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맞아야 하는 줄 알았죠. 맞으라고 뉴스에서 그러니까.” 서울 마포구에 사는 백모(81) 할머니는 4일 동네 모 의원에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하러 갈 예정이었다. 지난주 먼저 4차 접종을 한 남편이 대신 예약을 해줬다. 뉴스에서도 60세 이상은 백신을 맞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지난해 3차 접종을 마친 뒤 지난 3월 코로나19를 앓아 사실상 4차 접종자로 분류되어도 무리가 없다.
전남 순천에 거주하는 A(64)씨 부부도 백 할머니와 비슷하다. 지난해 12월 3차 접종을 끝낸 부부는 지난 2월 함께 코로나19를 앓았다. A씨는 지난주 보건소에서 날아온 접종 권고 문자를 받고 아내와 예약을 했다. A씨는 “나라에서 맞으라고 하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보건소에서 받은 문자에는 ‘기확진자도 접종가능’이라고 적혀있었다.
고령층 백신 4차 접종을 둘러싼 과다 접종 우려가 불거지고 있다. 3차 접종 뒤 확진 판정을 받을 경우 의학적으로 4차 접종 필요가 적다는 의견이 다수지만, 정부 지침은 이를 구분하지 않고 있는 탓이다. 전문가들은 접종 필요성이 명확히 증명되지 않는 이상 행정 편의를 위해 함부로 권고해선 안된다고 우려한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일 0시 기준 60세 이상 인구의 백신 4차 접종 비율은 14.6%다. 예약접종을 시작한 지난 25일까지 5.4%였던 게 일주일 새 10%포인트 가까이 높아졌다. 질병청은 이중 3차 접종 기확진자 수는 파악하지 못했다. 질병청 관계자는 “접종 대상자 중 확진 여부까지 연계해 통계를 내는 시스템은 없다”면서 “구분 없이 행정안전부 데이터상 60세 이상에 일괄적으로 안내가 나가고 있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3차 접종 시행 당시에는 2차 접종 기확진자에게 추가 접종을 권고하지 않는다고 홍보자료와 지침에서 적극적으로 메시지를 내놨다. 그러나 최근 4차 접종 국면에서는 이 같은 메시지가 사라졌다. 이 관계자는 “고령자를 둘러싼 상황은 당시와는 달라진 점이 있다. 기확진자도 추가접종하는 게 낫다는 것이 방역당국의 결론”이라고 말했다.
반면 전문가들은 정부 견해에 근거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바이러스 감염 자체가 백신을 1회 추가 접종하는 것보다 항체 형성에 큰 역할을 한다”며 “3차 접종 뒤 확진됐다면 4차 접종을 한다 해서 항체 효과가 커지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 가설 단계지만 3차 접종 기확진자의 추가접종이 (면역세포인) T세포를 불필요하게 소모해 외려 차후 가을 접종 때 악영향을 미친다는 시각도 있다”고 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3차 접종 당시보다 더 위험하다는 건 과학적 근거가 없는 얘기”라면서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상태라면 국민이 받아들일 수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천 교수는 “백신은 부작용 가능성을 감수하고 필요 때문에 맞는 것”이라면서 “정부가 부작용 피해를 너무 간과하는 듯하다. 3차 접종 기확진자는 4차 접종을 아직 할 필요가 없다고 명확하게 메시지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명확한 설명 없이 정부 입장이 달라진 것을 두고 백신에 대한 불신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백씨 할머니와 이웃인 박모(77) 할머니는 “아파트 노인정에 나오는 사람 중 4차 접종을 한 건 한 명밖에 없다”면서 “정부가 백신이 남아도니까 폐기처분 하기 싫어 억지로 맞히려는 것 아닌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최재욱 고대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지금으로선 3차 접종 기확진자가 백신을 맞을 이유가 없다”며 “오히려 백신 접종에 대한 불신 등 역효과만 일으킬 뿐”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3차 접종 기확진자의 경우 당장 4차 접종을 하는 것보다 가을까지 기다리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초고위험군이라면 3차 접종 뒤 기확진자라도 4차 접종 필요성이 있겠지만 일반적인 경우는 추가 이득이 명확하지 않다”면서 “일반인이 3차 접종 뒤 감염됐을 때는 가을 (재유행을 앞두고) 있을 추가접종을 기다리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