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8일 새 정부의 의전·행사기획비서관을 향한 긴 조언을 남겼다. 대통령을, 행사를, 그 주인공들을 ‘애정’하고, 실수하더라도 잊고, 버티고, 고집을 부리는 게 필요하다며 감동은 애정과 디테일에서 온다고 전했다.
탁 비서관은 문재인 정부의 임기 종료를 하루 앞둔 이날 자신의 SNS에 ‘신임 의전비서관, 행사기획비서관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의 긴 글을 올렸다. 그는 “미국은 퇴임하는 대통령이 새 대통령에게 편지를 쓰는 전통이 있다고 들었다. 우리도 대통령뿐 아니라 모든 비서관이 새로 자리를 맡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두고 가는 전통을 만들고 싶었다”면서 “그러나 청와대의 역사가 단절되면서 그렇게 하기 어려워져 몇 가지 얘기를 두고 떠나는 것”이라며 글을 시작했다.
탁 비서관은 첫 번째로 “가까이 모시는 대통령부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저 건너편의 사람들까지 애정을 가져야 한다”면서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가졌든, 직을 맡는 순간부터는 국가적 입장이 우선이 된다”고 적었다.
이어 “저는 국가행사나 기념식 등을 준비하며 이 일이 ‘제사’와 같다고 생각하게 됐다”며 “사이가 좋지 않고, 밉고, 싫어도 제사상 앞에서 가족은 억지로 참고 예를 다하려 한다. 그 자리에서 화해도, 이해도 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가행사는 극단의 국민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한다. 여야도, 이해가 다른 각 부처도, 세대도, 성별도 상관없이 모인다”며 “그 순간만큼은 서로 입장이 다르더라도 싸우지 않도록 행사의 내용과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주제와 이야기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탁 비서관은 자신보다 젊고 어린 사람에게 많이 배워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새롭고 참신한 것, 타인에 대한 이해를 젊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배웠다는 것이었다.
그는 “내가 아는, 내가 시도한, 모든 참신한 것들은 저보다 어린 사람에게 배웠다”면서 “선배들이나, 나보다 웃세대에게 새로운 것을 기대할 수 없다. 그분들에게 배울 것은 다른 것”이라고 했다.
이어 “어떤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다면, 조금은 너그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면, 나보다 어린 사람을, 예의없고, 삐딱한 사람과 함께 일하세요, 당신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탁 비서관은 또 “(지난 일은) 잊어버려야 한다”며 “대통령 재임 기간 1800개가량의 행사를 치렀다. 때론 실패도 경험하게 된다. 이번에 잘못했으면 다음에 잘하면 된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대통령 행사에는 민원이 없을 리 없다. 애초의 기획의도가 흔들릴 수 있는 민원들”이라면서 “버티고 고집을 부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를 못 버티고 수용하면 잠시 고맙다는 말을 들을지 몰라도 많은 사람에게 실망을 주게 된다”면서 “어색하고 적절치 않은 순서나 내용이 들어오면 국민들도 알게 된다. 버티고 고집을 부리는 게 국민을 위한 길이고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탁 비서관은 “감동은 대상에 대한 애정과 디테일이 만났을 때 가능하다”며 자신만의 팁을 전했다. 그는 “음악 하나를 고를 때도 신중해야 한다. 대통령 입장 음악의 중요성을 잊지 말라. 이전까지 대통령들은 ‘위풍당당 행진곡’ 같은 영국 왕조를 연상케 하는 곡들로 민주국가 대통령을 우습게 만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탁 비서관은 마지막으로 “모두를 설득하고 이해시키고 감동시킬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목표가 돼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때는 책임을 져야 한다. 또한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면서 “탈출 버튼을 늘 옆에 두시라. 건투를 빈다”며 글을 마쳤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