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법농단 사건’의 한 당사자인 임성근 전 부장판사에게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임 전 판사는 다른 판사가 진행하던 몇 개의 사건에 개입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왔다. 임 전 판사가 받은 혐의 중 박근혜 전 대통령을 명예훼손 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재판과 관련한 논란이 가장 컸다.
가토 전 지국장은 산케이신문 인터넷판에 게시한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누구와 만났을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박 전 대통령의 사생활 관련 의혹을 제기했다가 재판에 넘겨졌는데, 임 전 판사는 이 사건 재판장에게 ‘세월호 사고 당일 박 전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관한 기사가 허위로 확인되면 판결 선고 전이라도 기사의 허위성을 밝혀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임 전 판사에게 적용된 죄명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국회는 임 전 판사에 대해 탄핵소추를 의결했다. 헌정사상 최초의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였다. 공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판사 출신이 8명, 그 중에서도 고등법원 부장판사나 법원장급의 경력자가 6명이나 자리하고 있는 헌법재판소가 그들이 거쳐온 길을 성실히 따라가고 있던 이 엘리트 법관을 파면시킬 수 있을까’라는 우려가 나왔다.
과연 ‘가재는 게 편’이었다.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이 진행되던 중 임 전 판사가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여 파면 결정을 해도 그 실익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소송이나 청구 요건을 갖추지 못했을 때 본안 심리 없이 재판을 끝내는 것)’했다. 임 전 판사가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자 귀신같이 우회로를 찾아낸 것이다.
그렇다면 임 전 판사에 대한 형사 재판은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법원의 팔 역시 안으로 굽었다. 1, 2, 3심 모두 재판에 개입할 권한이 없으므로 무죄. 즉, ‘남용’할 ‘직권’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사법농단으로 기소된 전·현직 법관 대부분이 무죄를 받았고 앞으로도 그리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여 년 동안 사법개혁은 우리 사회의 시급한 과제였다.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나 사법부는 ‘위원회’를 만들었다. 1993년의 사법제도발전위원회, 1997년의 사법개혁추진위원회, 2003년의 사법개혁위원회, 2005년의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그리고 2018년의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까지. 그러나 국민이 실감할만한 사법개혁의 성과는 거의 없었다. 일개 ‘위원회’만으로 어찌 견고한 기득권의 벽을 넘을 수 있었겠는가. 사법부의 독립은 여전히 법관 특권의 독립으로 남아있다.
있는 돈 없는 돈 쪼개서 낸 세금으로 사법부를 먹여 살려온 우리는 ‘나에게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한’ 사법부를 기대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사법부는 ‘나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남에게는 바늘 들어가 틈조차 허락하지 않은 엄격한’ 모습이었다. 이러니 누가 재판을 신뢰하겠는가. 국민의 ‘사법 불신’이 괜히 생긴 게 아니라는 말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사법부가 먼저 뼈를 깎는 자기 혁신에 나서야 한다. 사법의 위기는 정의의 위기요 국가의 위기라는 사실을 명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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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