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검수완박’ 되면 정인이도, N번방도 묻힌다”

입력 2022-04-20 19:53
김지용 대검 형사부장이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기자실에서 진행된 검찰 보완수사 폐지 문제점에 대한 기자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처리 강행 수순을 밟고 있는 가운데 검찰은 검찰의 직접 수사권이 없었다면 묻힐 수도 있었던 사건들을 앞세워 여론에 호소했다. 검찰은 사회적 공분을 샀던 ‘정인이 사건’이나 ‘N번방 사건’ 등 검찰의 보완 수사로 새롭게 범죄 사실이 드러난 사건들을 언급하며 검찰의 직접 수사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경찰의 수사권 남용에 대한 견제 장치가 사라져 경찰의 인권침해 등을 막을 수 없다는 점도 우려했다. 검찰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이춘재 화성연쇄살인 사건을 예로 들며 ‘검수완박’ 법안이 통과될 경우 이 사건들도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 수사 없었으면…정인이 계모도, N번방 조주빈도 중형 피했을 것

대검찰청 형사부(부장 김지용 검사장)는 20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검찰의 보완 수사, 재수사 사례 22건을 소개하며 민주당의 ‘검수완박’ 법안이 원안대로 통과되면 앞으로 이런 수사 성공사례는 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찰의 초동 수사가 부실했다고 질타를 받았던 정인이 사례가 대표적이라고 검찰은 주장했다. 당초 경찰은 정인이 계모를 ‘아동학대 치사죄’로 검찰에 넘겼다. 하지만 검찰은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 복부 손상 감정 등 추가 수사를 통해 ‘살인죄’를 적용, 정인이 계모가 2심에서 징역 35년의 중형을 선고받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2020년 3월 25일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기 전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N번방 사건 또한 성착취물 제작·유포 범죄를 넘어 범죄 집단을 통한 조직범죄임을 파악하고 범죄 조직·가입·활동죄도 밝혀냈다고 설명했다. 2016년 무학산 살인 사건 당시 경찰이 약초꾼을 범인으로 특정했지만, 검찰의 보완 수사로 진범을 밝혀낸 사례도 언급했다.

그 외에 상해치사로 끝날 뻔했던 거제 묻지마 살인 사건, 동거녀 납치·감금·성폭행으로 경찰이 구속했던 남성이 검찰 수사로 무고함을 확인하고 풀려난 사건 등도 함께 소개했다.

대검은 “경찰에서 넘어온 사건에 대한 검사의 역할은 보완수사를 통해 경찰의 과잉 수사는 없었는지, 부실수사로 피해자의 구제가 미흡한 것은 아닌지 밝히는 것”이라며 “경찰에서 넘어온 사건의 당사자들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나 서민”이라고 강조했다.

대검은 지난해 기준, 경찰에서 넘어온 사건의 30%는 검찰의 보완 수사를 거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최근 2년 동안 경찰이 기소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검찰에 넘긴 사건 중 20%는 검찰의 보완 수사를 거쳐 불기소 처분됐다고 덧붙였다.

경찰권 남용 우려…제2의 박종철·윤성여 나와도 견제 못해

김지용 대검 형사부장이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기자실에서 진행된 검찰 보완수사 폐지 문제점에 대한 기자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대검은 민주당의 ‘검수완박’ 법안이 통과되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같은 사례가 반복돼도 견제할 방법이 없다는 주장도 폈다.

1987년 당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다 사망한 서울대생 박종철에 대해 경찰은 단순 쇼크사로 발표했다. 이에 검사의 시신보존 명령과 부검 지휘를 통해 부검의 증언 등으로 고문을 받아 사망한 사실이 드러났다. 대검은 “민주당 법안에 따르면 검사의 직접 부검과 부검 지휘가 불가해진다”고 우려했다.

30년 만에 진범이 잡힌 화성연쇄살인사건도 예로 들었다. 누명을 썼던 윤성여씨는 2019년 재심을 청구하면서 경찰이 아닌 검찰이 사건을 직접 수사해달라는 수사촉구 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다. 당시 경찰의 구타, 물고문 등 가혹행위에 대한 진상규명도 요청했다. 대검은 “‘검수완박’ 법안이 시행되면 검사가 직접 수사에 착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대검은 “민주당의 ‘검수완박’ 법안에 의하면 경찰은 행정·사법·치안·정보권을 독점하고, 특히 사법경찰의 경우 검사의 지휘·통제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모든 범죄에 대한 수사가 가능하다”며 “위법·부당한 경찰 수사에 대한 통제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거듭 비판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