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늦은 시각 딸의 생일상을 준비하다 잠이 들어 불을 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50대 여성에게 법원이 벌금형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불길로 인해 탈출이 늦었던 이 여성의 딸은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대구지법 형사3단독 김지나 부장판사는 실화·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A씨(54)에게 벌금 500만원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고 21일 밝혔다. 함께 기소된 경비원 B씨(63)는 금고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A씨는 2020년 11월 7일 오전 1시40분쯤 25살 생일을 맞은 딸의 생일상을 차려주기 위해 주방에서 소갈비찜 요리를 압력밥솥에 넣어 불 위에 올려놓고 거실 소파에서 잠시 쉬다가 잠이 든 것으로 전해졌다. 약 2시간 후 압력밥솥 안의 소갈비찜이 모두 타고, 불길이 주방 벽면 등으로 옮겨 붙었고 A씨의 딸은 불길 때문에 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 딸은 뒤늦게 구조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졌다.
불은 A씨 집과 아파트 복도, 공용 엘리베이터 등을 태우고 진화됐으나 이로 인해 수억원의 재산피해가 났다. 같은 동에 거주하던 주민이 대피하다 골절상을 입거나 연기 흡입으로 다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비원 B씨는 화재 직후 화재경보기가 울렸지만, 이를 오작동으로 생각해 경보기를 강제종료해 주민들이 즉각 대피하지 못하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김 부장판사는 “A씨는 자신의 실수로 딸이 꽃다운 청춘에 생을 마감한 것에 대해 끝없이 자책하면서 평생 비통하고 애절한 아픔을 떨치지 못하는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한다”면서 “피해를 본 주민 모두 피고인의 비극을 안타까워하며 처벌은 원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화재보험을 통해 적절한 피해보상이 이뤄진 점, 화재경보기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참혹한 결과를 피할 수 있었던 점을 종합해 A씨의 형량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B씨에 대해선 “업무상 과실로 참혹한 결과를 피하지 못한 점에서 죄책이 중하지만 피해자 유족이 극심한 슬픔을 딛고 용서의 뜻을 표한 점, 주민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경비원 직무를 성실히 수행해 온 점 등을 종합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박성영 기자 ps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