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보다 술 적게 먹는데 간 질환?…음주도 ‘금수저 유전자’ 있다

입력 2022-04-27 10:20 수정 2022-04-27 11:22

남들보다 술을 적게 마시는데 알코올성 간질환에 걸리는 사람이 있다. 반면 술을 많이 마셔도 간 수치가 정상인 사람이 있는데 왜일까?

이런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아주대병원 가정의학과 김범택 교수팀은 알코올성 간염의 원인이 흔히 알려져 있는 ‘알코올 분해효소’(공격 인자)가 아닌, 간에서 ‘항산화 작용’(방어 인자)이 약한 즉 선천적인 ‘유전적 요인’이 중요함을 새롭게 밝혀냈다.

알코올은 간에서 ‘알코올 탈수소효소(ADH)’에 의해 ‘아세트알데히드’로 분해되고, 아세트알데히드는 ‘아세트알데히드 탈수소효소(ALDH)’에 의해 아세트산으로 대사된다. 아세트산은 여러 대사 과정을 통해 에너지 합성 등으로 쓰인다.
그런데 간은 섭취한 알코올의 90% 이상이 대사되는 장기로 그 과정에서 아세트알데히드가 간세포와 DNA를 손상시키면서 간 기능을 떨어뜨린다.
이 같은 알코올 분해 효소의 많고 적음이 숙취나 간 손상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지목돼 왔다. 이 때문에 흔히 술 자리에서 ‘나는 간에 알코올 분해효소가 적어 빨리 취해’란 말이 일반화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연구결과 이런 표현은 잘못됐다는 것이 밝혀졌다. 우리 몸은 술을 마시면 간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방어 기전을 작용하는 데, 이런 방어 기전이 유전적으로 약하면 남들보다 술을 적게 마셔도 간 질환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결과는 간(liver) 연구분야 권위지 ‘헤파톨로지(Hepatology)’ 최신호에 실렸다.

연구팀은 한국유전체역학연구(KoGES) 대상자 2만1919명(40~79세)의 유전자를 분석했다.

대상자를 알코올성 간염이 있는 군과 없는 군 두 그룹으로 나누고 각 그룹별로 비음주군, 적정 음주군, 중증 음주군 총 3개군으로 다시 나눠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유전체의 ‘단일염기변형(SNP)’의 발현, 즉 각 환자군마다 유전자 변이가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다.

자세히 살펴보면 술을 적게 마시거나 많이 마시는 것과 상관없이 알코올성 간염 환자군에서 간 해독과 항산화 작용(산화되는 화학 반응을 억제)을 담당하는 효소인 ‘GGT(감마글루타밀전이효소) 유전자 변이’가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또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 적정 음주군 내에서도 알코올성 간질환이 있는 경우엔 HNF1A, ZNF827 유전자의 변이 및 발현이 억제된 것을 확인했다.
즉 같은 술을 마셔도 누구는 간질환에 걸리고 누군가는 걸리지 않는 유전적으로 강한 타고난 금수저가 따로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강한 방어 인자도 지나친 음주를 할 경우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유전자만 믿고 과도하게 음주를 하면 결국 간염이나 간경화 등 간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연구팀은 강조했다.

김범택 교수는 27일 “그동안 알코올성 간염이 공격 인자(알코올 분해효소)에 의해 발생한다고 알려졌지만, 이번 연구에서 자기 몸을 보호하는 방어 인자인 HNF1A, ZNF827 유전자의 변이 및 억제에 의해 발생함을 새롭게 밝혔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음주 다음날 콩나물이나 황태 해장국이 좋은 것은 알코올 분해보다 글루타치온 성분 등 항산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결과로 보면 숙취 해소를 위해 항산화 효과가 더 좋은 비타민C가 풍부한 과일 주스를 마시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