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화 작<불가불가, 不可不可> (3.26~4.10 서울시극단)는 반세기가 되어가도 ‘계백의 칼자루’로 한국 사회의 권력과 정치 현실을 베어내는 풍자의 날카로움이 번득거린다. 이철희는 메타연극의 놀이성을 특유의 희극성으로 현재화 해 동시대의 환부(患部)를 찌르는 알레고리로 진지한 장난기가 발동된다. 황산벌 전투에 나서는 계백과 부인, 임진왜란 10만 양병설 논쟁, 병자호란, 고려 정중부의 무신의 난, 을사조약과 고종, 독립군과 부인 고문 장면을 재소환해 80년대 후반 한국 연극의 문제작으로 대명사가 된 1987년생 ‘불가불가’를 ‘아메리카노와 라떼’를 선호하는 ‘MZ세대’의 놀이성으로 ‘불가불가’를 들고 광화문을 비추고 오늘의 권력과 한국사회의 정치사(史)를 환기(喚起)해 내고 있다. 이현화 작가의 작품은 채윤일 연출로 공식화 되어 있다. 두 사람의 콜라보는 <산 씻김>(1982) <0,917>(1984), <카텐자>(1985), <누구세요>(1986) 등으로 이어지면서 채윤일 연출은 특정 장면에서 배우의 전라 장면으로 문제작과 논쟁을 이끌며 권력의 잔혹성을 드러냈고 희곡은 사실적 재현과 극적 환상을 거부하며 메타연극 형식으로 역사, 권력, 인간의 잔인한 폭력성 다루며 시대의 문제작들로 선보여 왔다. 이현화 작가 작품은 채윤일 연출 손을 떠나기 어렵다는 것이 정설(定說)처럼 굳어져 있고 무대에서의 두 콤비만큼 문제작으로 기록된 작품과 공연은 없었다.
작가는 희곡의 원형을 고수하기로 유명하고 각색과 희곡 텍스트 손질을 거부하는 작가다.
서울시극단 문삼화 연출은 80년대 후반 대표적인 작품 ‘불가불가’를 광화문 시대로 소환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작품을 공연하는 것 까지는 특별하지 않은데, 이철희 표 메타연극성을 묶어 이현화, 이철희의 ‘불가불가’로 소환하는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이 조합만으로도 화제가 되길 충분했고 ‘다시 보고 싶은 불가불가’의 기대감은 컸다. 이철희 만큼 진지한 풍자의 웃음을 만들어내는 연출도 드물고 역사의 진지한 비극성을 웃음으로 시대를 베어낼 수 있는 연출가다. 배우로 출발한 이철희는 <조치문 해문이>를 통해 희곡작가로 등단하고 이 작품을 연출, 작, 배우를 하면서 ‘햄릿’의 비극성을 웃음으로 다이어트 시켜내는 날카로운 가능성을 보였고 놀이로 돌진해 무대의 경계를 허물며 말의 세계 ‘에쿠우스’를 닭들의 이야기 ‘닭쿠우스’ 패러디로 전복 시켜내 이철희는 충청도식 연극의 특별한 장르를 개척했다. <조치원 새가 이르는 곳>을 통해서는 무게감이 있으면서도 현대적 희·비극의 경계를 무대로 배치하는 기발함으로 3부작을 통해 정점(頂點)을 보여주었다.
이철희의 <불가불가 不可不可>
<불가불가>는 역사적 사실성을 극중극 형식으로 배치하고 무대는 공연 연습이 진행되는 마지막 리허설이 진행 중인 극장이 무대가 된다. 연출은 극장 전체를 ‘불가불가’ 리허설 공간으로 개방하고 관객은 극장에서 이루어지는 연극 현장으로 견학온 것처럼 느껴진다. 관객들은 실제 역사적 사건을 바라보면서도 ‘연극 속 연극’으로 진행되는 극중극 장면에서 배우들이 역사적인 역할로 분해 장면을 사실적으로 연습하는 것을 바라보게 된다. 황산벌 전투, 임진왜란, 병자호란, 무신의 난, 을사조약, 독립군과 부인의 고문장면까지 연극의 최종 리허설을 위해 배우들은 동선 맞추기, 대사 연습, 소품 준비, 몸 풀기, 극 중 인물 되기 과정을 메타연극의 놀이의 행위로 바라보게 된다. 메타연극은 무대 공간에서 일어나는 극과 현실이 연극이라는 전제로 출발한다. 관객은 연극을 놀이로 바라보고 장면과 역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러한 개방적인 장면들과 무대에서 역사적 사건으로 재현되는 극중극 장면과 배우들의 행위를 연극 놀이로 인지하고 참여하게 되면서 연극 속 연극에 웃음을 터트리고 재미를 느끼면서도 굴욕스러운 역사의 환부(患部)가 비치고 아내 목을 치고 황산벌 전투에 출정하는 장면들이 반복적으로 병치될 때 관객은 희곡이 난해하게 느껴지면서 ‘어, 어, 무슨 말이지’ 하게 된다.
