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로스쿨생, ‘명예살인 위기’ 파키스탄 난민 인정 조력

입력 2022-04-28 07:00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정문. 국민일보DB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재학생들이 명예살인 위기에 놓인 파키스탄 국적 외국인들에 대한 법원의 난민 인정 판결을 이끌었다. 명예살인은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여성을 살해하는 범죄를 뜻하는데, 국내에서 명예살인 위협으로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첫 사례가 됐다.

서울고법 행정1-1부(부장판사 심준보)는 지난 20일 파키스탄 출신 A씨 부부와 자녀가 인천 출입국·외국인청장을 상대로 “난민 불인정 결정을 취소하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파키스탄 출신 유학생 A씨는 국내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밟던 2016년 본국에 일시 귀국했을 때 아내 B씨를 만나 결혼을 약속했다. 그러나 B씨 가족은 신분 차이를 이유로 결혼을 반대했고, 두 사람은 납치와 폭행, 살인 위협에 시달리게 됐다. 이에 A씨는 아내와 함께 한국으로 대피했지만 그 뒤로도 살인 위협이 계속돼 결국 난민 신청을 냈다.

당시 당국은 A씨의 난민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A씨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2020년 6월 당국의 손을 들어줬지만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이번 소송은 서울대 공익법률센터와 공익법센터가 지원했고 서울대 로스쿨 재학생들도 다수 참여했다. 학생들은 법률서비스에서 소외된 취약 계층을 돕는 법률봉사 프로그램 참여자들로 소장과 준비서면 작성에 참여한 것은 물론 국내 난민 관련 판결문과 논문을 조사했다. 해외 명예살인 관련 기사 및 통계자료를 수집·정리하기도 했다.

특히 미국과 호주 등 해외에서 명예살인 위협을 이유로 난민 인정을 받은 판례를 번역해 서증으로 제출하며 난민인정의 법리적 근거를 마련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번 사건 지원에 참여한 박가영 학생은 “처음 사건을 접했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살해 위협을 받고, 본국의 법체계가 이를 보호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며 “예비법조인으로서 난민의 인권 문제와 난민 사건의 법적 논의가 실제 사건에서 다루어지는 것을 직접 보고 참여할 수 있어서 더욱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김인희 공익법률센터 변호사는 “난민 사건 특성상 본국의 정치·사회·문화 등 복합적인 상황을 반영하기 때문에 조사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며 “학생들이 수많은 외국 자료를 조사하고 번역해 방대한 변론 자료를 준비할 수 있었다”고 했다.

안명진 기자 a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