 ‘갑을관계’ 규제는 사적자치의 영역에 공권력 개입을 정당화한다는 측면에서 경쟁법의 정체성을 훼손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거대 플랫폼의 이른바 ‘갑질’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심화되는 근래의 상황에서, 우리의 거래상지위 남용행위 관련 규제가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비교법적 참고대상으로서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플랫폼 규제강화가 세계적인 추세가 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온플법’)」의 도입 여부를 두고 얼마전까지 뜨거운 공방이 이어졌었다. 이 법안(최종 제출된 공정위 발의안 기준)은 일정 규모 이상의 플랫폼과 입점업체 사이에 표준계약서 작성을 의무화하는 등 갑을관계 규제를 기반으로 한 각종 사전규제를 담고 있다.
‘네카쿠배’를 비롯한 온라인 플랫폼 기업이 최근 급격하게 성장해 우리 경제의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력의 집중 정도가 ‘GAFA’에 비견할 수준도 아니거니와, ‘네카쿠배’ 외 다수의 플랫폼이 여러 영역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역동적인 유효경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전적 규제를 도입하면서까지 시장의 자생적 질서를 제한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더욱이 기존 공정거래법으로도 플랫폼 사업자의 거래상지위 남용행위를 규제하기 충분하고,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된 네이버와 카카오의 경우 대기업규제까지 받고 있다는 점에서 규제 중복의 우려가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온플법’의 제정은 득보다 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쟁정책과 그에 따른 규제는 각국의 특수한 경제적 상황을 고려해 도입돼야 한다. 한국은 ‘GAFA’에 잠식되지 않은 토종 플랫폼이 버티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라다. 글로벌 패권경쟁이 심한 플랫폼 시장에서 ‘온플법’이 도입되면 국내 플랫폼 기업들만 역차별을 당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지난 1일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자율규제 방안을 도입하고 불공정행위 규율을 위한 필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확정했다. 사실상 ‘온플법’ 폐기 수순에 접어든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국내 플랫폼 시장의 이러한 규제 기조 변화는 대체로 환영할 만하다. 다만, 거대 플랫폼의 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를 비롯한 경쟁제한적 행위에 대해 사후적으로 강도높은 규제가 필요하다는 유럽과 미국의 시각에도 충분히 공감한다. 생각건대 경쟁과 혁신이 왕성하게 일어나는 플랫폼 시장질서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민간 주도의 자율규제와 적절한 사후적 규제가 상호보완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우리 공정거래법의 불공정거래행위 규제와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 규제가 사후적 규제장치로서 적극적 역할을 해야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양면시장인 플랫폼에서는 사용자 그룹 간에 거래되는 재화나 서비스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고, 가격이 0으로 책정된 경우도 있으며, 상품의 대체재를 판단하기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가격이론에 기반을 둔 기존 경쟁법 분석틀로는 관련시장을 획정하고 시장지배력을 파악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측면이 있다. 향후 새 정부는 관련 학계, 법조계와의 충분한 연구 및 숙의과정을 거쳐 플랫폼의 행위가 실질적으로 경쟁을 제한하는지 판단할 수 있는 경쟁법적 분석기법과 판단 기준을 확립하는 데에 주력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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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경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