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특급] 우주에 다녀온 치킨, 그 맛은 어떻냐고요?

입력 2022-04-23 00:02 수정 2022-04-23 00:02
21일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과학 공학 콘텐츠 제작사 '긱블' 본사에서 메이커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 위 부터 김우재 , 류시욱, 이수용, 임수미, 오은석, 김남오. 이한형 기자.

“뜨거운 스토브에 손을 대고 있으면 1분이 1시간처럼 느껴진다. 아름다운 여성과 함께 공원 벤치에 앉아있으면 1시간이 1분처럼 느껴진다. 그것이 바로 상대성이론이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의 유쾌한 편지함 中>

천재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 그의 이름에 항상 따라붙는 수식어는 ‘괴짜’다. 그의 등장 이후 괴짜라는 단어는 야단칠 때가 아니라 칭찬할 때 쓰는 말이 됐다. 학교에서 말 안 듣고 말썽부리는 학생이 아니라, 창의력이 샘솟는 꼬마 발명가에게 훈장처럼 수여하는 상징적인 단어로 바뀌었다. 자녀가 괴짜 소리를 들으면, 부모들은 내심 이런 기대도 해본다. ‘우리 꼬맹이, 이러다 아인슈타인 같은 과학자가 되겠는걸?’

최근 ‘괴짜들의 소굴’이라 불리며 유튜브에 혜성처럼 등장한 랩(lab)이 있다. 공대생들이 모여 만든 과학·공학 콘텐츠 제작소 ‘긱블’이다. 긱블의 마크는 민트색 ‘U’자다. 아인슈타인이 혀를 내밀고 짓궂게 웃는 사진에서 그의 혀 모양을 따왔다. 긱블은 ‘쓸모없는 작품만 만든다’는 구호를 내걸고 ‘쓸모있는 물건은 이마트에서 찾으시라’고 충고까지 한다. 이것만 봐도 가히 괴짜 타이틀을 목에 걸어줄 재목들로 보인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달라고 하자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상대성이론 잘 몰라요. 그거 몰라도 ‘뚝딱’ 물건 만드는 데 아무 지장 없던데요? 그래서 말하고 싶어요. 잘 몰라도 누구나 메이킹(Making)을 할 수 있다는 걸, 누구나 메이커(Maker)가 될 수 있다는 걸.” 다른 대답도 있다. “이곳의 중력은 다른 곳보다 세서 시간이 4배는 빨리 흘러요. 이게 긱블의 상대성이론이죠.”

긱블 유튜브 채널 화면. 메이커가 프링글스 쉽게 꺼내는 기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누구나 만들 수 있다’는 긱블의 세계관 위에서 탄생한 콘텐츠가 전 세계를 홀리는 중이다. 이들이 직접 만든 ‘프링글스 쉽게 꺼내는 기구’ ‘알라딘 마법의 양탄자’ ‘음악에 맞춰 윗몸일으키기 하는 새우 스피커’ ‘우주에 다녀온 치킨’ ‘수박도 자르는 A4용지’ ‘축제에서 인싸되는 겨땀 물총 머신’ 등 세상에 없던 기발한 물건들은 지난 2017년 탄생한 긱블의 구독자를 88만명까지 끌어올렸다.

지난 21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있는 긱블의 랩을 찾았다. 아기자기한 예쁜 카페들 사이에 속이 들여다보이는 공장 같은 건물 하나가 우두커니 서 있다. 유리로 된 건물 1층은 온갖 작업복과 공구로 가득해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성수동에서 가장 뜨거운 곳, 긱블의 랩에서 괴짜들의 이야기를 듣고 왔다.

대체 치킨은 우주로 ‘왜’ 보냈어요?
21일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과학 공학 콘텐츠 제작사 '긱블' 본사에서 메이커 류시욱 씨가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한형 기자.

긱블에서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을 모두 ‘메이커’라고 부른다. 메이커들이 만드는 작품들에는 ‘와, 저런 걸 어떻게 생각하지?’라는 감탄이 따라오곤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우주로 날려 보낸 치킨이다. 치킨을 먹으면서 흔히 하는 ‘맛있다’ ‘바삭하다’ ‘기름지다’ 이런 생각을 넘어 ‘이렇게 맛있는 치킨이 우주에 다녀오면 어떤 맛일까’라는 호기심이 해당 영상을 찍도록 만들었다.

정작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키쿠(본명 류시욱)는 덤덤했다. 그는 “그냥 일상에서 평범하게 주고받던 대화가 작품의 소재가 됐다. 바삭한 치킨을 먹으면서 했던 생각이 우주까지 흐르고 흘러간 것”이라면서 “이 랩에 있는 모든 작품이 이렇게 탄생했다”고 말했다.