‘불가불가’는 연극으로 재현되는 극 중 극을 통해 80년대를 지나 2022시대의 한국 사회의 정치 현실을 풍자한다. 불멸의 고전을 이철희는 해체와 뒤집기보다는 원작의 결을 살려내는 원형을 유지한다. 원작 극 중 인물 악공들-합창단, 여배우–배우 14, 카메라 감독과 방송 피디-다중우주 유튜버, 연출-여자연출, 무대감독 정도 각색으로 변화를 주고 있다. 배우들의 커피 장면을 버라이어티한 뮤지컬 합창 장면으로, 여배우(독립군 부인)의 고문 장면은 “2009년 공연까지는 실제로 그렇게 공연했지만, 역사적 사실은 둘째 치고, 지금 우리가 여자를 매달아 놓고 고문을 했다가는 백프로 보이콧해. 관객들이”라는 연출 말에 이 장면은 독립군 남편으로 분한 배우 2(강신기 분)가 하면서 웃음으로 패러디하는 정도 변화를 주었다. 원작의 악공들은 현대적인 합창단으로 극 중 극 장면효과를 라디오드라마처럼 분위기를 형성하고 ‘가가가가...불..가가가가’ 식으로 이철희식 웃음의 화음으로 극의 효과를 생산한다. 극장은 객석 작업등으로 환하고 무대감독은 소품 칼자루를 들고 객석으로 들어서고 배우 한 명은 극장 객석에서 술이 덜 깬 상태로 부시시 일어나 무대로 걸어가 공연 연습에 참여한다. 관객은 앞좌석에 앉아 있던 관객이 연극연습 현장으로 나가는 배우인 것을 눈치챌 때 웃음이 터지고 시선은 무대로 고정된다. 일부 배우들과 연출(곽성은 분)의 등·퇴장도 무대와 객석 전체가 되면서 최종 리허설의 날 것 같은 무대 현장 분위기다.
무대에서는 최종 리허설을 앞두고 배우가 몸을 풀기도 하고 ‘와르르’ 거리며 입 근육을 풀기도 하면서 대본을 들고 연습이 한창이다. 무대 위 연극이 진행되는 평면 무대는 앞뒤로 계단식으로 되어 있고 정면 상단 위로는 벽면이 세워져 역사의 현장을 바라보는 국가의 시선처럼 보인다. 연극 속 불가불가 공연을 준비하는 배우와 무대감독이 관객석과 무대를 활보하며 소품을 나르고 최종 공연 리허설 연습을 준비할 때쯤 “연극은 언제 시작하는거야”라는 웅성거리는 소리는 키득거리는 ‘웃음’으로 바뀌고 “불가불가 하옵니다”라는 대사 한마디인 배우 5(주성환 분)는 등산복 차림으로 등장하고 2장 ‘10만 양병설’ 장면을 배우들이 연습하는 극 중 극으로 진행된다. 선조의 물음에 대신들은 ‘불가’(不可)와 ‘가’(可) 로 대립하고 배우 5는 불·가(不·可)의 찬반의 태도를 언어유희로 웅얼거리며 “불가불, 가, 불가불가~”라는 모호한 의사 표현을 하는 연기에 동료 배우들이 키득거릴 때 “그런 매소드로 웅얼거리는 거는 연극계 통틀어 형이 독보적이여(중략) 얼마나 중요해야 형 대사가 연극제목이겄어”하면 무대 후면은 마치 영화 타이틀 CG처럼 ‘불가불가’ 제목이 붙고 합창단의 “가가가가불불불가가가가”라는 효과음들이 이철희식 무대로 전환될 때마다 웃음이 터지고 이어지는 장면연습에서도 아내의 목을 치고 황산벌 전투로 나가는 계백과 부인의 장면을 병치(竝置) 되어 반복적으로 배치된다.
