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탈출 지능순’이 현실” 경찰관, 검수완박 반대 글

입력 2022-04-20 04:35 수정 2022-04-20 09:57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캡처

현직 경찰관이라고 밝힌 누리꾼이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대해 “검수완박을 누구보다 반대하는 이는 경찰들”이라고 주장했다.

18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는 ‘경찰직장인협의회’에서 검수완박에 찬성 성명을 낸 데 대한 일선 경찰의 생각을 묻는 글이 올라왔다. 블라인드는 직장 이메일 인증을 거쳐야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다.

스스로를 현직 경찰관이라고 밝힌 A씨는 이 글에 “이미 수사권 조정 이후 업무는 그대로인데 불필요한 절차가 너무 많아져 업무 과중으로 수사 지연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댓글을 달았다.

그는 “수사관 한 명당 자기 사건 50~200건씩을 달고 있고, 수사 부서에서는 (경찰관들이) 순번을 정해서 탈출할 정도로 수사 기피가 심각해 경찰 수사조직은 붕괴하기 직전이다”라고 적나라하게 내부 사정을 언급했다.

A씨는 “수사 베테랑들은 도저히 못 해 먹겠다고 타 부서로 다 도망가고 있고, 수사관들 사이에 ‘수사 탈출은 지능 순’이라는 말을 달고 사는 게 지금 수사부서의 현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사람들 성격이 급해서 1주일만 지나도 수사 진행 상황 독촉하고 난리 치는데 실상은 최소 50~200명이 대기 중이고, 1~2주는커녕 수사에 2~6개월씩 걸리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덧붙였다.

그는 “세상에 폭행 절도처럼 단순하고 영상 증거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건들만 있다면 검수완박을 하더라도 (경찰관) 인원 충원만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현실은 간단한 사건만 있는 게 아니다”며 “전문지식이 필요한 고도의 지능범, 민사와 얽혀 있는 사기꾼, 경제사범, 합법을 가장한 권력 유착형 범죄 등이 있다”고 했다.

이어 “이러한 사건들은 형법 민법 각종 법률이 다 얽혀 있어 이게 죄가 되는지 단순 민사인지도 애매하고 무슨 죄를 적용해야 하는지 변호사마다도 의견이 갈리는 굉장히 복잡하고 까다로운 범죄들이 존재한다”며 “TV에 피해자 수만명씩 나오는 고도의 지능형 사기 사건, 대장동 사태처럼 합법을 가장한 수천억원대 권력형 비리 등 온 나라를 뒤집는 범죄들이 이에 해당한다”고 부연했다.

그는 “변호사와 검판사들도 각자 자기 전문 분야가 따로 있고 전문 분야 사건만 맡을 정도로 법률이 복잡하다”며 “경찰은 채용 때 형사법만 배운 채 들어와 전문 분야의 영역은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언급했다.

또 “공판과 수사는 한 몸이기 때문에 공판에 참여하는 검사가 수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당연히 절차적 흠결이 생길 수 있는데 (검찰이) 직접 수사를 못 하면 대응이 느릴 수밖에 없다”며 “결국 그 절차적 흠결을 파고든 변호사들의 전성시대가 올 것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정말로 틀린 말이 아니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