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증시가 부진을 거듭하면서 주가지수·개별 종목을 기초 자산으로 발행된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의 공포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발행된 ELS 중 원금 손실 구간에 진입한 상품의 비율은 전년도에 비해 약 12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한국예탁결제원 세이브로에 따르면 지난해 발행된 ELS 1만5408개 중 이날 기준 만기가 도래하지 않은 상품 126개가 원금 손실 구간(Knock-In·녹인)에 진입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발행된 1만3358개 ELS 중에선 단 9개만이 지난해 같은 날 기준 녹인에 진입했었다. 지난해 발행된 ELS의 녹인 비율은 전년 대비 무려 12배 높았다.
ELS는 계약만기일까지 특정 종목 주가, 주가지수 등 기초자산 가격이 정해진 수준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면 원금과 고금리의 이자를 주는 파생상품이다. 상품마다 조건이 다양하지만 통상 기초자산 가격이 발행 시점 대비 40~50% 이상 떨어지면 ‘녹인’ 구간에 진입하게 된다. 만기일 전에 한 번이라도 녹인이 발생했다면 원금 손실 가능성이 높아지고 만약 만기까지 녹인을 벗어나지 못하면 투자금을 모두 잃을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증시가 호황이면 계약 조건을 쉽게 만족시켜 높은 수익과 함께 원금을 조기에 상환할 수도 있지만, 증시가 하락하면 만기까지 ELS를 보유해야 할 가능성이 높고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에 떨어야 한다.
지난해 발행한 ELS에서 녹인 사례가 증가한 건 올해 전 세계적으로 증시가 하락을 거듭하고 있는 탓이다. 코스피지수는 지난해 대부분 기간 3000 이상에 머물러 있었지만 최근엔 2600대로 떨어졌다. 미 나스닥지수는 지난해 11월 최고점 대비 23% 하락했다. 아직 대부분의 상품에서 녹인이 발생할 수준은 아니지만 발행 시점 대비 하락폭이 커진 탓에 특정 종목이 개별 이슈로 20%만 떨어져도 녹인 구간에 들어설 위험이 높다.
세계 최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업체 넷플릭스가 연계된 ELS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증권사 인기 상품으로 떠올랐던 넷플릭스 연계 ELS는 무려 35개 상품이 녹인에 진입했다. 발행액만 465억원 규모다. 넷플릭스 주가는 지난 20일(현지시간) 올해 1분기 가입자가 20만명 감소했다는 소식에 하루 만에 40%가량 급락했다. 29일 기준 넷플릭스는 지난해 11월 세운 52주 최고가(700.99달러) 대비 70% 이상 하락한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홍콩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도 이 지수가 6000까지 떨어지면 녹인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알리바바·텐센트 등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 50개를 추려 산출한 홍콩H지수는 지난해 2월 17일 1만2228.63으로 고점을 형성했지만 지난달 15일 절반 수준인 6051.62까지 폭락한 바 있다. 지난달 말 기준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발행된 ELS의 미상환 잔액은 19조7403억원에 이른다.
주가 하락세가 지속될 수록 투자자들은 더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인플레이션 압력에 따른 전 세계적 긴축 움직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중국 코로나19 봉쇄 등 요인으로 당분간 증시 전망은 밝지 않다. 증시 전문가들은 경기 둔화 우려가 확산하면서 증시 하방 위험이 커지고 있다며 코스피가 2400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ELS에 묶인 미상환 발행잔액도 증가하고 있다. 올 1분기 ELS(ELB 포함) 미상환 잔액은 62조323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보다 11.2% 증가했다. ELS는 3개월, 6개월 등 계약 내 명시된 시점마다 기준가격을 새로 평가하는데, 연계된 종목 주가 또는 지수가 일정 수준을 만족시키면 약정된 수익과 함께 원금 조기 상환이 가능하다. 미상환 발행잔액이 늘었다는 것은 현재까지 진행된 평가에서 주가가 특정 수준 이하로 떨어져 원금의 조기 상환 기회를 놓친 이들이 많다는 의미다. 이에 조기상환액은 4조3857억원으로 57%에 불과했다. 반면 지난해 1분기에는 조기상환액이 전체 상환액의 80%에 달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