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경제인 사면 문제와 관련해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내비치며 “오히려 바둑돌을 잘못 놓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던 것으로 4일 알려졌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전날 세종공관에서 한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지난 2일 문 대통령과의 마지막 주례회동 당시 사면 문제를 두고 오간 대화 내용을 이같이 전했다.
문 대통령은 사면 단행 여부에 대한 김 총리 질문에 “국가적, 국민적 동의를 받았다고 보기 어렵지 않나”고 답했다고 김 총리는 설명했다.
김 총리는 “경제인 부분은 따로 볼 만한 여지가 없겠는가”라고 되물었지만 “이 와중에 경제인만 (사면)한다는 것도…다음 정권이나 기회가 오면 더 잘 해결될 수 있는데”라며 “임기 말에 사면권을 남용하는 듯한 모습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고 사면 불가 방침에 쐐기를 박았다고 한다.
김 총리는 문 대통령이 ‘바둑돌’ 이야기를 꺼내며 조심스러워했다고 전했다. 정치인 사면을 배제한 상황에서 일부 경제인만 사면할 경우 특권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 새 정권이 들어서서 국민통합을 명분으로 큰 폭의 사면을 단행할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김 총리는 또 ‘검수완박’ 법안에 검찰이 반발한 것을 두고 “무소불위의 권력은 이제 견제를 받도록 해야 한다”며 “어떤 권력도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그냥 두면 안 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검찰이 저렇게 세진 것은 문재인정부가 들어오고 나서부터”라고 설명했다. 문재인정부 이전에는 국가정보원이 검찰을 견제했는데, 현 정부에서 이를 하지 않다 보니 검찰에 대한 견제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김 총리는 “경찰 안에서도 ‘체크 앤 밸런스’(견제와 균형)이 이뤄지고, 검찰이 가진 보완 수사권도 막강하다”며 “그런 일(경찰의 수사권 독점)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검찰 개혁안 때문에 나라가 뒤집혔는데, 부족한 건 또 계속 채워나가야 하겠고, 정말 범죄자에게는 유리하고 국민에게 불리하다면 꼭 고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총리는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 “눈치 없이 새 정부에 ‘봉급 더 주세요’ 할 수는 없다”며 조기 사퇴 가능성을 내비쳤다.
일각에선 김 총리가 10일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당분간은 자리를 지키더라도 17일 새 정부의 첫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에는 거취를 정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 총리는 다만 “후임자가 오실 때까지 잘 연결 역할을 하겠다”며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요청할 경우 새 내각 장관들에 대한 임명 제청을 할 수 있다는 뜻을 시사했다.
아울러 문재인정부 출범 당시 김재수 당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약 3개월간 더 일한 점을 예로 들어 더불어민주당 의원 출신 장관 7명이 제출한 사표 역시 일괄 수리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