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병사는 20㎞ 행군, 간부는 막걸리 마시고 열외”

입력 2022-05-02 07:11 수정 2022-05-02 09:50

“모범을 보여야 할 참모부 간부들이 술을 마시며 놀고, 아픈 용사들은 억지로 행군 참석을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육군부대에서 몸이 아픈 병사들에게 장거리 행군을 강요하면서 정작 일부 간부들은 음주 회식을 하고 행군에서도 열외가 됐다는 폭로가 나왔다. 해당 부대 측은 행군에서 빠진 간부들은 주간에 정찰을 실시했거나 다음 날 임무 수행을 위해 열외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다만 행군 당일 음주 회식에 대해서는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엄중 경고했다”고 밝혔다.

자신을 2신속대응사단 203여단 소속 장병으로 소개한 A씨는 지난 1일 페이스북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에 게시된 글을 통해 “참으로 답답하고 화가 난다”고 밝혔다.

A씨에 따르면 이 여단은 올해 말 KCTC(과학전투훈련) 참가를 목표로 야간 훈련 혹은 체력단련, 군장 뜀걸음 혹은 15~20㎞의 행군을 매주 진행하고 있다.

A씨는 “용사들 개인 기준에서는 과하다고 생각할 정도의 훈련”이라며 “우리 대대는 혹한기 전술훈련 때 환자들도 억지로 최대한 참여시켜 40㎞ 행군을 진행, 환자가 많이 발생했다. 40㎞ 행군이 끝난 지 한 달도 채 안 됐는데 다시 매주 행군을 진행시켜 또 환자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A씨에 따르면 국군대전병원은 아픈 병사들에게 “휴식 여건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진단했다고 한다. 그러자 중대장은 “열외를 하려면 소견서를 떼어 오고, 아니면 다 참여하라”고 했다. 환자들이 진료를 받고 소견서 제출했지만, 해당 중대장은 환자들을 그대로 훈련에 참여시켰다고 한다.

A씨는 “지난달 6일 야간 20㎞ 행군 때 전날 당직 근무를 섰던 간부들은 빠졌지만 당직병들은 근무 취침이 끝난 후 바로 행군을 진행했고 소견서를 받아온 환자들도 ‘공격 군장으로 진행하라’며 강제로 참여시켰다”고 밝혔다.

간부들이 행군 당일 음주 회식을 했고 행군에서 열외가 됐다는 폭로도 이어졌다. A씨는 “더 어이가 없는 건 대대 참모부는 대대장 주관 소통 간담회를 진행한다며 산으로 등산을 가고 거기서 막걸리를 마시고 행군 참석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용사와 간부 모두 저녁 식사를 하고 행군 집합을 해 출발하려고 할 때 참모부 간부들은 얼굴이 빨개진 상태로 막사로 돌아와 행군 참석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늘 마음의 편지나 설문을 통해 부대 훈련, 체력단련 강도가 과하다고 하면 ‘특수부대면 이게 맞는 거다 아니 오히려 아직 부족하다’고 말하면서 이런 상황을 보니 참으로 답답하고 화가 난다”고 덧붙였다.

A씨가 소속된 203여단은 “세심한 배려와 소통이 부족했던 점에 대해 안타까움을 전한다”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면서 “해당 부대는 다음 날 부대관리 등 임무 수행이 필요하거나 주간에 지형정찰을 실시한 간부에 한해 야간행군에 참여시키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다만 “행군 대상이 아니더라도 행군 당일 음주 회식은 부적절하다고 판단하여 엄중히 경고했다”며 “앞으로는 개인별 건강 및 체력 수준을 고려해 교육훈련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