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범 대구고검장이 3일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 직후 “대한민국의 국격과 인권이 후퇴하는 현실이 참담할 뿐”이라며 “역사의 심판이 뒤따를 것”이라고 비판했다.
권 고검장은 형사소송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 직후인 오전 10시20분쯤 검찰 내부망에 글을 올려 “오늘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이상 없기에 여러분께 사직인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22일 이미 이번 사태의 책임과 부당한 입법 항의 의미로 사직서를 제출했었다.
권 고검장은 “누군가는 남아서 할 일이 있고, 누군가는 떠남으로써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권력 수사를 가로막고 범죄 피해 구제는 힘들게 하는 입법에 변함이 없듯, 제 뜻에도 변함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가 생각하는 이번 입법은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공직범죄, 선거범죄를 검찰에서 수사개시하지 못하도록 막은” 일이었다. 권 고검장은 “검찰의 권한을 줄인다더니 뜬금없이 고발인의 이의신청권을 박탈했다” “그로 인해 힘 없는 고발인들의 권리가 침해되는 문제에는 꿀먹은 벙어리”라고 비판했다.
권 고검장은 “검사는 동일성 너머 숨겨진 진실을 수사할 수 없게 됐고, 권력이 집중되고 있는 거대 경찰을 통제할 고민도 없었고, 수사권 조정 이후 심각해진 경찰 수사 자체와 그로 인한 국민 고통 역시 안중에 없었다”고 비판했다. 종전까지는 항고와 재정신청 제도를 통해 법원이 최종적 사법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 고발 사건에 있어서는 경찰이 법원의 권능마저 행사하게 됐다는 것이 권 고검장의 지적이다. 그는 “입법절차의 위헌성과 부당성은 언급할 가치도 없다”고 했다.
권 고검장은 “국민이 진정 원하는 검찰개혁은 검찰이 공정하게 수사하고 범죄로부터 국민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이라고 했다. 떠나는 그는 쓴소리를 남기겠다며 “독선과 불통으로 얼룩진 이번 입법 참사를 반면교사 삼아 매사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겠다”고 했다.
서울 출신인 권 고검장은 고려대 법대를 졸업했고 사법연수원을 25기로 수료했다. 1999년 서울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법무부 형사법제과장, 대검찰청 정책기획과장, 대검찰청 형사정책단장 등을 거쳐 엘리트 기획통으로 평가받았다. 지난해 6월 고검장으로 승진했지만 지난달 검수완박 입법 사태에 책임을 지겠다며 사직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