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를 포함한 주요 반도체 기업의 주가가 추락하고 있다. 지난해 ‘반도체 겨울’ 위기를 불식하고, 1분기에도 좋은 실적을 거뒀지만 주식시장에서는 정반대 행보를 보인다. 반도체 공급 과잉으로 주가 폭락을 경험했던 ‘2018년 반도체 버블’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삼성전자 주가는 26일에 전 거래일보다 0.3% 내린 6만61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1년간 최고가였던 8만3500원보다 20.8%나 떨어진 금액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에 매출 77조원을 거두며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하지만 주가는 7만원 아래로 주저앉으며 ‘6만 전자’를 전전하고 있다.
1분기에 좋은 실적을 받아들 것으로 예상되는 SK하이닉스의 주가도 이날 11만10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최근 1년동안 최고가였던 13만6000원에 비해 18.4% 하락한 숫자다.
미국의 주요 반도체 기업도 마찬가지다. 최근 1년을 기준으로 인텔의 주가(현지시간으로 25일 기준)는 최고가 대비 26.4% 떨어졌다. AMD와 엔비디아도 각각 44.7%, 42.6%나 추락했다. 미국 경제매체 마켓워치에 따르면 반도체 설계·공급·제조·판매에 관련된 미국 기업의 주가를 지수로 만든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SOX)는 1년 전보다 24%나 하락했다.
올해 반도체 산업의 경기는 지난해보다 나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럼에도 주가에 반영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산업계와 금융투자업계에선 2018년을 기점으로 불거졌던 ‘반도체 버블’에 대한 공포를 지목한다.
반도체 업계는 2017~2018년에 기록적인 호황을 누렸었다. 5G 통신,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의 수요가 폭발하면서 향후 3~5년간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도래한다는 장밋빛 전망까지 나왔었다.
그러나 2019년에 접어들면서 반도체 공급과잉에 따른 가격 폭락이 찾아왔다. 당시 호황은 수요 증가보다 공급 부족에 기인한 측면이 강했다. 공급이 정상화하자 가격은 빠르게 추락했고, 공급 과잉 상태로 발전했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금융시장에서는 현재 상황도 그때와 비슷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미·중 무역전쟁과 코로나19 등으로 반도체 생산에 차질을 빚으면서 세계적인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수요 폭증이 아닌 공급망 구멍이 ‘좋은 실적’의 원인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는 것이다.
투자자문업체 에버스코어 ISI의 C.J 뮤즈 분석가는 “투자자 관점에서 반도체 주식은 거의 투자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투자자들은 반도체 기업들이 공급 과잉을 예측하고, 실적 전망치를 낮추길 기다리고 있지만 단기간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장기적으로 반도체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한다는 데 이견은 없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투자, 수요, 공급 등의 변수에 따라 반도체 시황은 큰 변동성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메타버스, AI 등의 미래 산업에서 반도체가 사용되지 않는 곳은 없다. 장기적으로 반도체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