긱블 유튜브 채널 화면.

그렇다면 치킨을 어떻게 우주로 보냈을까. 키쿠는 “쉽게 설명하자면, 엄청나게 큰 헬륨 풍선에 인공위성 모양 치킨 박스와 카메라를 묶어 올려보냈다. 헬륨이 공기보다 가벼워서 잘 뜨는데 일정 높이 이상 올라가면 터지기 때문에 특정 높이에서 치킨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게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성층권인 1만 4103m까지 다녀왔다. 우리나라 상층 대기는 편서풍이 주로 불기 때문에 동쪽으로 날아가리라 생각했고, 미리 넣어뒀던 GPS를 추적해 치킨을 회수해 먹었다. 엄청 맛있었다”며 웃었다.

다른 메이커들도 무엇을 만들겠다는 구체적 목표를 설정하지 않고, 일상의 생각에서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입을 모았다. 유일한 여성 메이커 숨숨(본명 임수미)은 “사내에 굉장히 좋은 말이 있다. ‘잡담이 경쟁력이다’라는 말이다. 서로 콘텐츠 기획서를 쓰다가 막히면 그냥 수다를 떤다. 그러다 보면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수드래곤(본명 이수용)은 “우리 존재 자체가 딱 정의되지 않는 것처럼 무엇을 만들어야겠다고 정해두지 않는다. 자유롭게 상상을 펼치다 보면 그런 것들이 항상 홈런을 터뜨리는 것”이라고 했다. 잭키(본명 오은석)는 자신의 취미 그 자체가 아이디어라고 언급했다. 그는 “제 유튜브로 딱 들어가면 기계, 엔진, 자동차 영상들이 쫙 뜬다. 이런 주제 영상만 보고 또 이게 너무 즐거워서 보는 거니까 항상 24시간 자연스럽게 공학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21일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과학 공학 콘텐츠 제작사 '긱블' 본사에서 메이커 김우재 씨가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한형 기자.

자타공인 헬스매니아인 시안(본명 김우재)은 “헬스를 하면서 아이디어를 얻은 적도 많다. 자세히 보면 헬스 기구들은 굉장히 공학적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라면서 “현재 긱블에서 3D프린터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 몇몇 키트 제품들도 헬스장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안은 주로 고객에게 판매하는 키트를 제작하는 메이커다. 그가 만든 키트 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브레이크 피젯 스피너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동차 브레이크의 원리를 스피너에 넣었다. 스피너를 돌리다가 원하는 때에 ‘탁’ 멈출 수 있게 한 것이다. 얼마 전 스피너 열풍이 불었을 때 그의 스피너는 ‘잇템’으로 인기를 끌었다.

모든 작품, 각 분야 덕후의 ‘콜라보’…대체 불가능
긱블 유튜브 채널 화면. 메이커들이 새우 스피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긱블 작품들은 메이커 여러 명이 협업하는 경우가 많다. ‘음악에 맞춰 윗몸일으키기 하는 인공지능 새우 스피커’ 작품이 대표적이다. 설계 담당, 외관 담당, 내부 전자 회로 담당 등 키쿠, 숨숨, 재키 3명의 메이커가 각자의 역할을 맡아 작품을 제작했다.

작품 속 새우는 ‘너는 북먹이니, 찍먹이니’ ‘오늘의 날씨는 어떻니’ ‘오늘 저녁 메뉴는 뭐가 좋을까’ 등 기상천외한 질문에 모두 대답하는가 하면 노래에 맞춰 윗몸일으키기도 한다. ‘노래해줘’ 요청에 “짜파구리 마요네즈 케첩에 맛도 좋아~” 밈에서 유행하는 노래가 바로 흘러나온다. 일명 ‘병맛’ 취향에 제대로 저격당한 구독자들은 해당 스피커를 구하고 싶다며 정식 판매를 요구하고 있다.

21일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과학 공학 콘텐츠 제작사 '긱블' 본사에서 메이커 임수미 씨가 작업을 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긱블 내 유일한 미대 출신인 숨숨은 “새우 껍데기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여러 가지 재료들을 많이 사용했고, 재료를 도색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도전이 많았기 때문에 기억에 많이 남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키쿠는 “공대 출신 메이커들이 99%까지 설계, 제작을 해도 1%의 외관 완성이 모자라면 100%가 될 수 없다”며 숨숨의 역할을 강조했다.

각 분야의 덕후가 모여 작품을 만들다 보니 누구 하나 대체 가능한 존재가 없다. 수드래곤은 “저희 메이커 중 누구 하나 대체될 수 있는 분이 없다. 그래서 긱블 메이커는 절대 아프면 안 된다”고 했다. 숨숨도 “일반 회사는 내가 빠져도 (나를) 대신할 사람이 언제든 있기 때문에 주체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내가 모든 것을 주도하기 때문에 구성원 개개인의 힘이 매우 세다”고 말했다.

