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조선 청백리와 한국 고위공직자

입력 2022-05-01 00:05

지난 25일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를 필두로 인사청문회가 시작됐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검증 자료를 충분히 제출하지 않았다”라는 이유로 청문회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결국 한 후보자의 청문회는 질문 하나 없이 끝났다. 이번 파행이 다른 후보자의 청문회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김인철 교육부 장관 후보자와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논란이 적지 않다. 윤석열 당선인이 발표한 후보자의 도덕성과 자질이 청문회를 통해 낱낱이 밝혀질 예정이다.

조선 시대에는 관리의 도덕성을 검증하는 ‘청백리(淸白吏)’ 제도가 있었다. 말 그대로 관리는 청렴하고 깨끗한 성품을 지녀야 한다는 뜻이다. 개국 초 실시됐고 중종 대에 정비를 거친 뒤 선조 대에 선발 절차와 포상 규정 등이 정립됐다.

청백리 선발 절차는 엄격했다. 조선 전기에는 의정부·이조, 조선 후기에는 비변사·이조가 각각 왕명에 따라 관인에게 자격을 갖춘 2명을 추천하도록 했다. 사망한 인물 또한 선발 목록에 포함된다. 이후 육조판서의 심사를 거쳐 국왕의 재가를 얻은 뒤 추천자를 확정했다.

청백리의 선발 기준은 법전에 명확하게 기록돼 있지 않다. 다만 ‘청백(淸白)’, ‘근검(勤儉)’, ‘경효(敬孝)’, ‘후덕(厚德)’, ‘인의(仁義)’ 등의 품행이 제시돼 있다. ‘청백탁이(淸白卓異: 청렴하고 결백함이 뛰어나다)’를 중시한 것이다.

황희

조선 왕조 500년간 218명의 청백리가 선발됐다. 세종조의 황희·맹사성, 성종조의 김종직, 명종조의 이황, 선조조의 이원익·류성룡·이항복 등이 대표적인 청백리로 꼽힌다. 조선 후기에는 노론의 독재와 외척의 세도정치 등 탐관오리의 만행이 심해지면서 거의 선발되지 못했다.

청백리에겐 ‘사불삼거(四不三拒)’가 불문율이었다.

사불(四不)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네 가지’. 부업을 하지 않을 것, 땅을 사지 않을 것, 집을 늘리지 않을 것, 마지막으로 부임지의 명산물(名産物)을 먹지 않을 것을 의미한다.

삼거(三拒)란 꼭 거절해야 할 세 가지인데 윗사람의 부당한 요구 거절, 부탁에 대한 답례 거절, 본인 경조사의 부조(扶助) 거절 등이다.

사불삼거와 관련해 몇몇 이야기가 전해진다.

연산군 때 풍기 군수로 임명된 윤석보는 처자를 고향에 두고 홀로 부임했다. 그러자 가난을 견디지 못한 고향의 식구들이 집안의 물건을 팔아 밭 한 마지기를 샀다고 한다. 사실을 뒤늦게 안 윤석보는 이렇게 말했다.

“옛말에 공직에 있으면서 자신을 위해 땅 한 척이라도 넓혀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다. 이는 국록(녹봉) 이외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내가 관직에 올라 국록을 받으면서 땅을 장만했다면 세상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그리고 즉시 밭을 도로 무르게 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청송 부사 정붕은 영의정이 꿀과 잣을 보내 달라고 부탁하자 “잣나무는 높은 산 위에 있고 꿀은 민가의 벌통 속에 있다”라는 답을 보내 청을 거절했다.

조선 시대 청렴한 공직자상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자기 본분과 분수를 지킨다.
둘째, 옳은 방법으로 부를 추구해야 한다.
셋째, 진리에 대한 꿋꿋한 마음을 유지하고 진리대로 사는 삶을 즐긴다.

차기 정부를 이끌 내각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공직자로서 갖춰야 할 본분을 강조했던 선조들의 정신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때다.

배규빈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