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 살인’ 수사검사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검찰 수사·기소권 분리 법안 중재안에 대해 “도무지 수사 현실을 모르는 단견(짧은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인천지검 형사2부 박세혁 검사는 24일 검찰 내부 전산망 이프로스에 ‘범죄가 두부냐? 카스텔라냐? 동일성과 단일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앞서 박병석 국회의장이 내놓은 중재안에는 검찰의 수사권을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다. 중재안 4항에는 ‘범죄의 단일성과 동일성을 벗어나는 수사를 금지한다’ ‘검찰의 시정조치 요구 사건, 고소인이 이의를 제기한 사건 등에 대해서도 해당 사건의 단일성과 동일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속에서 수사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경찰이 검찰에 넘긴 사건을 보완 수사할 때 ‘단일’하고 ‘동일’한 사건에 대해서만 검찰이 수사권을 가진다는 의미다.
박 검사는 “단일성 혹은 동일성이라는 개념은 법률규정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실무현장에서는 그 기준이 모호할 가능성이 커 수사상 재앙이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범죄는 다른 인간사와 마찬가지로 두부나 카스텔라처럼 딱 절단돼 구분 지어질 수 없는 노릇”이라고 강조했다.
계곡 살인 사건을 예로 들며 중재안이 가져올 부작용에 대해 조목조목 따졌다.
박 검사는 “중재안에 따르면 이번 사건의 경우 일산 서부경찰서가 수사해 넘긴 계곡 살인 사건과 8억 보험금을 가로채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에 대해서만 검찰이 직접 보완 수사를 하거나 경찰에 보완 수사를 요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은해가 복어 피를 이용해 피해자 살해를 시도했던 사건, 용인 낚시터에 밀어뜨려 살해를 시도했던 사건은 중재안대로라면 수사를 시작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검사는 “두 살인미수 범행이 입증되면 계곡 살인 사건의 범행이 입증될 가능성도 커지고, 보험금 8억원을 가로채려던 범행까지 입증할 수 있는 구조”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살인미수 범행을 입증하지 못하면 이씨 등이 영리하고 교묘하게 저지른 살인 범행을 규명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검사는 “중재안에 따라 동일하고 단일한 사건에 대해서만 수사가 가능해진다면 복어 독 살인미수, 낚시터 살인미수는 계곡 살인 사건과 범행 내용, 일시, 장소, 수법이 크게 달라 수사 개시조차 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검사 눈앞에 이씨와 조현수의 또 다른 살인미수 범죄가 명백히 보이는데도 칼을 꺼내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면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지 않을까”라며 “중재안에 따르면 이들의 영악한 범죄 의도와 사건의 실체는 영원히 묻혔을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박 검사는 “중재안이 그대로 통과된다면 억울한 죽음과 같은 피해를 제대로 밝힐 수 없을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정의의 관념이 파괴돼 사적 보복만 난무하는 무법 시대가 될 것”이라며 “박 국회의장께서는 입법폭주를 멈추시고, 취약한 국민을 보다 더 잘 지킬 수 있는 개선 방안을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을 들어 찾아주시길 간청드린다”며 글을 마무리했다.
검찰은 중재안의 ‘단일성·동일성’을 문제 삼고 있다. 보이스피싱이나 다단계 사기 등에서 공범이나 추가 피해를 밝혀내는 수사를 할 수 없게 돼 서민에게 피해가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