21일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과학 공학 콘텐츠 제작사 '긱블' 본사에서 메이커 오은석 씨가 '구슬멍'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한형 기자.

물론 웃음이 나오는 작품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공학에 진심인 공대생들의 진가가 발휘되는 작품도 다수다. 잭키의 ‘무한 동력 구슬멍’ 작품은 에너지 보존 법칙을 이용한 성인용 장난감이다. 이 작품은 미끄러지듯 내려오는 구슬이 다시 위로 올라가 끊임없이 회전한다. 멍하니 불을 바라보는 불멍처럼 아무 생각 없이 구슬의 움직임을 쳐다보게 된다는 의미에서 ‘구슬멍’이란 이름이 붙었다.

잭키는 “에너지가 떨어지면 구슬은 더 돌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 모터를 설치해 구슬이 가속해서 튀어 오르도록 했다. 이 가속의 정도를 미세하게 조절해서 적절한 위치에 착지하게 해주면 무한 동력은 아니지만 무한 동력인 것처럼 도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슬멍 작품은 제작 영상 조회수만 760만회를 기록했고, 키트 제품으로 출시된다는 소식이 알려지지 약 42억개의 선주문이 들어오기도 했다. 긱블은 인당 제한 갯수를 설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들어온 선주문에 구독자들의 허위 주문이 포함된 것으로 판단하고, 재주문을 받았다. 이때 팔린 구슬멍은 총 5000개, 약 2억원어치다.

곽윤기와 인연…‘괴짜’는 서로 알아본다?
긱블 유튜브 채널 화면.

입소문을 타고 해외 괴짜들에게도 알려진 긱블이 유명세를 치르게 된 계기는 쇼트트랙 국가대표 곽윤기 선수의 ‘자체발광 LED 안경’이다. 곽 선수가 베이징 올림픽을 마치고 공항에 입국할 때 썼던 안경은 긱블의 작품으로 정밀한 회로 작업이 관건이었다. 당시 작품은 전자 회로 쪽에 전문성을 가진 메이커 민바크(본명 김민백)가 제작했다.

수드래곤은 “곽 선수가 올림픽으로 유명해지기 전부터 긱블과 소통을 자주 했다. 곽 선수도 워낙 괴짜 콘텐츠를 좋아해서 저희 작품을 따라 만들기도 했고, 메이커들과 막 친해지고 있던 중이었다”면서 “공항에 마중을 나갔는데 긱블을 기억하고 우리가 건넸던 안경을 쓴 채 언론 사진을 찍으셨다. 안경을 쓴 첫마디는 ‘앞이 안 보이는데요?’였다”면서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21일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과학 공학 콘텐츠 제작사 '긱블' 본사에서 메이커들이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괴짜들은 이렇게 서로를 알아보고 모이는 것일까. 긱블에 모인 메이커들은 하나같이 지금, 이 순간 공학을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동시에 자신들이 미쳐 있는 공학과 이에 대한 즐거움을 사람들에게 최대한 널리 알리고 싶다는 공동의 꿈을 갖고 있었다. 키쿠는 “긱블 팬 중에는 부모님 손을 잡고 오는 10대도 많다. 이런 학생들이 내 작품을 보고 즐거워하고, 제작 과정을 신기해하는 것을 볼 때면 공학에 대한 호기심을 더 충족시켜 줘야겠다는 사명감 같은 것이 든다”고 말했다.

잭키는 “학교는 지식을 통해 서로 경쟁해서 순위를 매기는 공간이다. 저는 기계공학을 너무 좋아하지만 전공으로 기계공학을 공부하다가 자퇴했다. 그리고 긱블에서 순위 없이 지식을 얻는 즐거움을 누리게 된 것이다. 저의 가장 큰 모순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이 행복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네모난 구멍이 있을 때 그 구멍에 내가 설계해 만든 블록이 딱 들어가서 면이 만들어지는 그 희열이 너무 좋다. 사람들은 저를 보고 ‘설계 변태’라고 하는데 이런 것을 만드는 즐거움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수드래곤은 사람들이 공학을 눈에 보이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마법처럼 여기고 있다며, 그런 생각의 벽을 허물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컴퓨터는 너무 잘 쓰고 있지만 이 기계 안에 있는 원리를 사람들은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고층 건물에서 편안한 삶을 누리지만 그 배경에 있는 건축 공학은 알 수 없는 신비함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이런 것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즐거움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나경연 기자 contest@kmib.co.kr
서민철 인턴기자
황서량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