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인 전개, 숨 막히는 긴장감, 반전 등이 꼭 드라마의 ‘성공 공식’은 아니다. 인물의 감정선을 충분히 곱씹을 수 있는 여백을 담은 ‘슬로우 드라마’가 최근 시청자의 눈길을 끌고 있다. 이러한 드라마는 캐릭터의 내면적 갈등과 변화에 집중하고, 인물이 성장하는 모습을 통해 시청자도 위로받게끔 한다.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무료함을 느끼며 불행한 인생에서 ‘해방’되기를 바라는 삼남매의 이야기를 다뤘다. 계획 없는 삶을 사는 염창희(이민기), 무채색 인생에서 쳇바퀴 같은 삶을 사는 염미정(김지원), 사랑이 절실한 염기정(이엘)이 등장한다.
이들은 딱히 특별한 역경이 있는 건 아닌데 행복하지 않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반복되는 삶, ‘경기도민’으로 대변되는 ‘주변인’으로서 소외된 삶에 염증을 느낀다. “해방되고 싶어요. 어디에 갇혔는지는 모르겠는데 꼭 갇힌 것 같아요.”라는 미정의 대사가 의미 없는 일상을 반복하는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나의 아저씨’의 박해영 작가가 집필한 이 작품은 일반적인 드라마의 공식을 깬다. 일반적으로 드라마 주인공은 항상 우연과 필연이 겹치고,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있다. 하지만 이 삼남매는 권태로운 삶을 사는 우리들의 모습과 닮았다. 남자 주인공인 구씨는 대사가 거의 없다.
노희경 작가가 극본을 집필한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는 옴니버스 방식의 힐링 드라마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휴머니즘적인 내용을 다룬다. 한수(차승원)는 은행지점장이지만 골프선수를 꿈꾸는 딸을 돕느라 경제적으로 허덕인다. 지독한 가난이 싫었던 은희(이정은)는 드디어 자수성가했지만 여전히 행복하지 않다.
이들을 치유하는 건 우정과 친구의 응원이었다. 은희는 고교 시절 첫사랑이던 한수가 돈을 빌리기 위해 자신에게 접근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친구라는 이유로 큰돈을 빌려준다. 한수는 끝내 그 돈을 받지 못한다. 한수는 “이번 제주여행은 진짜 남는 장사였다. 옛날 친구들을 다시 만났으니.”라고 말한다.
두 작품 모두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으나 성적표는 다소 갈린다. ‘나의 해방일지’는 지난 17일 방영된 4회의 시청률이 2.3%였다. 2회에 최고 시청률(3.0%)을 기록한 후 하락했다. 반면 ‘우리들의 블루스’는 입소문을 타고 시청률이 상승해 17일 방영된 4회에 시청률 9.2%를 달성했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수많은 드라마 속에서 자기 목소리가 뚜렷한 작품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봤다. 그는 “‘우리들의 블루스’는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그림을 다루고 있으며, 각자 인생에서 겪는 문제는 다르지만 이들이 버틸 힘은 우정, 인간적인 위로라는 메시지가 관통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나의 해방일지’에 대해 그는 “매일 복권을 사서 희망을 품고, 원하지도 않는 사내 동호회를 하며 ‘가짜 행복’에 익숙해지는 현상을 꼬집고, 가짜행복을 만드는 시스템에서 해방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며 “작품성이 뛰어나지만 기존 드라마와 많이 달라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