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그 자체였던 분.”
지난 7일 뇌출혈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배우 강수연(56)의 마지막 작품이 된 영화 ‘정이’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이 SNS에 올린 추모글처럼 고인의 삶은 한국 영화사와 맥을 같이한다.
세 살 때 길거리 캐스팅으로 데뷔한 강수연은 초등학교 시절 어린이 드라마 ‘번개돌이’ ‘똘똘이의 모험’에 출연하며 아역으로 활동한 데 이어 1980년대 드라마 ‘고교생 일기’로 최고의 하이틴 스타가 됐다.
영화로 데뷔한 건 1976년(‘핏줄’)이다. 이후 1987년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에서 옥녀 역으로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한국 배우로는 최초로 세계 주요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어 1989년 임 감독의 ‘아제 아제 바라 아제’로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한국의 대표 스타를 넘어 ‘월드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당시 모스크바영화제는 칸영화제, 베를린국제영화제, 베네치아국제영화제와 함께 세계 4대 영화제로 꼽혔다.
80, 90년대 그는 한국 영화와 함께 전성기를 달렸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90) ‘경마장 가는길’(1992) ‘그대 안의 블루’(1993)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5)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 등 수많은 흥행작을 냈으며 이 영화들로 대종상영화제·백상예술대상·청룡영화상 등 각종 상을 휩쓸었다. 국내외 영화제·영화상 여우주연상 수상만 10차례에 달한다.
2000년대에는 ‘여인천하’(2001년) ‘문희’(2007년) 등 TV 드라마를 통해 안방극장에서도 활약했다. 이 드라마로 그해 SBS 연기대상을 받았다.
가장 최근 출연한 영화는 2013년 단편영화 ‘주리’며 마지막 장편영화는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작품인 ‘달빛 길어올리기’(2010년)였다. 다만 아직 공개되지 않은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정이’의 제작이 마무리된 상태로, 이 작품이 강수연의 마지막 작품이 됐다.
영화계 일이라면 마다치 않고 달려왔던 그의 면모는 이력으로도 확인된다. 1998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으로 참여했고 2015~2017년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고인은 생전 뜨거운 열정과 지극한 후배 사랑, 의리로도 유명했다. 불의 앞에 참지 않는 모습 덕에 ‘깡수연’이라는 애칭도 얻었다. 과거 한 영화 제작자가 나쁜 의도로 그를 호텔로 불렀을 때 주저없이 뺨을 때렸다는 일화다. 고인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함부로 하는 건 나이와 지위를 막론하고 못 받아들인다”고 말한 바 있다.
영화 ‘베테랑’(2015)에서 주인공 황정민이 돈을 받고 청탁을 하는 동료 형사를 향해 내뱉은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라는 대사의 원작자 역시 강수연이다. 무명인 후배, 스태프 등을 챙기기로 유명했던 그가 과거 류승완 감독과 만나 농담처럼 한 말이 영화 대사로 쓰였던 것이다.
그의 별세 소식에 이어진 영화계 동료 후배들의 애도의 글도 “가장 존경하는 분” “영화계 진정한 리더” “따뜻했던 사람” 등이었다.
고인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한 부산국제영화제 측은 공식 소셜미디어에 “한국 영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힘쓰셨고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적인 운영을 위해 헌신하셨다. 그 노고를 잊지 않겠다”며 그를 애도했다.
영화 ‘경마장 가는 길’(1991)에서 강수연과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 문성근은 이날 SNS에 “강수연 배우, 대단한 배우, 씩씩하게 일어나기를 기도했는데, 너무 가슴 아픕니다, 명복을 빕니다”라고 애도의 글을 남겼다.
배우 김규리는 2015년 임권택 감독의 영화 ‘화장’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했을 때 만난 고인과의 시간을 추억하며 “마지막까지 함께해 주시면서 힘을 보태주셨었다. 너무 감사했었다”면서 “저도 나중엔 ‘저렇게 멋진 선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며 비통해 했다.
그러면서 “저희에게, 저에겐 등대 같은 분이셨다, 빛이 나는 곳으로 인도해주시던 선배님을 아직 어떻게 보내드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인을 애도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