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임대차이자 사(私)금융의 성질을 가진 전세제도는 100년 이상 우리나라 주택시장에서 대중적으로 운영돼 왔지만 이는 인도와 볼리비아를 제외한 어느 나라에도 없는 제도이다. 더욱이 위 국가들에 비해 한국은 탄탄한 금융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희귀한 특성이 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전세제도가 세계적 흐름에 맞지 않으므로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엄연히 수요와 공급이 존재하는 시장에서 위와 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전세제도가 우리 민법에 계약형태로 자리 잡게 된 것은 목돈을 융통하고자 하는 임대인과 매달 주거비용을 지출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임차인의 활발한 수요와 공급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전세는 무주택자 서민의 ‘내 집 마련’을 위한 명실상부한 징검다리 역할을 해 왔다. 주거비용 측면에서 월세에 비해 유리할 뿐만 아니라 전세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점차 불어난 전세보증금을 내 집 마련의 종잣돈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그 특유의 전세제도 덕분에 주거 선택의 다양성이 높다고 평가된다. 임대인과 임차인은 집값 오름세, 대출금리, 본인의 자금 사정 및 자금 운용 계획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전세 또는 월세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제도에는 명암이 있다. 전세가 부동산 투기, 이른바 갭투자를 조장하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순기능이 적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지난 2020년 7월 임대차 3법(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 상한제, 전월세 신고제)이 시행된 이후, 규제를 받게 된 집주인은 전세 매물을 회수하거나 월세로 전환했다. 갱신청구권을 갖게 된 기존 세입자의 갱신율은 크게 증가했다. 수요는 그대로인 상황에서 공급에 인위적인 제동을 걸었다. 아주 기초적인 경제 지식만으로도 물량절벽과 가격(전세보증금) 폭등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허술한 법을 이용한 이중가격 형성, 임대차 분쟁 등 임대차 3법이 낳은 부작용은 모두 열거하기 힘들 정도이다. 그리고 이 전대미문의 전세대란은 고스란히 무주택자 서민의 고통으로 이어졌다.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에 대한 처방 이론으로 주목받게 된 영국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August Von Hayak)는 그의 저서 『노예의 길』에서 열린 사회로서의 자생적 질서, 즉 자유시장 질서만이 인간의 구조적 무지를 경감시켜 줄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인간의 구조적 무지란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신을 둘러싼 자연적·사회적 환경에 대해 불완전하게 인식하고, 그 인식은 언제나 틀릴 가능성을 내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여기서의 자생적 질서는 소극적이고 추상적인 금지 형태의 행동규칙으로 실현되고, 질서를 유지하는 지도자를 별도로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어떤 훌륭한 계획과 목적(예컨대, 서민의 주거안정)을 가진 고매한 관료나 정치가라 하더라도 그들이 경제질서를 전적으로 주도하게 되면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이 탄생한다. 결과적으로 사회구성원인 개인들은 그 계획 실현의 도구(노예)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20세기 자유진영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평가받는 마거릿 대처(Margaret Hilda Thatcher) 전 영국 총리와 로널드 레이건(Ronald Wilson Reagan) 전 미국 대통령은 하이에크의 사상을 전격 수용해 작은 정부를 통한 경제 재건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양극화와 구조적인 불평등이 그 어느 때보다 심화된 현대사회에서 하이에크의 자유주의 사상에 어느 정도의 수정은 필요하겠지만, 정부 주도 경제개발, 계획경제를 보편적 경제질서로 삼아온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임대차 3법’을 두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당초에 약속한 ‘폐지’가 아닌 ‘개선’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섣불리 법을 폐지했다가는 시장에 혼란을 가중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개선의 골자는 임대인에 대한 인센티브 확대일 것으로 보인다. 주택시장에 전면적인 혼란을 초래한 임대차 3법을 손보겠다는 취지는 반가우나, 이미 왜곡이 있는 대로 발생한 마당에 땜질식으로 법을 조정하면 이미 이중·삼중으로 갈라진 시장이 삼중·사중으로 왜곡될 수도 있다. 생각건대 시장에 직접적 개입을 하지 않는 전월세 신고제(임대차계약 30일 이내 지자체에 신고해야 한다)는 순기능이 큰 만큼 유지하더라도 나머지는 전면적 수술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임대차 3법은 임차인의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좋은 뜻으로 만든 법임은 확실하지만 시장의 자생적 질서를 무시한 결과 당초 목적과는 전혀 반대의 결과를 초래했다. 취지와 반대로 간다면 현실에 맞게 되돌리는 것이 당연지사다. 고장난 시장이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민간 임대차시장에서의 계약 자율성과 유연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입법이 전면적으로 개선돼야 할 것이다. 정부의 역할은 시장이 자생적 질서를 찾아갈 수 있도록 후견적 지원을 하는 것으로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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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경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