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與 ‘검수완박’ 독주에 법조계 “독선과 불통…권력자 쾌재”

입력 2022-05-04 04:45 수정 2022-05-04 09:56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오후 청와대 충무실에서 열린 국무위원 및 장관급 초청 오찬을 마친 뒤 본관 테라스에서 참석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3일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본회의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위해 형사소송법 개정안까지 처리한 데 이어 문재인 대통령이 속전속결로 국무회의를 개최해 법안을 공포하자 법조계에서는 “입법 폭주”라는 비판과 함께 “독선과 불통으로 얼룩졌다”는 한탄이 쏟아졌다.

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검수완박 법안 공포안을 의결한 직후 이날 오후 4시30분 박성진 대검찰청 차장 검사(검찰총장 직무대리)는 브리핑을 열고 “국회는 물론 정부에서조차 심도 깊은 토론과 숙의 과정을 외면하는 등 법률 개정의 전 과정에서 헌법상 적법절차 원칙이 준수되지 않아 참담할 따름”이라며 “앞으로 헌법소송을 포함한 가능한 모든 법적 수단을 검토하는 등 적극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예고했다.

국무회의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관련 검찰청법 개정안과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공포된 3일 오후 검찰총장 업무 대행인 박성진 대검 차장검사가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대검은 이날 오전 전국 검찰 구성원 3376명이 보낸 호소문을 청와대에 전달하면서 “국민적 공감대 위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헌법에 규정된 재의 요구권을 행사해 주실 것을 마지막으로 간곡히 호소드린다”고 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검수완박법 공포안은 국무회의를 빠르게 통과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이날 오후 4시20분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검수완박 입법과 공포의 문제점, 대책에 대해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서 의견을 상세히 말씀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검수완박법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예고한 셈이었다. 4일로 예정됐던 한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자료 부실 제출’을 이유로 오는 9일로 미뤄졌다.

권순범 대구고검장은 이날 오전 형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뒤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사직 인사 글을 올렸다. 그는 “대한민국의 국격과 인권이 후퇴하는 현실이 참담하다. 역사의 심판이 뒤따를 것”이라며 “독선과 불통으로 얼룩진 이번 입법 참사를 반면교사로 삼아 매사에 스스로 돌아봐야겠다”고 토로했다.

약 1500명 법학교수로 구성된 한국법학교수회는 이날 국회 본회의 전 성명을 내고 “검수완박 법안은 70년 형사사법 제도의 근간을 변경하는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입법의 시급성, 긴급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며 “국회법상의 입법 절차를 지키지 않은 것은 의회주의 및 법치주의 이념의 심각한 훼손과 더불어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하는 위법이 있다”고 비판에 나섰다.

법학교수회는 민주당이 ‘10일 이상 입법예고, 안건조정위원회 논의, 공청회·청문회 개최’ 등을 모두 생략한 점을 언급하면서 “절차적으로 국회법상 법률안 심의 절차를 형해화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을 겨냥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 헌법 준수와 법률의 최종 집행 책임을 지고 있는 대통령의 당연한 책무”라고 했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이 국무회의서 의결된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 연합뉴스

19대 대선 때 문재인 캠프에 있었던 신평 변호사는 이날 오후 국무회의 직후 페이스북에서 “검수완박법은 보수건 진보건 가진 자들에게는 아주 좋은 제도로서 기능한다. 특히 정치 권력의 한 귀퉁이라도 차지한 자들은 쾌재를 부를 만한 제도”라며 문 대통령과 민주당을 향해 날을 세웠다.

대한변호사협회장을 지낸 김현 ‘착한 법 만드는 사람들’ 상임대표는 성명을 통해 “개정안 통과는 절차적으로도 위법하고 내용도 헌법에 위반된다”며 “숙려 기간도 없이 졸속으로 통과시킨 개정안은 반드시 폐지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한변협은 ‘국민을 위한 검찰 개혁 입법 추진 변호사·시민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나흘째 이어갔다. 이날 연사로 나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피해자의 법률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는 “숙련된 법률 전문가인 검사로부터 수사받을 국민의 권리를 느닷없이 박탈하는 데 어떤 명분도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며 “입법자들이 앞장서 법치주의를 훼손했다”고 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