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만에 한강 피크닉…들어봤나요? ‘돗자리 웨이팅’

입력 2022-04-23 00:01
많은 시민들이 20일 여의도 한강공원을 찾아 봄을 누리고 있다. 이한형 기자

봄바람 살랑이는 이 계절에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그것, 바로 ‘피크닉’이다. 햇볕 따뜻해지는 이맘때, 돗자리 하나씩 들고 근처 공원에 가서 즐기는 여유로운 시간은 단연 봄이 선사한 묘미다.

올해는 공원을 찾는 시민들의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코로나19 방역 조치가 완화돼 피크닉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 완연한 봄 날씨를 자랑하는 4월의 어느 날 오후, 국민일보 인턴기자 두 명이 봄기운을 느끼러 여의도 한강 공원으로 나가봤다. 21일 한강 공원엔 평일 낮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저마다 옹기종기 자리를 잡고 모여 앉아 있었다.

단체로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는 학생들, 소녀 시절로 돌아간 듯 하하 호호 웃음 짓는 어머니들, 알콩달콩한 커플과 우정을 나누는 친구들까지. 한강 공원의 분위기는 저마다 사람들이 뿜어내는 에너지 덕분에 ‘활기’ 그 자체였다.

“제주에서 왔어요”…사회적 거리두기 풀리자 한강 피크닉 소원성취

동창 친구들과 인천에서부터 한강을 보기 위해 온 시민들. 김민영 인턴기자

‘한강 피크닉 로망’은 남녀노소, 지역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있는 것인가 보다. 전국 곳곳에서 한강 공원을 찾는 발걸음이 이어졌다. 제주도에 사는 자매 송혜민(21), 혜원씨(22)는 이날 드디어 꿈꿔왔던 한강 피크닉 로망을 이뤘다. 언니 혜원씨는 “성인이 되자마자 코로나가 터져 아주 답답했다”며 “이제야 자유롭게 외출할 수도 있어 해방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한강 공원은 난생처음이라는 70대 노부부도 만났다. 인천에서 왔다는 이들은 집에서 반찬통에 정성껏 준비해 온 과일을 나눠 먹으며 잔잔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편 A씨는 “코로나도 이제는 좀 괜찮아진 것 같고, 한강이 유명하다니까 한 번 와봤다”고 운을 떼더니 “내 평생 처음 나온 소풍”이라며 빙그레 미소지었다.

인천에서 온 60대 할머니 그룹은 누구보다 명랑한 소녀 같아 보였다. 이들은 한강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눴다. “우리는 동창들인데 코로나 거리두기도 많이 풀리고 해서 모처럼 나왔다”며 “처음 온 한강이 아주 좋다”며 즐거워했다.

대부분 거리두기가 해제된 후 오랜만에 공원을 찾은 이들이었다. 한강에서 생일 파티를 하던 이혜린씨(31)는 예쁜 체크무늬의 돗자리까지 준비하는 등 ‘소풍 마니아’의 면모를 보였다. 이씨는 “한강에 자주 왔는데 지난 2년간은 한강에서 마스크 벗고 술 마시는 사람들도 있고 해서 한강에 나오기가 꺼려졌다”면서 “이제는 백신도 맞고, 정부에서 방역 조치도 완화해 나들이 나오는 데 부담이 줄었다”고 말했다.

반려견 호두와 함께 나온 정민준씨(35)도 오랜만에 한강 공원을 찾았다면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니까 강아지랑 나들이 나오기도 훨씬 편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정씨처럼 반려동물과 함께 피크닉을 즐기는 이들도 여럿 보였다.

발걸음을 옮기자 이른 오후임에도 정장을 입고 온 일행이 보였다. 한 달에 한 번, 오전 근무만 하는 날인 ‘해피 프라이데이’를 맞아 직장 동료끼리 소풍 나왔다는 이정훈씨(31) 일행이었다. 이씨는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 한다”며 “언제 또 방역수칙이 강화될지 모르고, 금세 더워질 것 같아 타이밍 맞춰 나왔다”고 했다. 황금 같은 피크닉 시기를 행여 코로나로, 더운 날씨로 놓칠까 발걸음을 재촉했다는 얘기다.

한강에서 만난 시민들은 코로나로 인한 불안감보다는 거리두기 해제 이후 되찾은 일상에서의 해방감을 만끽하는 모습이었다.

붐비는 공원, 모처럼 ‘함박웃음’ 짓는 상인들

상춘객들이 돗자리를 피고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있다. 이예솔 인턴기자

한강 공원에서 봄을 즐기려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바로 ‘돗자리’다. 인턴기자들도 피크닉 필수품을 구하기 위해 공원 내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 근처에는 치킨집을 비롯해 각종 먹거리 노점상과 돗자리 대여소가 즐비했다. 공원 입구에 마련된 배달존에는 배달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시민들이 줄지어 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전면 해제로 상인들은 조금씩 기지개를 켜는 분위기다. 몇 년간 이곳에서 돗자리를 대여하고 있다는 A씨는 “코로나가 한창일 때 찾아오는 사람 수가 100이라고 치면 요즘은 200, 250까지 온다”며 “주말에는 돗자리가 없어서 못 한다”며 활짝 웃음을 지어 보였다. 벚꽃 축제가 있는 4월부터 5월까지가 가장 바쁜 시기라고 한다. A씨는 “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사람들이 많이 안 온다”며 “지난해 봄, 여름보다 사람들이 두 배 이상 찾아온다”고 전했다.

한강 내 상점 상인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여의도 공원에서 음식을 팔고 있는 상인은 “코로나 이후 확실히 손님들이 많이 늘었다”며 “날씨가 좀 더 풀리면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샤넬만 웨이팅 하나? 나무 그늘 노린 ‘돗자리 웨이팅’

붐비는 여의도 한강공원. 이예솔 인턴기자

돗자리를 손에 들고 잔디가 넓게 펼쳐진 피크닉존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을 피하기 위해 그늘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그늘이 있는 나무 아래 자리를 찾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 사람들이 하나같이 약속이라도 한 듯 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늘을 찾아 한참 헤매다 결국 ‘웨이팅’을 하기로 했다.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저마다 돗자리와 음식을 손에 들고 하염없이 공원을 돌았다. 그러다 나무 그늘에서 자리를 정리하고 떠나려는 사람들이 보이면 여기저기서 돗자리를 손에 쥔 사람들이 ‘눈치싸움’을 시작했다. 15분을 헤매고 기다린 끝에 비로소 나무 그늘에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코로나 거리두기와 인원 제한 해제가 몸으로 체감되는 순간이었다.

경기도에서 한강 공원을 찾아왔다는 황모씨(23)는 “오늘은 그래도 자리가 널널한 편”이라며 “주말에는 자리도 없을뿐더러 사람들도 따닥따닥 붙어 있어 복잡하다”고 귀띔했다.

잠깐 여유를 즐기고 일어나려 하자 어김없이 나무 그늘 자리를 사수하기 위해 기다렸던 이들이 다가왔다. 돗자리를 접고, 짐을 다 챙길 무렵 그들은 혹여나 자리를 놓칠라 잽싸게 돗자리를 폈다. 그들에게 여유롭고 행복한 한강에서의 시간을 바통 터치하는 듯 자리를 넘겼다.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 푸르른 자연, 그리고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을 뒤로하고 다시 여의도 도심으로 들어갔다. 코로나로 2년간 멈췄던 일상이 유유히 흐르는 저 강물처럼 서서히 다시 흐르길 바라는 마음과 함께.

이예솔 인턴기자
김민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