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렇게 살아서 법정 안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다.”
중증 발달장애가 있는 20대 딸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친모 A씨(54)는 20일 법원 결심공판에서 이 같이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A씨는 “딸에게 사과하고 싶다. 그(범행) 순간 제 몸에서 악마가 살아있는 것 같았다”며 “어떠한 죄를 물어도 달게 받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제 딸과 같이 가려고 했다”며 “제가 죄인”이라고 흐느꼈다.
A씨는 지난달 2일 오전 3시쯤 시흥시 신천동 집에서 중증 발달장애인인 20대 딸을 질식해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그는 다음날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경찰에 “내가 딸을 죽였다”며 직접 신고했다.
중증 장애가 있는 딸을 돌봐온 A씨는 말기 갑상선암 환자인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과거 남편과 이혼하고 딸과 단둘이 살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거동이 불편해 별다른 경제활동을 하지 못했고 기초생활수급비와 딸의 장애인 수당, 딸이 가끔 아르바이트로 벌어오는 돈으로 생활을 유지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집에 ‘다음 생에는 좋은 부모를 만나거라’라는 내용이 담긴 유서를 남겼던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수원지법 안산지원 형사1부(재판장 김영민) 심리로 열린 A씨의 살인 혐의 공판에서 징역 10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우울증과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자신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한 점은 참작 사유이지만 무고한 피해자를 살해한 것은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A씨에 대한 선고 재판은 다음 달 20일 열린다.
“발달장애 자녀 돌봄, 국가가 책임져야”
발달장애 자녀가 있는 가족의 비극은 A씨의 사례 뿐만이 아니다.
지난달에는 발달 장애가 있는 8살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 아들을 살해한 40대 여성 B씨가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B씨는 지난달 2일 오전 4시50분쯤 수원시 장안구 주거지에서 잠자고 있는 아들을 질식시켜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미혼모인 B씨는 반지하 월세방에서 홀로 아들을 키우면서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아 생활해왔다. 아들은 숨진 당일 초등학교에 입학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B씨는 다운증후군을 겪는 아들 양육에 대한 부담감에 범행을 저지르고 자신도 극단적 선택을 하려 한 것으로 조사됐다.
B씨는 아들의 장애 등을 이유로 초등학교 입학을 미뤄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B씨는 지난 6일 열린 첫 공판에서 혐의를 인정했고 재판 내내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흘렸다.
발달장애 자녀에 대한 돌봄 체계가 미흡해 비극적인 사건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 2020년 8월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저는 예비 살인자입니다. 부디 중증 발달장애인에 대한 돌봄 대책을 마련해주세요’라는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청원인은 이 글에서 자신을 2000년생 발달장애인을 아들로 두고 있는 50대 가장이라고 소개하면서 “애 엄마와 저는 몸에 깨물리거나 얻어맞은 상처가 많고, 괴성에 난리를 하도 피워서 큰 애가 집에 있을 때는 중학교 2학년인 작은 애는 제 방문을 걸어 잠그고 감히 나오지도 못한다”라고 호소했다.
청원인은 “평일에 엄마 혼자 애를 돌보는데 상상을 초월할 만큼 힘들다. 정말 억울한 것은, 왜 정말 국가의 도움이 절실한 저희 같은 발달장애 가족에게 국가에서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느냐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제발 중증 발달장애인을 돌보는 시설을 만들어 주세요. 돈은 내라는 대로 내겠습니다. 하루 종일 안 봐줘도 좋습니다. 숨 쉴 시간을 만들어 주세요”라고 호소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19~20일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요구하는 결의대회를 열고 “지원서비스 및 정책의 부족으로 인해서 부모가 발달장애 자녀를 살해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사건이 매년 수차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결의대회에 참석해 단체 삭발식에 동참하기도 했다.
윤종술 부모연대 회장은 “하루가 멀다 하고 동반자살하는 우리 가족들의 현실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며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최소한 낮시간 만이라도 지원 체계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한다”며 “더 이상 장애인 가족에게 발달 장애, 중증장애 가족들에게 아픔이 대물림되지 않도록 국정 과제로 만들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