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 남자 아이 K는 지난 주말에 아빠와 동물원에 갔다 왔다. 거기서 호랑이가 우리를 빠져 소동이 벌어졌는데 자신과 아빠가 호랑이를 제압하여 우리로 다시 돌려 보냈다고 한다. 친구들은 K의 말을 넋을 놓고 들으며 환호한다. 어린이집에서 배가 아픈 선생님을 낫게 해서 구해 주었고, 아픈 친구도 도와주었다는 얘기를 엄마에게 자주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 부모는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고 꾸며낸 이야기를 사실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아이가 걱정스러웠다.
4세가 되면 아이들은 공상이 많아진다. 특히 이 연령에는 힘에 대한 열망이 많아지고는 시기이고, 히어로물을 보면서 그걸 대리 만족하며, 공상으로 꿈을 꾼다. 3~4세 이전에는 눈에 보이는 것만을 인식할 수 었었지만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스스로 만들어 내게 되는 거다. 어찌 보면 이런 공상은 창의력의 시발점이 되고 인류의 문명 발달의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내가 ~~하게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어느새 현실과 뒤섞이며 어느 게 현실이고 어느 게 공상인지 구분이 모호해지고 아이들은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하게 된다. 고지식한 부모는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밀며 아이를 야단치기도 하고 화를 내며 교정하려 든다.
부모에게 야단을 맞은 아이는 자신의 생각에 자신감을 잃게 되고 말하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면서 위축된다. 야단맞지 않으려고 하고 차츰 속내를 표현을 하지 않으려 한다. 공상과 현실의 혼돈에서 오는 거짓말은 나무라지 않아야 한다.
공상과 다른 유형의 거짓말도 있다. 동화책이나 들은 이야기를 마치 자신이 경험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거짓말도 있다. 어른들이 들으며 놀라고 재밌어하는 것을 즐기며 하는 거짓말이다. 점점 심해질 수 있으므로 아이들은 어른을 쉽게 속일 수 있다고 느끼며 나쁜 의도를 가진 거짓말로 발전할 수도 있다. 이럴 땐 ‘네가 꾸며낸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는 메시지만 주면 된다. ‘그런 일이 정말로 일어난다면 놀랄 일이네’ 라는 식으로. 너무 정색하고 심하게 나무랄 것까진 없다.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한 거짓말도 있다, 현실에서 불만족스러운 것을 가상의 세계에서 충족하려는 데에서 나온 거짓말도 있다. 불만족스러운 것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다. 억눌린 불만을 상상으로라도 해소할 수 있는 자유. 아이의 행동보다는 억눌린 욕구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
야단맞는 것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 이런 거짓말 한 것을 알았더라도 심하게 나무라거나 매를 들기보다 부모에게 솔직히 말할 수 없었던 이유나 의도를 들어 보자. 이런 경우라면 부모의 양육 태도를 냉정하게 뒤돌아 해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아이의 행동만을 두고 나무란다면 아이는 부모가 두려워 뉘우치는 것처럼 말하지만 같은 의도나 이유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 결국 아이는 거짓말쟁이가 되기 쉽다. 거짓말을 하면 남이나 자신에게 어떤 피해를 주는 지도 설명해주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용기 있는 행동’임을 부드럽게 설명해 주자.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