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방경제 활성화를 위해 주요 공기업을 지방으로 이전하겠다고 공약한 가운데 KDB산업은행이 유력한 시범타로 떠오르고 있다. 산업은행을 유치하게 된 부산시는 적극 환영한다는 입장이지만 산업은행 임직원과 영등포구 정치인들은 반대 의사를 표하며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묻지마 이전’을 밀어붙이기에 앞서 그간 지방으로 옮긴 금융공기업의 실태와 역대 정권이 약속한 경제효과가 실제로 나타났는지에 대한 중간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효과 4조원” VS “효과 미미”
산업은행 지방 이전 찬성 측에서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는 이전 근거는 생산유발, 일자리 증가 등 긍정적인 경제 효과다. 부산시에 따르면 산업은행 부산 이전에 따른 인력 유입, 소비 촉진, 본사 신축·운영 등 과정에서 부울경(부산·울산·경남) 지역에 나타나는 경제효과는 4조원에 육박한다. 생산 유발효과가 2조4076억원, 부가가치 유발효과가 1조5118억원이다. 취업 유발효과도 3만6863명에 달한다.주요 국가산업기반이 서울 등 수도권에 몰려있는 현상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가균형발전이라는 취지에 맞게 분야별 핵심 기관을 지역별로 고르게 안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금융·보험업의 지역내총생산(GRDP)에서 수도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66.2%에 달한다. 고부가가치산업을 전국에 고르게 분배해 일자리, 투자, 인구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산업은행의 주력 지원 분야인 조선·자동차·석유화학 등 국가기간사업이 동남권에 몰려있다는 점도 언급된다.
반면 반대론을 펼치는 이들은 애초에 공공기관 몇 곳이 이전한다고 해서 수도권과 지방의 경제 격차가 줄어들지 않는다고 반론한다. 산업은행 노동조합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00년대 중반부터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3년간 수도권 지역 실질소득은 13% 상승한 반면 혁신도시는 11.3% 증가하는데 그쳤다. 이 격차(1.7%)는 2013~2016년 조사에서는 3.3%로 벌어지며 ‘공공기관 지방 이전 무용론’의 주요 근거로 쓰이고 있다.
가정이 무너지고 조직이 무너지고
임직원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가정 해체’다. 정치인들은 서류에 도장만 찍으면 기관을 이전시킬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소속 직원들의 가족은 뿔뿔이 흩어진다. 부산시는 지역균형개발 명목으로 2005년부터 한국거래소 한국예탁결제원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 국책금융기관을 포함해 29개의 금융기관을 유치했지만, 이들 기관 임직원의 가족 동반 이주율은 63.8%에 불과하다. 첫 이주 후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10명 중 4명은 ‘기러기 아빠’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무리한 지방 이전에 따른 기관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지방 이전을 완료한 주요 공공기관의 2016년 대비 2020년 경영실적을 보면 국민연금공단(-339억4200만원) 신용보증기금(-1076억4700만원) 기술보증기금(-375억400만원) 등 대부분 적자 폭이 확대됐다. 그 결과 2015년까지만 해도 세계 7위를 사수하던 서울의 국제금융센터지수(GFCI)는 지난해 9월 13위로 주저앉았다.
이 같은 기관 경쟁력 약화의 주요 요인으로는 지방 이전에 따른 핵심인력 이탈이 꼽힌다. 산업은행은 아직 지방이전이 결정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20·30세대 임직원들 사이에서 ‘엑소더스(대탈출)’와 같은 움직임이 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백조원을 운용하는 국민연금공단도 지난 2017년 본사가 전라북도 전주로 내려가자 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민연금은 투자은행(IB)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을 영입해 자금을 운용해왔는데, 이제는 운용역 정원도 채우기 힘든 실정이다. 특히 국민연금 운용의 핵심부서인 기금운용본부에서는 수탁자책임실장(2020년 7월), 부동산투자실장·인프라투자실장(2021년 10월) 등 주요 인력의 줄퇴사가 이어지고 있다. 본사가 지방에 있는 탓에 글로벌 투자자들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고 생활 여건도 힘들어졌다는 판단에서다.
“균형발전 맞나” VS “시간 지나면 해결”
공공기관의 부산 이전이 실제 균형 잡힌 국토발전에 기여하는지에 대한 논란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부산으로 이전한 캠코 예탁결제원 한국남부발전 주택금융공사 등을 보면 전부 부산 남구에 위치한 BIFC(부산국제금융센터)에 입주해있다. 공공기관을 고르게 분산시켜 경제효과를 유발한다는 취지와는 거리가 있는 모습이다.반면 이들이 근무하는 곳은 도심지역이지만 주중에는 거주지역에 머물며 소비를 하는 만큼 장기적으로는 전체적인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정부청사가 이전한 세종특별자치시나 기업·대학이 이주한 송도국제도시 등도 기관 이전 초기에는 경제효과가 미미했으나 시간이 지나며 점차 인구가 늘고 활성화됐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 ‘경제의 정치화’의 결과라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시중은행 고위관계자는 “다른 산업과 달리 금융은 한곳에 집적돼있을 때 최대 시너지를 발휘한다”며 “이미 서울 여의도에 금융중심지가 형성돼있는 상황에서 이것을 부수고 다른 곳에 중심지를 형성하겠다는 것은 굉장히 비효율적인 작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산업은행을 이전시키고 나면 같은 논리에 따라 수출입은행, IBK기업은행 등도 모두 전국에 분산시켜야 이치에 맞다”며 “이 과정에서 왜 부산에만 금융중심지라는 특혜를 주냐는 지적이 다른 지역에서 강하게 제기되면 최악의 상황에는 대한민국에서 금융허브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지는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