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이창독 감독은 29일 “보다가 지루하면 빨리 돌려버리는 방식으로 소비하는 영화들이 아니라, 영화에 나를 맡기고 느끼면서 같이 경험하는 그런 영화들이 살아남아야 한다”며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이 감독은 이날 전주 완산구 중부비전센터에서 열린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특별전 ‘이창동: 보이지 않는 것의 진실’ 기자간담회에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에 비판적인 시선을 보내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분명하고 단순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며 “분명한 메시지, 쉬운 카타르시스는 관객이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끝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관객에게 질문을 남기고, 삶과 영화가 연결되는 것을 느끼게 하고 싶다. 어떤 관객이든 계급이나 환경을 넘어서 개개인이 공유하는 보편적인 의미로 확장되기를 바란다”고 부연했다.
이 감독이 이번 특별전을 통해 공개하는 그의 첫 단편영화 ‘심장소리’는 한국 가족이 보편적으로 앓고 있는 ‘사회적 우울증’을 다룬다. 영화는 해고노동자 아버지(설경구 분)가 타워크레인에 올라 우울증을 앓는 엄마(전도연)을 걱정해 수업 도중 집에 뛰어가는 여덟 살 철이(김건우)의 시선을 따라간다.
이 감독은 “엄마를 구해야겠다는 인간의 아주 원초적인 욕망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우울증에 걸린 사람의 고통 같은 것을 관객이 공유하기를 바랐다”며 “아이가 엄마에게서 느끼는 심장 소리를 관객도 느꼈으면 한다”고 전했다.
이 감독은 “영화는 어떤 매체보다 다른 인간에게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이 있다”며 “인류가 이런 매체의 본질적인 힘을 사라지게 할 일이 없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OTT 매체와의 협업에 대해서도 닫혀있지 않았다. 이 감독은 “나 역시 OTT측으로부터 (영화 연출) 제안을 여러 번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다”며 “꼭 OTT라서 그런 건 아니고, 할 만한 이야기라고 판단한 작품을 아직 만나지 못해서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차기 장편 영화 계획에 관해선 “항상 준비하고 고민하고 계획한다. 숙성이 안 돼서 유보하거나 접는 과정을 거친다. 또 공수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말씀 못 드리는 걸 이해해달라”며 웃었다.
이 감독은 한국 영화의 힘을 ‘다양성’에서 찾았다. 그는 “감독마다 색깔이나 성격이 모두 다른데, 이런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잘 없다”며 “어쩌면 한국 사람들이 그동안 여러 사회 문제를 뚫고 살아내며 생긴 생명력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은 세계인을 놀라게 하는 재능이 많이 나왔다. 나도 한쪽 귀퉁이에 같이 노력했다는 점에서 감회가 새롭다”고 덧붙였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