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을 통해 나타난 또 하나의 기독교 세계관)
주원규 동서말씀교회 목사
넷플릭스 역대 연속일 최장 기간 1위(46일)를 기록한 ‘오징어게임’의 세계적 성공을 말하는 게 상투적으로까지 느껴질 즈음 지난 2월 미국에서 배우조합상까지 수상한 쾌거까지 이루어내 놀라움을 더했다. 아울러 2024년말 시즌2가 선보일 것이란 소식에 전 세계 팬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걸 보면 이 신드롬은 꽤 오랜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문화사적 사건으로 인식되는 오징어 게임은 그 핵심을 관통하는 이야기 흐름에 ‘서바이벌 게임’이란 모티브가 자리 잡고 있다. 거액의 상금 획득을 목표로 수백 명의 사람이 새로운 삶을 꿈꾸며 이 게임에 뛰어든다. 하지만 이 게임은 오직 한 명에게만 주어지는 승자 독식 구조에 의해 대부분은 탈락하고, 탈락한 이들은 죽음까지 각오해야 데스 매치에 가깝다.
게임의 참여자들은 경제적 빈곤과 극한의 어려움에 몰린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들에게 주어진 추억의 게임이 극한의 끔찍한 서바이벌로 악화하는 모순을 담아낸 이 이야기는 무한경쟁에 내몰린 전 세계인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오징어게임은 회마다 키워드에 해당하는 부제를 붙여 긴박감을 더한다. 빚더미에 깔린 중년의 남자인 기훈이 일확천금을 노리고 의문의 게임에 뛰어들지만, 바로 눈 앞에 펼쳐진 충격과 공포의 현장이 펼쳐지는 1부, 무궁화 꽃이 피던 날(Red Light, Green Light), 2인 1조로 진행되는 네 번째 게임에서 주인공 기훈이 윤리적 딜레마를 겪고 갈등하는 사이 다른 참여자들은 본능에 굴복하는 등 극한 생존 경쟁에 휘말리는 6부 깐부(Gganbu). 극본과 연출을 맡은 황동혁 감독은 “현대인이 겪을 수밖에 없는 경제 지옥에서도 사람다움을 잃지 않으려 초인적 윤리의식도 함께 다루고자 했다”고 밝힌다.
기독교 세계관의 눈으로 볼 때, 오징어 게임은 반사회적 게임으로 무장해 윤리와 종교를 기괴하게 비트는 왜곡된 드라마로 보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무한경쟁의 참혹함, 뿌리까지 흔들린 현대사회의 윤리 근간을 ‘사람은 본래 악할 수밖에 없다’는 죄의 관점으로 본 드라마로 진단하기도 하고, 죄를 뛰어넘어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파해야 한다는 대응 관점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일리 있는 접근이며 충분한 당위성도 갖고 있다. 하지만 오징어게임을 지켜보는 기독교적 시선에는 대응 관점의 접근만이 아니라 기독교 담론을 포괄하는 현대를 살아가는 문화 현주소를 보여주는 드라마로 읽는 접근도 필요하다고 본다.
오징어게임이 국제적 주목을 받은 핵심 요인으로 작용한 건 두 가지다. 다양한 게임을 통과하는 의례가 인생을 상징한다는 것, 아울러 이 드라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게임이다’라는 거리 두기의 눈뜸이 그것이다.
오징어게임은 살벌한 약육강식의 현실을 풍자하고 있지만, 우리는 드라마를 보며 그것이 인생을 살면서 겪게 되는 숱한 질곡이 압축된 삶의 단면임을 깨우치게 한다. 게임이란 메타포로 압축해 나타난 전개지만, 그 흐름을 찬찬히 곱씹어보면 우리네 인생에서 쉼 없이 일어나는 사건과 갈등임을 알게 된다.
오징어게임이 상징하는 현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겪을 수밖에 없는 삶의 처절함이다. 그리고, 이를 들여다보는 건 철저히 중립적이다.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다. 왜냐하면, 주인공 기훈이 그랬던 것처럼 이 모순으로 가득한 삶에도 최소한의 사람다움을 잃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본능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기훈이 특별한 영웅이어서가 아니다. 사람이라면 모두가 가진 본성임을 역으로 입증한 것이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숱한 인물의 모습에 내포된 갈등이 곧 갈등하는 기훈의 초상과 같은 궤적을 보여준다. 실패와 두려움, 신의 명령과 인간의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던 다윗, 아브라함, 야곱 등. 성경 속 인물을 보며 우리는 오징어 게임이 그리는 참혹함을 어떻게든 돌파하려는 생존의 다른 방식을 보게 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요인은 ‘이것은 게임이다’라는 명제의 긍정성이다. 쾌락과 중독이란 게임의 폐해를 잠시 밀어놓고 본다면 게임은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무한 반복의 희망을 품고 있다. 오징어게임이 충분히 잔혹했지만,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다양한 애청자를 보유하게 된 배경엔 ‘이것은 게임이다’라는 인식이 가져온 무한 반복이란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게임의 근본에는 ‘이것은 게임, 드라마’라는 거리 두기의 효과가 존재하며, 이 거리 두기를 통해 얻는 건 성찰이다.
오늘의 현실을 냉정하게 들여다보는 힘, 우리의 오늘을 오염시킨 큰 흐름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반성케 하는 성찰의 장을 마련하는 게 바로 거리 두기의 힘이라고 보면 오징어게임은 인생을 상징하는 게임이란 점을 끝까지 유지한 긴장감과 동시에 성찰의 틈을 제공한 것이다. 이것이 오징어게임을 통해 새삼 발견하게 된 또 하나의 기독교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세계관 발견과는 별도로 오징어게임의 선정성이 가져온 비윤리성에 대한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 돈 앞에서 모든 인간이 무릎 꿇는다는 식의 도식화된 인간상을 모든 현대인의 모습인 것처럼 규정하는 섣부른 일반화도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필자는 오히려 오징어게임이 보여준 이 논쟁의 틈새에서 소통의 기회를 본다.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K-콘텐츠의 비평 지점이 세상과 기독교 사이에 유의미한 소통의 틈새를 열어주는 한 길을 열어준 것이다.
세상은 일방적으로 심판하거나 서툴게 교화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기독교인도 세상과 다를 바 없이 같은 모순과 아픔을 겪는 인간군상의 하나라는 전제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기독교인은 말하게 될 것이다. 기독교인은 이 살벌한 세상 속에서 그대로 어떻게든 부둥켜안고 사랑을 말하는 존재라는 거룩한 모순을 조심스럽지만, 꾸준히 말하게 될 것이다.
※주원규 목사=소설가, 칼럼니스트, 2009 제14회 한겨레문학상 수상, 아르곤(tvN, 2017) 집필, 코스트 베니핏(해냄출판사) 공동저자, 치유와 힐링의 시간(마리북스) 저자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