배우 1(계백, 정홍구 분)은 아내 목을 치고 전투에 나서는 계백의 태도와 내면을 이해하지 못해 과장되고 긴장된 연기를 연속해서 보이고 극 중 극마다 왕의 물음에 가도, 불가도, 불가불, 가도 아닌 모호한 판단을 하는 배우 5의 장면마다 계백으로 분하는 배우의 내면 연기는 차단된다. 아내와 가족의 목을 치고 5천 군사를 이끌고 나당연합군 5만 군사가 포진하고 있는 황산벌로 출정하는 계백의 정의에 동화(同化)될 수 없는 배우의 고뇌는 한국 사회의 정의와 진실의 권력의 부재를 들어내고 연출(곽성은 분)은 배우 1을 향해 ‘용맹하고 슬기로우면서도 그릇이 큰 장군의 내면’과 캐릭터를 요구하고 계백의 진실을 찾을 수 없는 배우 1이 대본을 가지러 나가는 사이 무대 뒤 벽면은 덜컹거리고 떨어지며 광화문 정치사의 한복판으로 현재화된다. 깨지고 균열 가는 벽의 알레고리는 국가이다. 치욕스러운 역사 현장을 반면교사(反面敎師) 하지 않는 정치 권력과 국가는 국민의 함성으로 균열이 가고 계백과 동일화 된 배우 1이 마지막 장면에서 불가불가를 모호하게 외치던 배우의 목을 내리치며 시대의 정의는 살아나고 진실은 정치와 권력의 환부를 도려낼 수 있게 되면서 ‘불가불가’의 연극연습 현장을 취재하러 온 다작주의 유튜브 채널은 이들의 역사를 기록한다.
계백의 광화문 소환
희곡을 탈고(1982)하고 1987년 ‘대한민국연극제’ 희곡상과 서울 극평가 그룹상, 1988년 동아연극상 대상, 백상예술대상을 휩쓸며 시대의 문제작이 된 채윤일 연출의 ‘불가불가’는 민주화의 길목에 있었다. 80년대 후반 한국 사회의 역동적인 정치사의 현장을 돌아 6공화국,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MB와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를 거쳐 2022년 5월 9일 윤석열 정부까지 대한민국의 정치사는 80년대만큼이나 역동적으로 바뀌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MB의 구속,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와 탄핵, 광화문 촛불 정신을 잇는 문재인 정부의 조국 사태와 부동산 폭등, 검찰개혁까지 권력의 입과 귀를 막고 흔드는 측근들의 비리와 부패의 칼날 사이에서 가도, 불가도, 불가불, 가도 아닌 채로 반복되는 모호한 불가불가의 언어유희가 오마주 되고 이현화가 재현해 내는 역사는 오늘도 재생산 되고 있다.
백제와 조선을 돌아 반칙 없는 공정과 정의로운 국가, 계층 갈등과 양극화가 없는 상식의 시대는 구호로 실종된 윤석열 정부에서도 대한민국의 길을 찾아 나서고 있다. 계백이 오늘날 소환되어 왕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있는 신하의 목을 치겠는가. 그 목을 쳐내야 권력은 국민을 보고, 국민은 국가에 신뢰를 보낼 수 있다. 가와 불을 위장한 불가불가의 모호함은 계백의 칼날을 비켜 갈 수 없으며 그 환부를 도려낼 때 시대는 공정과 상식, 정의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철희는 80년대 불가불가의 시대극 의상을 지워내고 극 중 극의 역사를 웃음으로, 때로는 동시대를 타격하는 정치 권력의 시대로 역사를 재 환기하고 풍자시키는 감각적인 불가불가의 놀이로 전진한다. 강신구, 강일, 정홍구, 조영규, 주성환, 최나라, 곽성은 등은 이철희 표 ‘불가불가’로 무대화시켰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역사의 무게감이 덜 하다는 것이다.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