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잇달아 ‘비상경영’에 돌입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문제, 우크라이나 사태 같은 불확실성이 무게를 얻고 있어서다. 원자재 가격 동향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화학·에너지업계는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한화그룹 유화·에너지 사업부문(한화솔루션 케미칼/첨단소재/큐셀, 한화 에너지, 한화임팩트, 한화토탈에너지스 등)은 4일 사장단 회의를 열고 글로벌 경제위기에 따른 경영 현안을 점검하고 대응책을 논의했다고 5일 밝혔다. 한화그룹 주요 계열사의 1분기 실적을 보면 매출은 늘었지만, 수익성이 하락하는 모습을 노출했다.
내부에선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불확실성이 장기화하면 실적에 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남이현 한화솔루션 대표는 “유가를 포함한 글로벌 에너지 가격과 공급망 차질을 면밀하게 살펴보면서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계·항공·방산 부문, 금융 부문, 건설·서비스 부문 등의 한화그룹 내 다른 사업부문도 지난달 말에 사장단 회의를 소집했었다. 이 회의에서도 ‘위기’ ‘대책’이 언급됐다고 한다.
서둘러 위기 대응에 나서는 기업도 나오고 있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의 지주사 한국앤컴퍼니는 지난달부터 전체 계열사 임원의 임금을 최대 20% 삭감했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한국엔지니어링웍스, 한국네트웍스, 한국프리시전웍스 등의 계열사 임원 100여명이 대상이다. 한국타이어는 외국 완성차 업체에 공급하는 비중이 높다. 물류비, 원자재 가격 변동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1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한 정유업계에도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국제유가가 오르면 단기적으로 정제마진 상승에 따른 수익 증대가 일어나지만, 계속 오르면 석유제품 수요 감소로 이어지면서 수익이 떨어지게 된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석유·천연가스 대신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앞당기려는 움직임도 가시화하고 있다. 기업들은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산업계에선 앞으로 더 많은 기업이 ‘위기경영’에 나설 것으로 본다. 이미 상당수 기업이 원자재 수급 불안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수출기업 85.5%가 공급망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큰 애로는 물류 지연, 운송비 폭등 등 ‘물류난’(35.6%)이었다. ‘원자재 가격 상승 및 채산성 악화’(27.8%), ‘특정지역 봉쇄에 따른 피해’(16.9%)가 뒤를 이었다.
우리에게만 한정된 일도 아니다. 애플은 중국의 상하이 봉쇄로 2분기에 40억~80억 달러가량 매출 하락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에 생산 기반을 두고 있는 한국 기업들도 공급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게 불확실성이 계속되는 것이다. 현재 상황이 이어진다면 당분간 보수적인 위기경영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