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위탁계약 지점장’은 근로자?… 엇갈린 대법 판단, 왜

입력 2022-05-05 18:33

위탁계약을 맺고 보험사 지점을 운영하는 지점장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봐야한다는 첫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다만 대법원은 기계적으로 동일한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되고 개별 사례마다 구체적 업무 형태를 따져 근로자성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한화생명보험과 위탁계약을 맺은 지점장 A씨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5일 밝혔다.

A씨는 2014년 한화생명 측과 위탁계약을 체결해 보험사 지점을 운영했지만, 2018년 계약서 준수사항 및 회사 지침 위반 등을 이유로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그는 “부당하게 해고됐다”며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내 인용 결정을 받았지만, 회사 측 불복으로 진행된 중앙노동위 재심에서는 부당해고가 아니라는 판정이 나왔다. 근로기준법이 정한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A씨는 법원에 중앙노동위 재심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1·2심은 중노위 판단과 마찬가지로 A씨가 회사와의 종속적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한 근로자로 보기 어렵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A씨에게 한화생명 정규직 직원과 같은 인사관리시스템이 적용되지 않았고 근무시간 규정도 따로 정해져 있지 않는 등 A씨가 사측 지휘·감독 바깥에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런데 대법원은 원심 판단을 뒤집고 A씨가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A씨의 실제 업무 형태가 정규직 지점장들과 다르지 않았다고 봤다. 정규직 지점장과 비슷한 시간에 지점 사무실에 출근해 일했고 업무시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A씨가 보험사 지역본부가 관리하는 지역단에 업무보고를 하는 등 실질적인 지휘·감독도 이뤄졌다고 봤다. A씨가 운영한 지점에 보험사의 정규직 직원들이 배치된 점도 근거가 됐다.

반면 A씨 사건과 같은 날 선고된 비슷한 사건에서 다른 대법원 소부는 정반대의 판단을 내놨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와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로 나뉘어 진행된 소송 4건에서 위탁계약형 지점장들을 법적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이 나온 것이다. 이들은 오렌지라이프생명보험, 흥국화재해상보험 등을 상대로 퇴직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원고들이 사측으로부터 실적 목표 달성을 독려받고 업무계획을 공유받기도 했지만 공지 내용은 추상적이거나 일반적이었고 각 보험사가 지점장 업무를 일일이 지휘·감독했다고는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사비를 들여 업무보조 직원을 직접 채용했다는 점도 이들을 근로자가 아닌 독립 사업자로 볼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판단 대상이 모두 보험사 위탁계약형 지점장으로 같다고 하더라도 개별 사건에서 업무형태 등 구체적 사실관계는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며 “기계적으로 같은 결론을 내리는 것은 구체적 사실관계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